감독
안슬기

주연
박병은....연우
조시내....혜린
선우....한실장
장소연....세아

연우와 세아

연우는 공무원인 아내 혜린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먹고 사는 시인입니다. 그는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세아라는 여자를 만나 바람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혜린 역시 직장 상사인 한실장과 불륜 관계 중이고요. 부부는 예전에 서로 사랑했던 사이지만 지금은 서로와 어떻게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불륜극입니다. 하지만 [지구에서 사는 법]에서는 약간의 변주가 있습니다. 연우는 외계인입니다. 세아 역시 같은 별에서 온 외계인이고요. 알고 봤더니 혜린은 정부 비밀 조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영화에는 모르고 보면 좋은 몇몇 반전들이 있습니다.

장르 관객들은 궁금해 할 것입니다. (1) 이들 외계인들이 지구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2) 이들은 원래 어디서 왔는가. (3) 우주선이나 광선총은 언제 나오나. (4) 이들의 원래 모습은 무엇인가. 답 (1): 이들은 아무래도 지구에 유배된 죄수인 것 같습니다. 답 (2): 모릅니다. 답 (3): 그런 거 안 나옵니다. 답 (4): 모릅니다. 하지만 진동하는 자줏빛 튜브 모양이 아닐까 저 혼자만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 하지만 이 대답들은 하나도 안 중요합니다. 원래부터 SF적 설정에 신경 쓰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죠. 각본 역시 거기에 그렇게 충실한 편은 아니고요. 영화는 SF 장르보다 SF적 아이디어와 지극히 현실적인 불륜 드라마를 하나로 묶는 것에 더 관심을 보입니다. 외계인이라는 소재도 순전히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개념을 드라마에 도입하기 위해 끌어온 농담 섞인 도구에 불과하죠. 감독은 '문어 머리를 한 외계인이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하더군요.

정말 그런 영화 같은가?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들은 불쾌하거나 짜증나기는 해도 지루하거나 밋밋하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지구에서 사는 법]의 주인공들은 마치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나른하고 졸리기만 합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현실적인 인물들이 아니라 평균적인 인디 영화의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장르 캐릭터들인 겁니다. 그나마 악역인 한실장이 여기서 조금 벗어나 있는 인물이긴 한데, 그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 별 플러스가 안 되는군요.

영화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사는 관념적인 문어체에 고정되어 있고 생기가 없죠. 별 재미도 없는 행성에 유배 중인 처지이니 이들이 풀이 죽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전 영화 속에서는 저보다 적극적인 인물들을 보고 싶습니다. 후반엔 이들도 정신을 좀 차려서 행동 규모가 살짝 커지긴 하는데, 저에겐 그 정도론 모자라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몇 개 있고 이야기도 술술 넘어가는 편이긴 하지만 [지구에서 사는 법]은 저에겐 너무 흐릿한 영화입니다. 아무래도 기반이 되는 아이디어를 너무 믿었던 것 같아요. (09/09/07)

DJUNA

기타등등

안슬기가 돈을 받고 찍은 첫 번째 영화라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