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종관

주연
정유미
이정민

폴라로이드 작동법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사랑의 무력함에 대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소녀는 아마도 짝사랑의 대상인 듯한 한 남자에게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받고 사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간단하기 짝이 없는 몇몇 규칙에 불과하지만 소녀에겐 이 모든 게 끔찍하게 어렵습니다. 생각을 집중하고 규칙을 익히기엔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너무 강합니다. 막 배운 규칙들은 머리 속에 들어오자마자 휘발되고 손은 바보짓을 반복합니다. 그럴 때마다 소녀는 더욱 위축되고 그 결과 난처하기 짝이 없는 양의 되먹임이 형성됩니다.

무척 원형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라는 장르를 끌어가는 가장 원초적인 에너지는 예쁜 여자를 찍고 싶어하는 남자들의 욕망이니까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쁘고 표정이 풍부한 젊은 여성의 얼굴에 대한 예찬입니다. 그 원형성을 더욱 강조하는 건 그 여성을 연기한 배우 정유미의 전형적인 외모입니다. 긴 '생머리'에 큰 눈을 한 모범적인 청순가련형이니까요.

의도가 무엇이건 영화는 정곡을 찌릅니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정유미의 표정 연기는 풍부하고 아름다우며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이 캐릭터의 행동은 가끔 짜증 날 정도로 갑갑하기도 하지만 영화의 주제를 고려해 보면 당연한 거겠죠. 그리고 원래 진짜 표정의 음악을 잡으려면 수줍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 낫습니다. 그들은 표정을 통제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시선의 전쟁에 대한 영화입니다. 두 사람이 6분 동안 간단한 대화를 주고 받는 동안 여자 주인공의 얼굴을 감상하는 게 전부인 정적인 영화지만 날아다니는 시선은 거의 서부영화의 총격전 같습니다. 일단 남자 등 너머에서 여자 주인공을 훔쳐보며 황홀해하는 가상의 남성 시선이 있습니다. 그 다음엔 우린 결코 볼 수 없지만 여자 주인공을 끊임없이 압박하는 남자 주인공의 시선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보는 앞에서 남자 주인공의 얼굴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여자 주인공의 시선이 있습니다. 이는 촬영에 사용된 DV 카메라와 여자 주인공의 손에 힘없이 들려진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대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의 내러티브 안에서 여자 주인공은 결코 그 총격전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주제만 순수하게 따진다면 이 영화의 패배는 성별을 떠나 일종의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성 역할의 전형성을 따지기 시작한다면 이 전쟁은 전혀 다른 정치적 함의를 부여받게 됩니다. 물론 언제나처럼 여기엔 정답은 없습니다. 있으면 오히려 이상하겠죠. (05/09/28)

DJUNA

기타등등

정유미는 얼마 전에 시사회를 가진 [사랑니]에서도 짝사랑을 하는 소녀를 연기합니다. 다행히도 [사랑니]의 인영은 [폴라로이드 작동법]의 소녀처럼 무력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