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안 Ang Lee

주연
에릭 바나....브루스 배너
Eric Bana....Bruce Banner
제니퍼 코넬리....베티 로스
Jennifer Connelly....Betty Ross
샘 엘리엇....로스
Sam Elliott....Ross
조시 루카스....탈보트
Josh Lucas....Talbot
닉 놀티....아버지
Nick Nolte....Father
실리아 웨스턴....크렌슬러 부인
Celia Weston....Mrs. Krensler
폴 커시....젊은 데이빗 배너
Paul Kersey....Young David Banner
카라 부오노....이디스 배너
Cara Buono....Edith Banner

헐크

듀나 죽어도 안 찢어지는 헐크의 수퍼 쫄쫄이 바지를 언급하지 않고 이안의 [헐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파프리카 저도 영화 보기 전엔 그게 정말 궁금했답니다. 게다가 영화 트레일러에서는 원작 만화에서처럼 보라색 바지를 입혀놓고 있었으니 말이에요.

결론만 말한다면 영화는 텔레비전 시리즈보다 더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데이빗 브루스 배너는 자기보다 조금 더 몸집이 큰 바디 빌더로 변신했지요. 그 정도면 튿어지지 않는 바지는 봐줄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브루스 배너는 자그만치 10미터가 넘는 킹콩같은 거인으로 변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지는 남아있단 말이에요.

듀나 사막 실험실 이후 장면에서 헐크가 입고 있던 바지는 신축성을 고려한 것 같던데요?

파프리카 그래도 별로 미덥지는 못했어요. 사실 컴퓨터 그래픽 헐크 자체가 그렇게까지 믿음직한 존재는 아니었지요. 적어도 제2의 골룸은 아니었어요.

듀나 아, 전 거기에 대해 어느 정도 ILM 사람들을 변호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파프리카 어떻게요?

듀나 골룸은 상대적으로 표현하기 쉬운 캐릭터였어요. 몸집이 작았고 사람처럼 사실적으로 움직였지요. 이 캐릭터를 형상화시킬 때는 그냥 일반적인 물리법칙을 그대로 적용시키면 됩니다. 대부분 모션 캡쳐 기능을 사용했고요.

하지만 헐크는 여러모로 비현실적이에요. 이 캐릭터는 존재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10미터가 넘는 괴물은 절대로 헐크처럼 행동할 수 없어요. 무게가 있으니까요. 게다가 헐크는 일단 맘만 먹으면 핑하고 몇 킬로나 날아가지 않나요?

파프리카 그러면서 떨어질 때 바닥에 자국도 크게 남지 않지요!

듀나 맞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표현하려는 액션과 사실적인 인상 사이에는 처음부터 극복할 수 없는 골이 있었던 거예요. 만약 헐크가 정말로 존재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 속에서 그런 엄청난 일들을 저지른다고 가정해보세요. 역시 실제로 존재하는 괴물보다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처럼 보일 걸요. 주변이 더 심각하게 부서지는 게 다를 뿐이지.

또다른 문제는 초록색이에요. 동물 세계에서 이처럼 부자연스러운 색은 없어요. 심지어 텔레비전 시리즈의 루 페리뇨도 초록색칠을 하고 나올 때는 그렇게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았지요.

헐크의 기본 디자인도 골룸보다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헐크는 기본적으로 커다란 근육 덩어리입니다. 이런 식으로 커다란 덩치와 영화에 필요한 유연한 동작은 잘 맞지 않지요. 어떤 평론가가 영화 속의 헐크가 달리는 모습을 볼링장의 프레드 플린스톤에 비유했는데, 이유는 같아요. 몸의 균형이 루 페리뇨 정도만 되었어도 나아보였을 거예요. 하지만 이 경우는 원작을 따라야겠지요.

파프리카 결국 만화책과 실사 영화의 표현에는 큰 갭이 있고 그게 헐크라는 괴물의 부자연스러움을 초래했다는 거군요?

듀나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어떻게 보면 알고 선택했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파프리카 하지만 관객들이 그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고 액션에 완전히 몰입할 수 없다면 문제가 아닐까요?

듀나 무얼 잃고 무얼 얻느냐의 문제죠. 사실성에 신경을 썼다면 스펙터클이나 캐릭터 일부를 포기해야했을테니까요. 하지만 제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그게 아니에요. 헐크가 골룸보다 덜 사실적으로 보인다면 그건 기술적인 미진함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소재의 한계 때문이라는 것이죠.

베티와 브루스

파프리카 특수 효과 이야기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넘어갈까요?

우선 줄거리 소개부터. [헐크]는 수퍼 히어로 탄생담입니다. 브루스 배너의 아버지인 군 과학자 데이빗 배너는 자신을 상대로 한 인체 실험을 하다가 자신의 변형된 유전 인자를 아들인 브루스에게 옮겨주게 되지요. 나중에 과학자로 성장한 브루스는 아버지와 같은 분야에서 연구를 하다가 감마선에 노출되는데 그 뒤로 그는 화가 날 때마다 초록색 거인으로 변하게 되죠. 군연구소의 담당자인 로스 장군이 브루스를 쫓는 동안, 브루스의 옛 여자친구이고 동료인 베티 로스는 그를 도울 또다른 길을 모색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이안이라는 감독과 헐크라는 만화 캐릭터의 만남입니다. 아무리 할리우드라고 해도 이건 상당히 어색한 결합이었어요. 보나마나 [와호장룡]을 보고 "야, 이 친구도 액션을 할 줄 아나 보네!"라고 생각한 할리우드 영화사 이사들이 끌어왔겠지만요.

듀나 이안의 지금까지 경력을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어색하지는 않는데요? 이안은 언제나 카멜레온 같은 감독이었습니다. 고유의 영화적 개성이 있는 스타일리스트도 아니고 특별히 가리는 것도 없었지요. 지금까지 이안은 게이 코미디에서부터 서부극에 이르는 상당히 넓은 범위를 커버해왔습니다. 만화 주인공을 내세운 액션물을 찍는다고 그게 그렇게 이상할까요?

파프리카 여전히 좀 어색한 걸요? 스타일리스트는 아니었어도 이안의 작품엔 고유의 개성이 있습니다. 전통과 의무에 의해 억눌린 사람들, 그들을 둘러싼 가족이라는 소재, 드라마를 짜맞추는 특성과 같은 것 말이에요. 그건 이안의 오랜 파트너인 제임스 샤머스의 개성과도 통하겠지만 말이에요. 하여간 이 두 사람은 [헐크]처럼 순수한 수퍼 히어로 액션 영화를 만든 적이 없었습니다.

듀나 하지만 [헐크]는 이안과 그럴싸하게 맞습니다. 일단 [헐크]라는 만화 자체가 자신의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눌러야 하는 남자의 이야기잖아요. 주제만 따진다면 이 작품은 [엑스 멘]보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 더 가깝습니다. 대쉬우드 자매들은 헐크처럼 억압된 감정을 폭력적으로 해소하지 않을 뿐이죠.

가족이라는 주제 역시 반복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브루스 배너라는 남자를 둘러싼 거의 그리스 비극에 가까운 가족 갈등입니다. 초록 괴물은 그 드라마를 끌어가는 부산물이며 도구이지요.

[헐크]는 기본적으로 아버지와 자식들의 관계에 대한 영화입니다. 데이빗 배너나 로스 장군은 모두 무시무시한 괴물 아버지들입니다. 영화의 스토리도 그들의 자식들인 브루스와 베티가 아버지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이고요.

아까 그리스 비극 이야기를 했는데 그건 단순히 불쾌한 가족 관계에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이안은 정말 그리스 비극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휘말린 브루스 배너나 그 앞에서 무책임한 신처럼 군림하는 아버지 데이빗의 대결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화적인 분위기를 풍기거든요.

파프리카 네, 정말 그렇긴 하군요. 하지만 그런 진지한 드라마와 만화같은 액션이 부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이 영화엔 굉장히 많은 스펙터클이 있지만 충분한 힘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액션의 클라이맥스가 부족해요. 이성적인 드라마가 액션의 황당함을 가로막는다고 할까요?

듀나 네, 부조화스럽긴 합니다. 완벽한 영화라고는 못하겠어요. 액션과 드라마, 스타일이 종종 따로 놀지요. 샤머스와 이안이 SF적인 감성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스토리와 장르가 종종 충돌한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단점이기만 한 건지요. 이런 거칠거칠한 맛이 영화에 부여하는 독특한 맛도 나쁘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많은 액션 장면들이 상당히 좋기도 합니다. 헐크와 탱크와의 결투처럼 만화답게 재미있는 부분도 있고 헐크와 헐크개들의 [킹콩]식 결투도 있고요.

영화가 전적으로 심각하다고도 말할 수 없어요. 이안은 미국 만화책의 형식을 영화에 직설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편집은 꽤 독특하죠. 당연히 하나의 안정된 컷으로 이어져야 할 장면은 종종 불안하게 끊기고 장면들은 뻔뻔스러운 화면분할로 연결됩니다. 전체적으로 멀티미디어 만화책을 보는 느낌이에요. 가끔 거슬리거나 필요 이상으로 희극적이긴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팝아트적인 감각은 꽤 흥겨워요.

파프리카 하지만 그게 형식을 위한 형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해봤나요? 화면분할을 예로 들어보지요. 브라이언 드 팔마가 화면을 나눌 때, 우린 그 두 조각난 화면들이 모두 풍성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드 팔마의 화면분할은 의미가 있어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화면분할이 그처럼 적극적인 정보를 제공해주는 일은 거의 없어요. 대부분 그건 '멋'입니다.

듀나 내용없는 멋도 나쁘지는 않죠. 그리고 원작의 기원을 알려주는 스타일이 전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특히 도입부에서 그 인공적인 스타일은 영화에 상당히 강렬한 만화적 쾌락을 부여합니다.

[헐크]는 [와호장룡]처럼 유려하게 만들어진 영화는 아닙니다. 스토리나 테크닉에 결점들도 많고 과연 이안과 제임스 샤머스가 이 프로젝트에 가장 잘 맞는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영화는 인상적인 드라마와 어처구니없는 액션들, 오페라풍의 장엄한 캐릭터들과 좋은 배우들의 호연으로 가득 차 있고, 보고나서 생각할 거리도 많습니다. 전 시간을 낭비했다고 느끼지는 않았답니다. (03/06/26)

D&P

기타등등

제니퍼 코넬리가 [뷰티풀 마인드]에서와 거의 같은 캐릭터를 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