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안소니 드라잰 Anthony Drazan

주연
숀 펜....에디
Sean Penn....Eddie
케빈 스페이시....미키
Kevin Spacey....Mickey
로빈 라이트....달린
Robin Wright....Darlene
채즈 팔민테리....필
Chazz Palminteri....Phil
게리 샌들링....아티
Garry Shandling....Artie
안나 파퀸....도나
Anna Paquin....Donna
멕 라이언....보니
Meg Ryan....Bonnie

1.

[헐리벌리]는 데이빗 레이브의 히트 희곡을 영화로 옮긴 작품입니다. 원작인 연극은 윌리엄 허트, 시고니 위버, 크리스토퍼 워큰 등등 웬만한 헐리웃 영화 뺨치는 캐스팅으로 초연되어서 상당한 화제를 모았고요.

연극의 캐스팅도 빵빵하지만 영화의 캐스팅도 결코 뒤지지는 않습니다. 숀 펜, 채즈 팔민테리, 게리 샌들링, 케빈 스페이시, 안나 파퀸, 로빈 라이트, 멕 라이언... 숀 펜은 이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2.

그렇다면 영화는 어떨까요? 글쎄요. 결코 데이트 영화는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오락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좋은 '예술'인가? 글쎄요...

이 영화는 헐리웃에서 살아가는 네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미키와 에디는 캐스팅 에이전트고 필은 삼류 배우이며 아티는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즐겁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모두 지독하게 불쾌한 남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에디는 수다쟁이 마약 중독자이고 필은 폭력성향을 주체 못하는 바보이며 미키는 새디스틱한 냉소주의자입니다. 영화는 마약과 섹스에 쩔은 이 남자들이 끊임없이 서로와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걸 보여주면서 2시간을 채웁니다. 그러면서 이 친구들은 그걸 '우정'이라고 한답니다!

가끔 여자들이 등장합니다. 에디의 여자 친구지만 한 번인가 미키와 데이트 한 적 있는 의상 담당 달린, 아티가 엘리베이터에서 주워와 친구들에게 섹스 장난감으로 넘긴 가출 소녀 도나, 풍선 묘기가 특기인 스트리퍼 보니. 이들은 모두 네 남자 주인공들보다 조금 나은 사람들이지만 그 때문인지 지독하게 괴롭힘을 당합니다. 어떻게 참고 버텼을까요? 저희도 모르겠어요.

도대체 이 남자들은 뭐가 문제인 걸까요? 필이야 삼류라지만 나머지 세 사람들은 모두 그럴듯한 일과 괜찮은 집이 있습니다. 에디에겐 성격 좋고 (이 사람과 사귀면서도 지금까지 망가지지 않았으니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죠) 미인인 여자 친구가 있고 미키에겐 멀쩡한 가족이 있습니다. 사실 필만 해도 이 정도로 고민스러울 이유가 없습니다. 바보니까요.

그런데도 그들은 괴롭습니다. 그래서 수다를 떨죠. 경고하지만 이 영화는 지독하게 말이 많은 영화입니다. 스크립트 두께가 같은 길이 영화의 두 배는 될 거예요. 모두들 입을 움직이지 않으면 혀에 가시라도 생기는지, 끝도 없이 조잘거립니다. 자막이 제대로 번역하는 건 절반도 되지 않으니 잘만 이용하면 영어 공부에 막강한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데 어떤 내용으로 수다를 떠느냐고요? 아무 내용도 없습니다. 그들은 인간 관계와 죽음과 섹스에 대해 끝도 없이 떠들지만 그 대부분은 별 내용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수다는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안 떠들면 자기네의 공허함이 탄로나기 때문에 그냥 떠드는 거예요. 그들은 헤엄치지 않으면 가라앉는 상어와 같습니다. 떠들지 않으면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헐리벌리]를 보는 건 괴로운 경험입니다. 우리 자신의 고민만 해도 벅찬데 저들의 이유없는 고민까지 떠안아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어떤 카타르시스가 있어서 그 고민들이 해소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숙변처럼 영화가 끝난 뒤까지 남습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3.

대부분의 관객들은 호화 캐스팅에 홀려서 극장까지 갔을 거예요. 이 영화를 채운 배우들의 명단은 참 매력적이니까요.

그들은 이름 값을 했을까요? 네, 숀 펜의 그랜드 오페라와 같은 거창한 연기는 분명 눈길을 끌며, 케빈 스페이시의 잔인한 시니시즘은 흥미롭습니다. 안나 파퀸은 지금까지 쌓아왔던 아역 이미지를 영리하게 때려 부수었고, 멕 라이언도 오래간만에 좋은 드라마 연기를 보여주지요. 이들이 모두 괴상하게 나가는 것 같으면, 로빈 라이트가 등장해 적당히 균형을 잡아줍니다. 모두들 영화에 뭔가 보태었습니다. 그만큼이나 자기 경력에도 보탰고요.

그러나 공허한 수다의 비중이 너무 크고 드라마가 없으며, 상황이나 인간 관계가 너무 메말라 있어서 뭔가 빠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종종 배우들의 연기 견본 묶음처럼 보여요.

4.

[헐리벌리]는 보기 즐거운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요. 드라잰과 레이브가 노렸던 게 바로 그 공허함으로 관객들과 캐릭터들을 괴롭하는 것이었다고요. 결국 그네들은 할 일을 다 한 셈이지요. (99/08/07)

D&P

기타등등

1. 저희는 이 영화가 곧장 비디오로 직행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8월 3일이 출시 예정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별다른 홍보도 없이 7일날 얼렁뚱땅 개봉해버리더군요. '단성사 개봉작'이란 딱지를 달기 위한 수단이었나 봅니다. 비디오로도 나와 있어요. 단성사에 걸리기 전에 나왔는지 걸린 직후에 나왔는지 아니면 동시에 나왔는지,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겠지만요.

2. 비디오 출시판의 러닝 타임은 90분 밖에 되지 않는답니다. 30분 정도 잘려나간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