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윤종찬

주연
현빈....만수
이보영....수경
김성민....형철
손영순....만수 모
정재진....수경 부
최종률....이장
이찬영....만철
박효주....영숙

만수와 수경

텅 빈 상영관을 전세내고 본 영화입니다. 현빈과 이보영이라는 인기있는 배우들이 나왔음에도 이렇게 처절하게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건 현실세계에서도 충분히 느끼고 있는 우울증과 좌절감을 굳이 일부러 돈 내고 극장 안에서 경험할 필요가 없다고 관객들이 판단했기 때문이겠죠. 저도 그 걱정에 단단히 감정무장을 하고 극장을 찾긴 했습니다. 어? 그런데 은근히 견디기 쉬웠어요.

물론 이야기는 여전히 어둡습니다. 지독한 세상이 주는 스트레스에 엉망이 된 두 사람의 이야기니까요. 주인공 1번 만수는 도박에 미쳐 정신이 나간 형과 치매에 걸린 엄마 때문에 맛이 가버린 과대망상증 환자입니다. 주인공 2번인 수경은 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살피느라 역시 거의 맛이 가기 직전인 정신병동의 간호사고요. 영화는 수경의 이야기를 현재 진행형으로 보여주면서 중간중간에 만수의 과거를 삽입하는데, 마치 누가 더 지지리궁상인지를 놓고 대결을 벌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가 비교적 편하게 이 영화를 견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의 고난에는 일종의 단조로움이 있었습니다. 고통이 어느 순간부터 습관화된 권태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런 고통을 겪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차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여전히 그들을 보는 건 편치 않지만 적어도 가짜 기대와 좌절로 인한 고통의 추가는 없죠.

이들은 영화 내내 수동적입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며 병원에 오래 머무르려 하는 만수의 노력만이 예외일까요. 적어도 이 시도는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적극적 대립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만수와 수경의 관계는 어떨까요? 이 영화는 로맨스물이 아닙니다. 둘은 연애에 투자할 만한 여벌의 에너지가 없어요.

현빈과 이보영은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전 이들의 이미지가 여전히 지나치게 패셔너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빈의 적당히 기른 수염은 나름 꼼꼼한 미용사의 관리가 필요해 보이고, 이보영의 세상만사 귀찮은 창백한 모습은 분장한 패션모델처럼 쉬크하기까지 해요. 하긴 외모가 따라주는 사람들은 뭐로 분장을 해도... (09/12/04)

DJUNA

기타등등

원작은 이청준의 단편소설 [조만득 씨]입니다. 이청준 각색물들이 대부분 그렇듯 원작쪽이 더 드라이하고 분석적이죠. 행복한 광인을 고쳐 정상세계로 돌려보내는 것에 대한 고민도 영화에서는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 마지막의 반전도 없습니다. 하긴 영화 내내 만들어놓은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지 않았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