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알렉스 프로야스 Alex Proyas

주연
윌 스미스....델 스푸너
Will Smith....Del Spooner
브리짓 모나한....수잔 캘빈
Bridget Moynahan....Susan Calvin
앨런 투딕....서니
Alan Tudyk....Sonny
제임스 크롬웰....알프레드 래닝
James Cromwell....Dr. Alfred Lanning
브루스 그린우드....로렌스 로버트슨
Bruce Greenwood....Lawrence Robertson
아드리안 리카드....그래니
Adrian Ricard....Granny
치 맥브라이드....존 버긴 부장
Chi McBride....Lt. John Bergin
제리 와서먼....발데스
Jerry Wasserman....Baldez
피오나 호건....비키
Fiona Hogan....V.I.K.I.

캘빈, 서니, 스푸너

처음부터 [아이, 로봇]이라는 영화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모프 영감과 할리우드의 결합이 그렇게 이상적이지는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그의 금욕적이고 엄격한 스타일과 윌 스미스라는 대형 스타의 껄렁한 결합도 불안했고요.

그러나 그 점만 잊는다면 [아이, 로봇]은 나쁜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알렉스 프로야스는 지금까지 두 편의 장편 장르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그 중 [다크 시티]는 상당히 인상적인 SF 영화였지요. 발달한 디지털 특수 효과 덕택에 설득력 있는 로봇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었고요. 기본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시모프에서 캘빈과 래닝이라는 고정 캐릭터와 로봇 공학 3원칙만 취한 뒤 전혀 새로운 각본을 쓰는 것 말이에요. 사실 아시모프 소설들 중 온전하게 영화화될 수 있는 작품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설정 일부는 꽤 그럴싸하기도 했습니다. 아시모프는 추리물의 플롯을 자주 사용했으니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추리물인 건 자연스럽죠. 로봇 혐오자인 형사가 로봇과 관련된 살인사건에 말려드는 동안 서서히 로봇과 친분 관계를 쌓는다는 설정은 은근히 일라이자 베일리와 대닐 올리버의 이야기를 연상시키고요. 심지어 [로봇과 제국]의 특정 개념이 살짝 개조되어 사건의 핵심으로 다루어지기도 합니다. 래닝은 초반에 죽지만 여전히 3원칙의 창시자이니 불만은 없을 듯 하고, 갑자기 패션 모델 뺨치는 후리후리한 미인으로 변신한 수잔 캘빈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죠. 할리우드니까요.

그러나 영화는 여전히 그냥 그렇습니다. 일단 아시모프 영화로서 [아이, 로봇]은 자기 일을 충분히 해내지 못합니다. 추리물 플롯에 로봇 공학 3원칙을 엮는 방식에는 지능적인 면이 전혀 없고 안이하기만 합니다. 유니크한 로봇 서니를 묘사하기 위해 쓸데 없는 불가지론과 영혼의 개념을 막연하게 도입하는 수법을 보면 '어쩔 수 없는 할리우드 감상주의'라는 소리가 안 나올 수가 없어요.

윌 스미스 영화로도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일단 그가 연기한 스푸너라는 캐릭터부터가 빵점입니다. 50년대에나 나올 법한 터프한 마초 기계 혐오자이니까요. 아시모프는 복잡한 캐릭터 설정과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심지어 그의 베일리도 스푸너보다 훨씬 더 입체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스미스의 껄렁한 연기 스타일과 시니컬하고 무식한 스푸너의 캐릭터가 결합되자 결과가 더 나빠졌습니다. 한마디로 애교없고 재수없는 마초 건달이 된 거죠. 이 정도이니 가끔 샤워신 서비스 해주는 것으로 만회가 될 리가 없습니다.

그나마 괜찮은 건 로봇들입니다. 이들의 존재감은 상당히 강렬합니다. 서니는 표정 연기도 그럴싸하고요. 윌 스미스에게 벌떼처럼 달려드는 NS-5 로봇들은 상당히 훌륭한 괴물 역할을 소화해내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액션 장면들도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도 수많은 아이디어들은 낭비되었고 영화는 아우디 PPL 카 체이스 신을 찍느라 그걸 만회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까워요. 몇몇 부분들은 따로 떼어내면 상당히 좋은 이야기로 발전시킬 수 있었을텐데요. 전 미시간 매립지의 폐기장 콘테이너 속에 모여 조심스럽게 바깥을 내다보는 NS-4의 모습들이 좋았고 거기서 뭔가 더 나오길 바랐습니다. 혹시나 하고 기다렸지만 역시 안나오더군요.

[아이, 로봇]은 때려부수는 액션 영화를 기대하고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코 좋은 아시모프 영화는 아니고 원래 설정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과학적 깊이를 제대로 탐구한 영화도 아닙니다. 아직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몰라요. 로봇 묘사에 쏟아부은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멀티플렉스 관객들의 주머니에서 뽑아야 할테니. (04/07/22)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를 기회로 아시모프의 원작 단편집이나 번역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