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프랭크 론더 Frank Launder

주연
데보라 카....브라이디 퀼티
Deborah Kerr....Bridie Quilty
트레버 하워드....데이빗 베인즈 중위
Trevor Howard....Lieut. David Baynes
레이몬드 헌틀리...J. 밀러
Raymond Huntley....J. Miller
에디 골든....테렌스 딜레이니
Eddie Golden....Terence Delaney
윌리엄 G. 오고먼....대니 퀼티
William G. O'Gorman....Danny Quilty
해리 웹스터....조 아저씨
Harry Webster....Uncle Joe
리암 레드몬드....티모시 아저씨
Liam Redmond....Uncle Timothy
마리 올트....오마라 부인
Marie Ault....Mrs. O'Mara
제임스 하코트....할아버지
James Harcourt....Grandfather
올가 린도....에드워즈 부인
Olga Lindo....Mrs. Edwards

1.

번역 제목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군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유치하고 노골적이어서 저처럼 수줍은 사람은 얼굴 붉히지 않고 발음하기도 힘듭니다. [I See a Dark Stranger]가 번역하기 힘든 제목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영화의 할리퀸 로맨스 분위기를 고려해서 적당히 로맨틱한 제목을 뽑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철부지 아가씨의 첩보 작전]은 아무래도 좀 심했습니다.

2.

브라이디와 데이빗

이 영화의 소재는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를 생각해보면 좀 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46년이라면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났을 무렵입니다. 그런데 이 영국 콤비는 독일군과 작당해서 대영 제국에 대한 전쟁을 벌이는 아일랜드 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브라이디 퀼티가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아버지한테서 1916년 아일랜드 봉기에 대해 닳도록 들은 브라이디는 영국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심을 마음 속에 단단히 품고 있습니다. 성년이 되자 브라이디는 아일랜드 공화국 군대에 들어가기 위해 더블린으로 가지만, 자길 공화군 군대에 넣어줄 거라고 믿었던 혁명 영웅은 온화한 정치가가 되어 있었죠. 하필 그 때 브라이디를 눈여겨 본 나찌 스파이 밀러가 그녀를 포섭하고, 브라이디는 체포된 나찌 스파이로부터 정보를 빼내기 위해 영국으로 넘어갑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짐작하시겠지요? 브라이디가 언제까지 나찌 동조자로 남아 있을 리는 없습니다. 그녀가 트레버 하워드가 연기한 영국인 장교와 사랑에 빠질 거라는 것도 분명하고요. 분위기가 밝고 경쾌하니, 브라이디가 체포되어 총살형을 받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고요.

이 영화에는 불경스러울 정도로 선악 구별이 없습니다. 브라이디는 영국을 침공 직전까지 몰고가지만 끝까지 사랑스럽고 매력적입니다. 사악한 악당이어야 할 나찌 스파이 밀러도 자기 임무에 충실한 애국심 넘치는 영웅입니다. 유일한 영국인 주인공인 데이빗도 브라이디의 미모에 정신이 팔려서 애국심이 슬슬 망가지려 하는군요. 영화에서 애국심의 중요성은 주인공의 연애담보다 훨씬 밑에 놓여 있습니다.

론더와 길리앗은 왜 이런 주인공들을 내세워 영화를 만들었을까요? 글쎄요. 일단 그들이 아일랜드 사람들한테 아주 죄의식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아일랜드인 주인공을 나찌 동조자로만 몰고갈 수는 없는 거죠.

영화의 진짜 주제는 긴 역사 속에서 얽혀가는 동안 형성된 아일랜드와 영국의 미묘한 관계입니다. 브라이디가 영국에서 벌이는 소동은 바로 이 양국간의 대립을 축소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이 영화는 영국인들이 만든 작품이므로 완벽하게 균형잡혀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워낙 성공적인 부분이 많아서 무시하고 싶지는 않군요. 대표적인 예가 올리버 크롬웰을 바라보는 양국의 시점을 이용하는 농담들입니다. 그건 어느 정도 교육적이기도 하군요. 사실 우린 아일랜드 사람들의 시점에서 크롬웰이 얼마나 악한처럼 보일지 전혀 모르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독일인들은? 그건 승전국의 여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쟁이 끝났으니 그렇게 쫀쫀하게 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겠지요. 더이상 선전물을 만들 필요는 없어졌으니까요.

3.

브라이디와 독일 스파이

히치콕의 걸작 [사라진 여인]의 성공 이후,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시드니 길리엇과 프랭크 론더는 독립해서 직접 제작과 각본을 맡은 여러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위험한 병동]처럼 우아한 추리 영화도 있었고 [The Belles of St. Trinian's (1954)]처럼 정신나간 코미디도 있었습니다.

[I See a Dark Stranger]는 어디 쯤에 속할까요?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스파이 스릴러를 표방한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두 영화의 중간 어디 쯤이죠. 유머가 넘치지만 본격적인 코미디로 나서지는 않고, 스파이 스릴러 형식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서스펜스를 창출해내기 위해 그렇게 애쓰고 있지도 않죠.

이건 그만큼 이 영화가 담은 게 많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I See a Dark Stranger]에는 재미있는 영화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로맨스는 충분히 잘 묘사되어 있고 캐릭터는 친근감 넘치고 매력적입니다. 그렇게 강조되어 있지는 않지만 종종 등장하는 서스펜스 역시 쓸만하고요. 전체적인 드라마도 흡인력 있고 유머도 바탕이 단단해서 실없는 웃음 이상을 선사합니다.

그러나 영화를 사로잡는 것은 브라이디를 연기한 데보라 카의 연기입니다. 모린 오하라가 더 어울리는 역이었다고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오하라가 했더라도 잘했겠지만 그랬다면 연기가 너무 일차원적이 되었겠지요. 이 영화의 유머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데보라 카의 얌전하고 숙녀다운 이미지와 브라이디가 벌이는 엉뚱한 소동이 결합해서 발생하는 결과입니다. 하여간 이 영화의 카는 너무 귀엽고 (카가 연기한 캐릭터에 대해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매력적이어서 이 배우만 봐도 본전은 다 뽑을만 합니다. (00/06/11)

DJUNA

기타등등

데보라 카는 이 영화와 [흑수선]에서 보여준 연기로 뉴욕 비평가 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