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리오 바바 Mario Bava

주연
미셸 메르시에....로시
Michèle Mercier....Rosy
리디아 알폰시....메리
Lidia Alfonsi....Mary
보리스 칼로프....고르카
Boris Karloff....Gorca
수지 앤더슨....스덴카
Susy Andersen....Sdenka
마크 데이몬....블라디미르 두르페
Mark Damon....Vladimire d'Urfe
글라우코 오노라토....그레고르
Glauco Onorato....Gregor
리카 디알리나....아내
Rika Dialina....Wife
마시모 리지....피요트르
Massimo Righi....Peter
자클린 피에로....체스터 간호사
Jacqueline Pierreux....Nurse Chester
밀리....하녀
Milly....The Maid

(스포일러가 조금씩 있습니다.)

1.

60년대에는 3부작 옴니버스 호러 영화가 유행이었지요. 로저 코먼이 아마 가장 먼저 시작했을 거예요. [Spirits of the Dead]처럼 세 감독이 한 에피소드 씩 감독한 영화도 있었고요. 마리오 바바도 유행따라 옴니버스 영화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블랙 사바스]입니다. 원제는 [공포의 세 얼굴]이라는 뜻으로 세 영화가 각자 다른 종류의 공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확한 제목입니다.

다른 바바의 영화들처럼 이 작품도 미국 개봉판과 유럽 버전 사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에피소드의 순서지요. 오리지널에서는 [전화], [우르달락], [한 방울의 물] 순서지만 미국판에서는 [한 방울의 물], [전화], [우르달락] 순서입니다. 원작에서는 칼로프의 나레이션이 맨 앞과 뒤에만 있지만 미국판에는 다른 감독이 감독한 나레이션이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고요. 음악도 바뀌었대요. [전화]는 내용도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미국판을 안 보았으니 그 버전의 질에 대해서는 뭐라 말을 할 수 없군요. 하지만 순서만 따진다면 미국판도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 비교 감상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에요.

2.

[전화]는 바바 버전 [스크림]이라고 할만한 작품입니다. 무대는 현대(그러니까 60년대 초) 이탈리아. 막 외출에서 돌아온 여자 주인공 로시는 정체불명의 인물한테서 온 전화를 받습니다. 그 인물은 계속 전화를 걸어대며 새벽이 되기 전에 로시를 죽이겠다고 협박하죠. 겁에 질린 로시는 여자 친구 메리를 불러들이는데, 여기서 스토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습니다.

[전화]는 세 편의 에피소드 중 초자연적인 요소가 없는 유일한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가장 인기가 없는 작품이기도 하죠. 하지만 방 하나로 고정된 무대에서 전화 하나만으로 이만한 서스펜스를 끌어내는 것은 결코 보기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첫번째 반전이 좀 가볍고, 그 뒤에 이어지는 반전은 뻔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상당히 강렬한 서스펜스 물입니다. 영화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에피소드에서 그의 후기 'giallo' 영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전화]는 미국판으로 옮겨가면서 내용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가장 분명한 것은 로시와 메리와의 관계지요. 오리지널에서 둘은 분명 왕년의 애인 사이입니다. 대사 수정의 상당 부분은 이들의 관계를 친구 사이로 뜯어고치기 위한 것이었나 봅니다. 앞의 두 편과 맞추기 위해서였는지 초자연적인 암시도 했던 모양이고요. 아마 이 에피소드가 그렇게 인기가 없었던 이유도 변형된 버전 때문이 아닐까요?

3.

[우르달락]의 무대는 19세기 동유럽의 어느 나라입니다. 여행 중이던 귀족 청년 블라디미르 두르페는 길에서 목이 잘린 시체를 발견합니다. 시체를 말에 태우고 온 그는 저녁에 머문 민가에서 시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목이 잘린 남자는 그 나라 사람들이 '우르달락'이라고 부르는 흡혈귀였고 그 남자를 죽인 사람은 바로 그 집의 가장인 고르카였습니다. 밤이 되자 고르카는 돌아오지만 가족들은 그를 쉽게 반길 수 없습니다. 그 역시 '우르달락'이 되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우르달락]은 슬라브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는 무시무시한 작품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기있는 에피소드입니다. 물론 우르달락이 된 가장을 연기한 보리스 칼로프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죠(이 영화는 그가 흡혈귀를 연기한 유일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고르카 가족의 묘사입니다. 아버지가 흡혈귀가 되었다는 걸 확신하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어물거리는 가족의 묘사는 가부장제의 고약한 역학 관계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이들을 붕괴로 끌고가는 모든 것들이 가족 구성원에 대한 애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야기는 더욱 고약해지고요.

하여간 [우르달락]은 가장 바바 풍의 작품이며 그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장면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사탄의 가면]과 같은 전작의 여운과 [킬, 베이비, 킬]과 같은 후기작의 싹을 모두 담고 있어서 바바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소개작이 될 수도 있을 거고요.

4.

[한 방울의 물]은 20세기 초의 영국에서 시작됩니다. 간호사 체스터는 강신술 중 사망한 노파의 옷을 갈아입히다가 시체의 손에서 반지를 훔칩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뒤로 계속 죽은 노파의 유령이 그녀를 괴롭히죠.

이 간단한 유령 이야기는 바바가 얼마나 훌륭한 테크니션인지를 증명해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바가 이 영화에서 공포를 주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는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 바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죠. 전형적인 바바 풍의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그는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지휘하듯 휘두르며 체스터 간호사를 공포의 극으로 몰고 갑니다.

물론 그는 보다 노골적인 방법도 씁니다. 대표적인 예가 죽은 노파의 시체 활용입니다. 바바는 시체의 존재감을 강조하기 위해 그로테스크한 가면을 씌우는데, 가끔은 우습기도 하지만 몇몇 장면에서는 굉장히 효과적입니다.

[한 방울의 물]은 특별히 깊이 있는 감상을 요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극적 효과나 독창성을 고려해보면 세 에피소드 중 가장 뛰어난 작품입니다. 바바가 이 작품을 마지막에 놓은 것도 그 때문인 듯 하군요.

5.

보리스 칼로프의 나레이션이 앞과 뒤를 장식합니다. 물론 제가 본 것은 이탈리아어 더빙 버전이어서 그의 원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어요. 도입부의 소개는 그냥 그랬지만 후반부의 작별 인사는 꽤 재미있더군요. 칼로프는 2부의 말타는 장면을 반복하는데, 카메라가 점점 멀어지면서 그게 스튜디오 촬영을 위한 기계 말이고 나뭇가지와 그림자 모두 스탭들의 노고의 결과라는 것을 폭로하죠. 이 코믹하기까지 한 에필로그는 영화가 너무 어두운 분위기에서 끝나는 걸 걱정한 제작자들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확실히 분위기를 좀 깨진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군요. (00/08/30)

DJUNA

기타등등

IMDb에서는 3번째 에피소드에서 자클리 피에로가 연기한 캐릭터 이름이 Helen Corey라고 나와 있습니다. 미국판에서는 이름도 바뀐 것일까요? 아니면 IMDb의 실수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