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정윤철
김현필
이미연
노동석
김곡/김선
홍기선

주연
차이얀 콜삭
황선화
김요한
김태우
전혜진
유성훈
김재민
정진영

소녀가 사라졌다

[세번째 시선]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인권영화 프로젝트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왜 네 번째냐고요? 중간에 애니메이션 앤솔로지인 [별별 이야기]가 들어갔으니까요. 언제나처럼 에피소드의 질은 들쑥날쑥합니다. 고로 위의 별점은 큰 의미가 없어요.

[말아톤]의 정윤철이 감독한 [잠수왕 무하마드]의 주제는 이주노동자입니다. 주인공 무하마드는 형편없는 노동 조건하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일하는 불법노동자죠. 공장 사람들은 무신경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남발하고 어리석은 '깜씨'를 놀려대지만 무하마드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제목에 나와 있습니다.

[잠수왕 무하마드]는 고전적인 농담 구조를 갖추고 있는 영화입니다. 전 그냥 작정하고 농담으로 밀고 갔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무하마드는 호감가는 캐릭터이고 이야기는 먹히지만 지금의 태도는 조금 어정쩡하군요. 목욕탕 물 밑으로 들어가보니 물고기가 헤엄치는 바다더라...식 초현실주의는 너무 남발되어 지루하고요.

[원더풀 데이]의 김현필이 감독한 [소녀가 사라졌다]의 주제는 소녀 가장. 주인공 선희는 교회 오빠를 짝사랑하는 소녀 가장인데, 미국에 유학가는 오빠를 위해 카메라를 사주기로 마음먹습니다. 물론 카메라는 예상외로 비싸고 그 돈을 모으는 건 정말 힘들죠.

[엄마 없는 하늘 아래]식 컴컴함을 기대하지 마시길. [소녀가 사라졌다]는 밝고 귀여운 영화입니다. 영화가 신경 쓰고 있는 것도 선희의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그 아이의 짝사랑과 자존심이거든요. 선희 자신도 자신을 '소녀 가장'이라는 정의에만 가두지 않고요. 그 앤 그냥 평범한 틴에이저에요. 생각 짧고 하는 짓이 조금 위태하지만 그냥 평범한.

다소 어색한 건 결말입니다. 이 영화는 전기료 체납으로 단전되어 촛불을 켜고 자다 화재로 사망한 소녀 가장의 이야기에 바탕을 둔 모양인데, 가볍지만 매력적이고 완벽한 드라마가 맺어진 뒤에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좀 생뚱맞습니다. 더 생뚱맞은 건 그걸 다루는 초현실적인 터치인데, 드라마를 고양시키는 대신 관객들을 그냥 어리둥절하게 만들더군요.

[버스 정류장]의 이미연이 감독한 [당신과 나 사이]의 주제는 가족내 성차별. 슬프게도 이번 앤솔로지에서 가장 약한 작품입니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아내와 남편의 말싸움을 보여줍니다. 아이를 낳은 뒤 방구석에만 박혀 있던 아내는 빨리 취직하고 남편도 가사일을 분담했으면 좋겠죠. 하지만 남편은 그런 아내를 이해 못하고요.

주제가 무엇이건, 이 영화를 보는 건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십 여 분 동안 계속 말싸움을 벌이는 경험과 비슷합니다. 그냥 갑갑해요. 날아가고 돌아오는 말들이 어떤지 들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뻔해서 더 그렇고요. 어색한 공익광고로 끝나는 결말도 [소녀가 사라졌다]만큼이나 생뚱맞군요.

[마이 제너레이션]의 노동석 감독이 만든 [험난한 인생]의 주제는 인종차별. [잠수왕 무하마드]가 다룬 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한국식 인종차별이죠. 백인선호와 비백인 인종에 대한 공포와 무시요. 한 소년이 생일 파티 때 학원 강사의 딸을 데려오는데, 그만 그 딸이 흑인이었던 거예요. 엄마는 학원에 전화를 걸어 학원 강사가 정말 백인인지 확인하려 하고 파티에 초대된 아이들은 흑인 소녀를 놀려댑니다.

효과적인 이야기인데... 글쎄요. 전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와, 인종차별은 정말 없어져야 하는 거야!"라는 건전한 생각은 전혀 안 들더라고요. 대신 인종문제에 대한 피상적인 상식도 교양도 없으며 그냥 전체적으로 무식하기만 한 중산층 아줌마의 언쿨함을 노골적으로 경멸하게 되더군요. 영화의 의도는 아니었겠죠. 그게 의도였다면 그 아줌마들보다 더 잔인한 영화였다는 말이고.

[자본당 선언]의 김곡, 김선 형제가 만든 [Bomb! Bomb! Bomb!]의 주제는 호모포비아. 자기 생각 없는 호모포브 무리들로 부글거리는 학교에서 '호모' 딱지를 달고 다니는 소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돌아갑니다. 그 소년은 학교 밴드부에 들고 그러다 베이스를 하는 동급생과 친해지고 그 동급생은 바로 그 때문에 아이들의 따돌림을 당할 위기에 처하죠.

['Bomb! Bomb! Bomb!]의 장르는 좀비 영화입니다. 다른 장르로 만들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더군요.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좀비 영화들보다 훨씬 보기 힘겹다는 거겠죠. 정신이 제대로 박힌 시스템이라면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온갖 종류의 언어적 육체적 폭력은 몇 십 억 짜리 소송으로 이어졌을 겁니다. 마지막 결말은 어느 정도 희망적이지만 그렇다고 좀비들이 사람이 되는 건 아니죠. 이번 앤솔로지에서 가장 강렬한 영화지만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

[선택]의 홍기선 감독이 만든 [나 어떡해]의 주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권입니다. 앞뒤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터뷰가 깔리고 중간에 지게차 운전사인 도씨의 이야기가 들어가죠. 도씨는 어머니가 병에 걸려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데 비정규직의 위치 때문에 휴가도 가지 못하고 심지어 공장 도서관에서 기도용 성경책도 빌리지 못합니다.

분명 없는 소릴 하는 게 아닌데도, 도씨의 이야기는 이상할 정도로 생기와 진실성이 떨어집니다. 태도나 이야기가 너무 도식적이라 그냥 의무감으로 만든 정치선전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와 허구의 결합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고요. 프롤로그에 나온 인터뷰들은 암만 봐도 마지막 하나만 빼면 모두 배우들을 기용해 재구성한 것이라 믿음이 가지 않아요. 정진영과 같은 일급 배우가 무료로 출연해 성실하게 연기해 준 것은 고맙지만 그 때문에 현실성은 더 날아가 버렸고요.

차라리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정확히 같은 내용이라고 해도, 실제 인물의 이야기가 당사자의 입을 통해 직접 전달되었다면 이야기의 힘은 배가 되었을 거예요. [시선] 시리즈라고 꼭 픽션만을 고집하라는 법은 없지요. (06/11/07)

DJUNA

기타등등

이 시리즈를 가볍게 포장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건 알지만 "좀 튀면 어때? 세상 버라이어티하게 살자구!"라는 선전문구는 심하게 어색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