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Akira Kurosawa

주연
시무라 다카시....와타나베 칸지
Takashi Shimura....Kanji Watanabe
히모리 신이치....키무라
Shinichi Himori....Kimura
타나카 하루오....사카이
Haruo Tanaka....Sakai
치아키 미노루....노구치
Minoru Chiaki....Noguchi
오다기리 미키....오다기리 토요
Miki Odagiri....Toyo Odagiri
히다리 보쿠젠....오하라
Bokuzen Hidari....Ohara
야마다 미노스케....사이토
Minosuke Yamada....Saito
후지와라 카마타리....오노
Kamatari Fujiwara....Ono
코바리 마노토....와타나베 키이치
Makoto Kobori....Kiichi Watanabe
카네코 노부오....와타나베 미츠오
Nobuo Kaneko....Mitsuo Watanabe
나카무라 노부오....부시장
Nobuo Nakamura....Deputy Mayor
와타나베 아츠시....환자
Atsushi Watanabe....Patient
키무라 이사오....인턴
Isao Kimura....Intern
시미즈 마사오....의사
Masao Shimizu....Doctor
이토 유노스케....소설가
Yûnosuke Itô....Novelist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와타나베 칸지

[이키루]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자신이 위암에 걸려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시청 직원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가, 구로사와 아키라가 만든 가장 성공적인 코미디라는 것입니다. 이건 수사학적인 말장난이 아니라 그냥 건조한 사실입니다. [이키루]는 작정하고 코미디로 만든 [숨은 요새의 세 악인]보다 몇 배는 더 웃깁니다. 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이 웃음바다가 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죠. 우리의 주인공 와타나베 칸지는 걱정을 가득 안고 병원 대기실에서 의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환자가 와타나베 옆에 다가와 위암 환자들의 증상들과 이런 환자들에게 의사들이 해주는 뻔한 거짓말들을 하나씩 읊어줍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관객들은 와타나베의 표정을 보면서, 그것들이 모두 그의 증상들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걸 알게 되지요. 마침내 그의 차례가 되자, 의사는 아까 그 환자가 미리 경고했던 것과 똑같은 거짓말을 합니다. 가벼운 위궤양이니 걱정할 것 없고 소화되지 않는 것만 빼면 뭐든지 먹어도 좋다고요.

와타나베 당사자에게는 하늘이 무너질 일이지만, 관객들에게 이 장면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웃깁니다. 그건 비극적이어야 마땅할 이 상황이 거의 기계적일 정도로 도식적인 순서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이지요. 이 장면에 따르면 와타나베의 이야기는 진지하게 존중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바나나 껍질 밟고 미끄러지는 코미디처럼 늘 일어나는 진부하고 흔해 빠진 일상 중 하나일 뿐이죠.

실제로 와타나베 칸지는 그런 인물입니다. 시청에서 있으나마나 한 감투를 쓰고 앉아 바쁘기만 하고 생산성없는 30년을 보냈지요. 그는 암에 걸리기 전부터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습니다. 나중에 그는, 아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 아들은 자신의 심정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뻔한 소리를 늘어놓긴 하지만 이게 모두 핑계라는 건 세상이 알고 그도 압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는 제대로 살기엔 지나치게 겁이 많았지요.

살 날이 며칠 안 남았다는 걸 알게 된 그는 필사적으로 '살아보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는 놀 줄도 모르고 술도 못마시고 돈도 쓸 줄 모릅니다. 그는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소설가를 따라 술집과 홍등가를 누비기도 하고, 시청을 그만 둔 젊은 여자 직원 토요를 따라다니며 어설픈 데이트를 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의 삶은 꽉 막혀 있습니다. 그 절박한 좌절의 느낌 때문에 이 이야기에는 분명 가슴 뭉클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처절한 모험담은 여전히 웃깁니다. 그의 어리석음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설정의 도식성 때문이기도 하죠.

영화는 와타나베가 토요와 함께 한 마지막 저녁 식사 때 갑자기 에피파니를 체험하며 전환됩니다. 그는 드디어 자신이 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하수가 흘러나오는 공터를 치우고 그곳에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짓는 것이죠. 그는 우연히 같은 식당에서 열린 생일 파티에서 흘러나오는 [해피 버스데이 튜 유]를 새 삶의 행진곡으로 삼으며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이 장르에 속한 평범한 영화들이라면, 당연히 여기서부터 눈물을 잔뜩 섞어가며, 병마와 싸우는 와타나베가 필사적으로 놀이터를 만드는 과정을 감상적으로 보여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키루]는 그러지 않습니다. 와타나베가 현장 취재를 나서자마자, 순식간에 5개월을 건너 뛰어 그의 초상집을 보여주거든요. 여기서부터 영화는 와타나베의 갑작스러운 변신에 어리둥절하는 주변 사람들의 눈을 통해 죽은 주인공의 마지막 5개월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마 이 후반부는 [이키루]라는 영화의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일 겁니다. 주인공의 죽음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회상으로 처리한다는 아이디어는 공동각본가인 시노부 하시모토의 아이디어였다고 하니, 이 영화는 그에게 굉장히 많은 걸 빚지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이 후반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터치 때문에 영화가 여전히 배꼽잡는 코미디로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일본 관료체제를 놀려대는 아주 매정한 풍자극이지요. 맨 처음에는 와타나베가 놀이터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던 그들이 점점 부인할 수 없는 증언들이 하나씩 늘어나자 머뭇거리며 그의 공적을 인정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순식간에 영웅숭배로 돌아서서 무더기로 죽은 사람을 찬양하고 오늘의 감동을 끝까지 이어가자고 흥분하다가,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다시 시청 관료주의의 눈치보는 삶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정말로 완벽한 코미디입니다.

이 코미디를 통해 와타나베 칸지의 조용한 승리는 더욱 빛을 발합니다. 그가 한 건 어떻게 보면 참으로 하찮습니다. 동네 구석에 초라한 놀이터 하나를 세운 것에 불과하니까요. 그는 죽을 때까지 코미디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짓자!'라는 그의 목표는 보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흘러나올 정도로 소박하지 않나요? 그러나 그는 승자로 죽었습니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몸이나 사리는, 좀비와 같은 삶을 반복하는 옛 동료들을 뒤로 하고 말이에요.

언제 봐도 가슴 뭉클해지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키루]라는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조롱과 풍자의 힘입니다. 와타나베의 마지막 승리도 이 작품에 특별히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반대라면 반대입니다. 와타나베 칸지는 엄청나게 운이 좋았으니까요. 그처럼 노골적인 '시한부 인생' 공식의 혜택을 받지 못한 와타나베의 동료들은 그냥 그렇게 좀비처럼 살다가 죽었을 겁니다. 가끔가다 그 순환 속에서 운좋게 탈출한 옛 동료를 기억하면서요. (04/04/26)

DJUNA

기타등등

시무라 다카시의 연기를 언급하지 않고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끝낼 수는 없을 겁니다. 특히 굴종과 무감각으로 굳어져 버린 그의 얼굴이 표정 근육 하나 바뀌지 않고 승자의 표정으로 전환되는 그 과정을 한 번 주목해보세요. 강렬한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채플린의 그것에 맞먹는 효과적인 코미디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