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매튜 브로데릭 Matthew Broderick

주연
매튜 브로데릭....리처드 파인만
Matthew Broderick....Richard Feynman
패트리샤 아퀘트....알린 그린바움
Patricia Arquette....Arline Greenbaum
피터 리저트....멜 파인만
Peter Riegert....Mel Feynman
도리 브레너....투티 파인만
Dori Brenner....Tutti Feynman
피터 마이클 괴츠....헬먼 박사
Peter Michael Goetz....Dr. Hellman
젤리코 이바네크....빌 프라이스
Zeljko Ivanek....Bill Price
조이스 반 패튼....루스 고모
Joyce Van Patten....Aunt Ruth
제임스 르그로스....존 윌러
James LeGros....John Wheeler
제프리 포스....어린 리처드
Jeffrey Force....Young Richard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남자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습니다. 파인만만큼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이론 물리학자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파인만만큼 독특한 개성과 매력으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죠. 세상에 죽은지 10년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팬클럽을 돌리고 있는 물리학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작은 몸집의 호기심많은 남자가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와 랄프 레이튼이 같이 쓴 유쾌한 회고담인 [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부터였습니다. 이 책에는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인 파인만 다이어그램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그가 늘어놓는 것은 금고털이에서 삼바 댄스, 뒤늦게 시작한 미술, 마야 상형 문자 해독으로 이어지는 그의 엉뚱한 모험담입니다. 어디로 빠져도 지독하게 재미있죠.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뭔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쩌다 빠진 게 아니라 파인만이 일부러 건너 뛰고 있는 거죠. 이야기를 우울하게 끌고가기 싫었는지, 아니면 아픈 기억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건지, 그는 그의 첫 아내 알린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재편집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삽입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걸 삼가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나온 속편인 [What Do You Care What Other People Think?]의 한 장에서 파인만은 이야기 전체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아마 자기도 죽을 때가 되니 첫 아내가 그리워졌나 보죠. 그 결과 나온 것은 여전히 매우 파인만적이지만 놀랄 정도로 순애보 분위기가 나는 러브 스토리였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젊은 물리학도인 리처드 파인만은 알린 그린바움이라는 여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데, 글쎄 알린은 결핵에 걸려 얼마 못산다는 진단을 받지요. 하지만 그는 알린의 남은 생을 같이 하기 위해 그녀와 결혼하고 맨하탄 프로젝트에서 일하기 위해 로스 알라모스로 갑니다. 알린은 맨하탄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기 직전에 결국 죽고요.

그리고 매튜 브로데릭이 감독 데뷰작을 위해 골랐던 스토리가 바로 이 이야기였지요. 어머니인 패트리샤 브로데릭이 각본을 쓰고 그가 주연까지 했으니 참 오붓한 가족 영화였던 셈입니다.

영화 자체의 질은 어떨까요? 들쑥날쑥합니다. 영화는 진지하고 두 주연 배우들은 훌륭하게 자기 역을 연기해내고 있으며 로맨틱한 느낌도 강합니다. 하지만 각본은 종종 안이하며 (특히 이야기를 쉽게 하기 위해 나레이션을 이용하는 방식은 너무 뻔합니다) 스토리는 거칠어져요. 첫번째 핵폭탄 실험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 역시 혼란스럽기만 하고요.

가장 큰 문제점은 영화가 스토리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파인만의 이야기는 줄거리만 떼어놓고 보면 흔한 시한부 인생 러브 스토리에 불과합니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진짜 이유는 이 비극의 주인공들들이 전형적인 시한부 인생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들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알린과 리처드 파인만은 보통 연애담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감상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이성적이었고 논리적이었으며 유머를 잃지 않았습니다. [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에서 파인만은 아내 알린이 로스 알라모스의 검열관들을 골치 아프게 만들었던 여러 장난들에 대해 회상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알린이 죽기 얼마 전의 일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이런 태도는 이 시한부 인생 이야기를 아주 새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여자와 결혼한다는 행동 자체는 대책없이 로맨틱해보이지만, 파인만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분명한 대차대조표와 논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성은 감정과 충돌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영화가 주인공 커플의 이성적인 면에 촛점을 맞추었다면 영화는 훨씬 흥미로웠을 겁니다. 아마 이들의 캐릭터를 제대로 살렸다면 영화는 코믹한 요소도 상당히 띄었겠지요. 코미디가 강화되었다면 영화의 비극성도 더 살았겠지요. 대조되는 요소들은 서로의 존재감을 강화시키는 법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그들의 성격을 죽여버렸습니다. 시한부인생 러브스토리의 공식을 따르려고 했는지, 영화 속의 파인만과 알린은 실제 파인만과 알린보다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파인만의 독특한 개성은 거의 사라져서 이 괴짜 과학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들의 유머와 이성은 많이 죽었고 죽음과 상실에 대한 공포는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이해하기 쉬워졌을지는 몰라도 결국 평범한 작품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죠.

하지만 그래도 시한부 인생 이야기는 여전히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인피니티]도 예외는 아니군요. 바로 위에서 그 평범함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그 평범함이 꼭 나쁘게만 먹히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반대로 우린 이런 진부함 속에서 더 안심하고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것인지도 몰라요. (00/06/03)

DJUNA

기타등등

1. 엔드 크레딧에서 마이크 니콜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걸 보면 그가 연출을 도와주었던 모양입니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2. 출시된 작품인데도 필름스에는 자료가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