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닐 조던 Neil Jordan

주연
브래드 피트....루이
Brad Pitt....Louis
톰 크루즈....레스타트
Tom Cruise....Lestat
키어스틴 던스트....클로디아
Kirsten Dunst....Claudia
스티븐 리....산티아고
Stephen Rea....Santiago
안토니오 반데라스....아르만드
Antonio Banderas....Armand
크리스찬 슬레이터....말로이 (인터뷰어)
Christian Slater.... Malloy (The Interviewer)
탠디 뉴튼....이베트
Thandie Newton....Yvette
도미지아나 지오르다노....마들렌느
Domiziana Giordano....Madeleine

듀나 왜 흡혈귀는 송곳니로 먹이를 물어야 할까요? 송곳니는 상당히 불편한 도구입니다. 일단 입 가장자리에 있어서 물기가 힘들고 나중에 상처를 낸다고 하더라도 두 상처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빠는 데도 힘이 듭니다.

파프리카 송곳니를 안쓰는 흡혈귀도 많습니다. [어둠의 딸들]에서 바톨리 백작부인(델핀느 세이릭)은 한 번도 송곳니를 보이지 않습니다. [헝거]의 미리엄 블레이록(카트린느 드뇌브)도 마찬가지죠. 미리엄은 작은 칼로 목을 찌른 다음에 빨아 마시는 것 같던데요.

듀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흡혈귀들은 이빨 전체로 상처를 남기더군요. 그리고 상처내는 도구로 손끝에 끼우는 작은 도구를 사용하던데, 꽤 실용적으로 보였습니다.

파프리카 우리는 대부분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 육체적인 것과 무관하다고 상상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흡혈귀들은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애를 먹습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칩니다. 바로 우리들처럼요. 흡혈귀들은 공포의 영역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우리는 그들의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닙니다. 공포영화가 될 수 없습니다.

듀나 흡혈귀가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다는 선망과 로맨스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이 요즘의 경향 같습니다. 앤 라이스의 원작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우리나라 독자들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원작을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읽으면 아주 익숙한 어떤 분위기에 휩싸이게 됩니다. 바로 순정만화의 분위기 그대로가 아닙니까? 저는 이 소설을 92년 가을에 읽었는데, 김혜린이나 이정애의 만화 속의 주인공들이 소설 속을 어그적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것 같아서 아주 재미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들의 만화 속에서처럼 라이스의 주인공들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심각한 표정으로 거창하고 장황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 내용없는 일장연설을 늘어놓습니다. 세계 공통의 환상이라고 할까요?

원작 속에 묻어있는 동성애적인 요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따지고 보면 [흡혈귀 연대기] 시리즈는 그 어떤 흡혈귀 소설보다도 헤테로섹슈얼합니다. 그것은 헤테로섹슈얼한 사람이 공상하는 호모섹슈얼한 환상입니다. 남성용 포르노 소설에서 레즈비언 묘사를 첨가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코미디언이 이 영화를 평한다면서 이런 말장난을 했지요. 'Not gay enough!' 당연히 충분하지 않습니다. 애당초부터 아니었어요.

배우 이야기를 하죠.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레스타트 역을 한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전 꽤 그럴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데이 루이스는 천박하고 얄팍한 인물을 너무나 잘 소화해내는 배우입니다. 그리고 레스타트는 정말로 얇디 얇죠. 속좁고 잘 삐치는 허풍쟁이잖아요.

하지만 톰 크루즈도 분위기만 따진다면 그럴싸합니다. 루이 역의 브래드 피트도 그 정도면 꽤 잘 어울리고요.

그러나 연기를 따진다면 가장 잘하는 배우는 클로디아 역의 키어스틴 던스트입니다. 그녀는 원작이 묘사한 것보다 훨씬 나이를 먹었고 그렇게 헐리웃 식으로 예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두 남자 주연 배우가 다소 겉멋 든 연기를 펼치는데 비해 던스트는 직접적이고 솔직하고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외모도 뒤로 갈 수록 점점 더 멋있어집니다.

파프리카 피트와 크루즈의 연기가 다소 겉멋이 들었다는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 분위기나 이미지는 대충 맞지만 연기 면에서 그들이 가끔 툭툭 걸려 넘어집니다. 요새 배우들은 지나치게 사실주의적인 연기에만 익숙한 것이 아닐까요? 피트가 슬레이터에게 자기가 흡혈귀라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세요. 연기가 너무 뻣뻣해서 나무토막이 움직이는 것 같다구요.

결국 둘 다 자기 물 밖을 벗어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크루즈의 경우 그 겉멋 든 연기가 오히려 플러스가 되지 않았을런지요. 레스타트가 바로 그런 성격 아닌가요?

저도 던스트가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이 더 객관적일 겁니다. 지금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아무개씨가 기괴한 아역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열광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아서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던스트는 캐릭터의 덕도 보지 않았을까요? 루이는 쓸데없이 폼만 잡는 웃기는 우울증 환자고 레스타트는 속빈 건달에 불과하지만, 클로디아는 생명력 넘치고 목적 또한 분명한 인물입니다. 이 소설 중에서 가장 잘 짜여지고 인상적인 캐릭터이지요.

그렇게 따지면 [피아노]의 안나 파퀸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플로라라는 강렬한 캐릭터가 이미 설정되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가 그렇게 빛날 수 있었겠어요?

조연들 중에서는 산티아고 역을 한 스티븐 리가 던스트 만큼이나 좋았습니다. 산티아고와 루이가 만나는 장면은 이 영화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그가 연기하는 흡혈귀는 죽음의 무도에서 막 뛰쳐나온 것처럼 그로테스크하고 유머에 넘칩니다. 하지만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연기한 아르만드는 루이의 또다른 복사판 같아서 별 재미가 없습니다.

듀나 유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이 영화 각색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블랙 유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무시하려고 하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지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는 사람들을 여럿 만난 적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제가 여러군데에서 몹시 웃었다고 하니까 날 한심한 눈으로 쳐다 보더군요. 반대로 이 영화를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제가 좋아하는 희극적인 장면들을 물고 늘어집니다.

모든 그로테스크한 것들의 중심에는 유머가 있습니다. 애당초부터 흡혈귀 자체가 희극적인 존재입니다. 살아있는 시체는 오페라 좌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동네 장터의 소극에 어울립니다. 할로윈 파티가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공포영화들이 끊임없이 코미디 소재로 재활용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생각해보세요. 애당초부터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공포가 삭제된 고딕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남아야 할 것은 유머가 아닐까요? 그리고 흡혈귀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불사자가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을 정서 역시 웃음이 아닙니까?

개인적으로 전 원작 소설의 가장 큰 단점이 유머가 부족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작은 지나치게 무게를 잡습니다. 닐 조던은 그 소설에 환기를 시켜주었습니다. 전 산티아고가 굴다리 아래에서 추는 익살맞은 춤과 클로디아가 흡혈귀가 된 직후에 이어지는 여러 유쾌한 에피소드들을 좋아합니다. 파리의 흡혈귀들의 곤충과도 같은 그로테스크한 동작들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원작이 묘사한 그대로가 아닙니다.

닐 조던도 원작에 대해서 저와 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레스타트가 막판에서 "아, 루이, 이 친구는 아직도 징징 짜는군! 넌 도대체 이걸 어떻게 참았냐?"라고 말했을 때 그는 바로 원작소설에 대한 조던의 감상을 표현했겠지요.

파프리카 크레디트에는 앤 라이스 자신이 각색했다고 하던데요.

듀나 헐리우드에서 1차 각색 원고가 그대로 받아 들여진다면 그건 세상 종말의 신호입니다. 그리고 닐 조던 같은 작가 출신의 감독이 그 각색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세상에 믿을 건 하나도 없을 겁니다.

파프리카 소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구성상 문제가 많은 작품입니다. 일단 인물들의 행동들이 믿을 만하지 않습니다. 행동동기들이 너무나 불충분하지요. 게다가 주인공인 루이는 자발적으로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소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장광설들을 다 털어내면 사건 자체가 얼마 없습니다.

저는 각색 작업이 이 단점을 완전히 보완해주었다고 믿지 않습니다. 몇가지 잘한 점들이 눈에 띄긴 합니다. 예를 들어 동유럽의 흡혈귀를 찾으려고 난리법석을 치는 장을 줄인 건 잘한 일입니다. 원작과는 다른 마지막 결말도 좋습니다. 영화에서는 레스타트가 클로디아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데, 이 점은 속편(만들 생각이라면)과 크루즈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도 그럴 듯한 선택일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단점이 남습니다. 원작의 장광설이 감싸고 있던 뼈가 드러나기 때문에 내용의 엉성함이 소설보다 훨씬 잘 보입니다. 레스타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지 않았기 때문에 파리 흡혈귀들이 클로디아와 루이에 대한 반감을 느끼는 이유가 약해집니다. 그리고...

듀나 루이에 대한 산티아고의 반감은 질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에바 마리 세인트에게 마틴 랜도가 품었던 감정과 같지 않겠어요?

파프리카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하여간 긴 소설을 만들 때 생기는 덜컹거림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보입니다. 가장 큰 결점은 닐 조던의 관점과 앤 라이스의 관점이 다르다는 겁니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부족합니다. 앤 라이스가 '조던이 원작의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고 한 이유를 전 도통 모르겠습니다.

듀나 일관성이 부족한 건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의 음악은 결코 좋은 편이 아닙니다. 200여년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므로 당연히 여러 종류의 음악이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음악은 배경 설명 뿐만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일관성있게 조절해주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엘리어트 골든소르는 하나도 한 일이 없습니다. 패트릭 도일이나 대니 앨프먼이었으면 잘 했을텐데요.

파프리카 하지만 페레치의 세트나 루슬로의 촬영은 좋았습니다. 제가 간단히 이 영화를 평한다면, 여러 재미있는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통일성이 부족한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순수한' 조던의 영화에 비해 완성도는 떨어집니다.

듀나 저 역시 부분부분의 디테일에 치중하면서 감상하는 편이 유리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흡혈귀 영화는 공포영화다'라는 선입견부터 버리는 게 좋겠지요.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흡혈귀를 주인공으로 한 '공포 영화'를 만들겠습니까?

파프리카 이건 그냥 개인적인 불평인데, 마들렌느가 좀 더 오래 등장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마들렌느가 '죽지 않는 아이'를 보다 오래 소유했더라면 덜 불쌍했을텐데요.

듀나 그럼 영화가 더 길어졌을 겁니다. 사실, 영화에서 마들렌느는 없어도 됩니다. 하지만 작가 자신이 모델인 인물을 빼먹어서야 말이 되겠어요? 그리고 어린애를 혼자 죽게 할 수도 없고요. 지금 생각해도 이런 식으로 간단히 넣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95/01/10)

D&P

기타등등

후우... 날짜를 보니 벌써 5년 전이군요!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앤 라이스는 우리에게 거의 소개가 되지 않았던 작가였죠. 요새야 너무 나와서 지겹지만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유쾌한 흥분은 사라진 지 오랩니다(그래도 그 책은 꽤 재미있게 봤답니다.) 이제 라이스도 비토리오인지 뭔지를 꺼내 연대기를 잇는 대신 다른 소재를 찾는 게 어떨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