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패트리샤 로제마 Patricia Rozema

주연
쉴라 맥카시....폴리 반더스마
Sheila McCarthy....Polly Vandersma
폴 벨라르종....가브리엘 생 프레
Paule Baillargeon....Gabrielle St. Peres
앤-마리 맥도널드....메리 조셉
Anne-Marie MacDonald....Mary Joseph
리처드 모네트....클라이브
Richard Monette....Clive
존 에번즈....워렌
John Evans....Warren

1.

패트리샤 로제마의 처녀 장편의 제목을 장식하는 'I've heard the mermaids singing'이라는 시구의 출처는 T.S. 엘리엇의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입니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영화 배경음악처럼 달콤한 구절이지만 당사자인 J. 알프레드 프루프록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아시겠지만 이 불쌍한 남자가 원래 했던 말은...

I have heard the mermaids singing, each to each;
I do not think that they will sing to me.

프루프록에게 인어의 노래는 현실세계에서 도달할 수 없는 관능적인 꿈의 대상이었지만, 우린 좀 바꾸어 보는 게 어때요? 예를 들어 '예술'이라고 부르는 대상에 대한 것과 충돌할 때, 우린 종종 저 먼 곳에서 자기들끼리만 속닥거리는 인어들의 노래 소리를 듣지 않나요?

2.

쉴라 매카시

이 영화의 주인공은 폴리 반더스마입니다. 예쁘지도 않고 직업적 능력도 없는 이 31살의 처량한 노처녀('성공적이지 못한 커리어 우먼'이 이런 사람들에 대한 정치적으로 공정한 표현인 모양입니다만)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취미로 삼고 있는 사진입니다. 끝없이 임시직을 전전하던 폴리는 갤러리 큐레이터인 가브리엘의 마음에 들어 난생 처음으로 고정직을 얻게 됩니다. 학교 선생한테 반한 여고생처럼 가브리엘을 숭배하고 우상화하던 폴리는 가브리엘에게 메리라는 애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데, 사실 메리는...

뭐, 이런 식으로 나갑니다. 자세한 건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가브리엘에 대한 폴리의 환상이 처절하게 깨지고 그것이 폴리의 자기 발견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것 정도는 해도 되겠지요.

피터 셰퍼의 [아마데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인어의 노래를 들었다]는 예술에 대한 소박한 우화입니다. 폴리와 가브리엘은 그 우화를 위해 존재하는 도구들이죠. 폴리는 수줍고 자신감이 부족하며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진정한 예술가입니다. 폴리와는 반대로 가브리엘은 완벽한 지적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재능도 심미안도 없는 스노브에 불과합니다. 둘은 시소의 양쪽 끝과 같습니다. 한 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내려갑니다.

이런 모양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나는 인어의 노래를 들었다]는 아이러니가 넘쳐 흐릅니다. 폴리는 가브리엘을 예술가적인 존재로 여기고 사랑하지만 그러는 동안 예술가적인 환상과 재능, 감수성을 보여주는 사람은 폴리입니다. 부러움을 받아야 할 사람은 폴리 자신인 것이죠.

[나는 인어의 노래를 들었다]라는 시구는 폴리와 가브리엘 둘 다에게 다른 의미로 먹힙니다. 영화 속의 환상 장면에서 폴리는 정말로 인어의 노래를 듣습니다. 인어는 폴리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입니다. 하지만 가브리엘에게 이 시구는 프루프록한테 그랬던 것처럼 비극적입니다. 그녀는 평생 남의 그림에 예쁜 말 장식이나 달아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3.

[나는 인어의 노래를 들었다]는 오락가락하는 폴리의 심경처럼 다양한 스타일과 감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영화는 현실 세계와 폴리의 꿈을 오가고 폴리의 내면적 비극과 외면의 코미디를 결합시킵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주 산만해질 수 있으며 감정이입을 어렵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인어의 노래를 들었다]는 그 위기를 꽤 안전하게 극복했습니다. 그건 폴리 반더스마라는 캐릭터가 아름답고 그 캐릭터를 연기한 쉴라 매카시가 굉장히 좋은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폴리 반더스마는 영화 자체처럼 아이러니컬한 매력으로 일관하는 캐릭터입니다. 캐릭터가 자신없어 하는 모든 점들이 오히려 스크린 앞에서는 매력이 되는 거죠. 감정이입이 아주 쉬운 캐릭터이지만 그 때문에 관객들이 그 캐릭터의 희극적인 면을 놓치게 되는 일도 없습니다.

매카시가 없었다면 이런 결과는 얻을 수 없었겠죠. 매카시는 비극을 기가 막히게 희극적으로 전환시키는, 아주 훌륭한 코미디언들만이 가진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식집 문어 소동과 같은 순수한 슬랩스틱에서 후반부의 상심까지 모두가 아름답고 진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영화는 로제마의 영화인 것만큼이나 매카시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99/05/06)

D&P

기타등등

우리 나라 사람들만 재미있어 할 만한 부분이 하나 있죠. 가브리엘의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장식하는 검은 무늬는 사실 '태권도'라는 한글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