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버트 스티븐슨 Robert Stevenson

주연
조안 폰테인....제인 에어
Joan Fontaine....Jane Eyre
페기 앤 가너....어린 제인 에어
Peggy Ann Garner....Young Jane Eyre
오슨 웰즈....에드워드 로체스터
Orson Welles....Edward Rochester
엘리자베스 테일러....헬렌 번즈
Elizabeth Taylor....Helen Burns
마가렛 오브라이언....아델
Margaret O'Brien....Adele
존 서튼....리버즈 박사
John Sutton....Dr. Rivers
사라 올굿....베시
Sara Allgood....Bessie
헨리 다니엘....브로클허스트
Henry Daniell....Brocklehurst
아그네스 무어헤드....리드 부인
Agnes Moorehead....Mrs. Reed
이디스 바레트....패어팩스 부인
Edith Barrett....Mrs. Fairfax
바바라 에버레스트....레이디 잉그램
Barbara Everest....Lady Ingram
힐러리 브룩....블랜치 잉그램
Hillary Brooke....Blanche Ingram

1.

영화가 시작되면, 각색자 크레디트에 쓰여진 존 하우스먼이나 올더스 헉슬리같은 '위대한' 이름들이 들어옵니다. 헐리웃이 이 소설을 각색하는 데에 얼마나 돈을 들였나 궁금하지 않을 수 없죠.

그러나 각색된 결과물이 과연 '이름값'을 하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듭니다. 이 영화의 각본은 매우 전형적인 40년대 헐리웃 영화 풍이거든요. 원작의 책장을 넘기면서 시작하는 안전한 도입부부터 혹시나 관객들이 못 따라올까봐 자상하게 토를 다는 대사들까지 안전하기 그지 없어요. 특히 헬렌의 죽음 이후 리버스가 어린 제인에게 하는 대사는 거의 캠페인처럼 들리기까지 합니다.

각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원작의 후반부에서 발견됩니다. 이 영화에서도 세번째 도막(그러니까 각색자에겐 악몽인 세인트 존의 등장 부분)은 수난을 겪는데, 이 영화의 각색자들은 과감하게 세인트 존을 없애버렸습니다. 그 결과 영화는 '교양소설'로서의 차원을 완전히 상실해버렸지요.

뭐 저보고 하라고 시켰어도 그 부분은 어떻게 줄이려고 애를 썼을 겁니다. 하지만 그 부분의 삭제는 그렇지 않아도 정신없이 흘러가는 영화의 후반부에 엄청난 가속을 걸어버립니다. 그 결과 중단된 결혼식 부분부터 엔딩까지는 속도가 너무나도 빨라 마치 다이제스트 본을 속독으로 휙휙 읽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이 영화는 헐리웃 기준으로도 결코 긴 영화라고 할 수 없으니(겨우 96분입니다) 좀 더 여유있게 페이스를 유지했어도 문제는 없었을 것 같군요.

2.

로버트 스티븐슨의 [제인 에어]는 샬로트 브론테에 대해 일반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로맨틱한 비전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 아주 능숙하게 따르고 있지요. 영화는 어둡고 콘트라스트가 두드러진 화면들로 가득 차 있고 손필드 주변에는 안개로 변장한 드라이 아이스가 깔려 있으며 손필드는 황량한 앤 래드틀리프식 성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미지들이지만 인상적이라는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죠. 브론테 원작의 영화들은 필름 느와르처럼 흑백으로 만드는 게 가장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로맨티시즘은 물론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입니다. 결코 제인은 헐리웃식 후광을 끌고 다니는 조안 폰테인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로체스터도 영화 속에서처럼 무뚝뚝하지만은 않았으며 손필드도 그렇게 고딕적이기만 한 곳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96분이라는 시간은 스토리 뿐만 아니라 캐릭터와 분위기의 복잡성까지 제한하기 마련입니다.

3.

이 영화에서 제인 에어를 연기하는 배우는 페기 앤 가너와 조안 폰테인입니다. 폰테인은 이 영화 이전에 뒤 모리에 식 [제인 에어]라고 할 수 있는 [레베카]에서 이름없는 주인공 역을 연기한 적 있지요. 그래서인지 두 캐릭터의 이미지는 여러 모로 겹칩니다.

폰테인이 연기한 내성적인 가정 교사는 분명 설득력이 있고 연기도 아름답습니다. 문제는 그 때문에 제인이라는 캐릭터의 당찬 모습까지 사라졌다는 건데, 그건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제인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단점입니다. 역시 저한테 가장 제인다웠던 배우는 수잔나 요크입니다.

어린 시절을 연기한 페기 앤 가너에게는 폰테인에게서 느끼기 힘든 바로 그 당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배우의 연기는 헐리웃 아역 배우의 스타일에 너무 의지하다보니 적절한 감정의 표출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제피렐리는 안나 파퀸에게 헬렌의 죽음에 반응하는 긴 신을 주어서 그 배우에게 비르투오시티를 발휘할 기회를 주지만, 스티븐슨은 단지 헬렌의 죽은 손만을 비추어 죽음을 설명하고 곧장 헬렌의 무덤가에서 울고 있는 제인으로 넘어갑니다. 페기 앤 가너의 제인은 분명 매력적이나 파퀸의 제인이 가진 깊이는 없습니다.

마가렛 오브라이언은 이 영화에서 지나치게 귀엽습니다. 물론 아델이 그렇게 강렬한 역은 아닙니다만 이 영화의 아델은 오브라이언식 귀여움이 너무 지나쳐서 거의 레이스 달린 장난감처럼 보입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헬렌 번즈로 등장해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역시 이 배우는 어린 시절이 보기가 편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오슨 웰즈입니다. 그의 로체스터는 거창하고 비장하며 카리스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원작의 로체스터가 보여주었던 그 정신없는 재치는 부족하지만 그럴싸한 구경거리임은 분명하지요.

4.

버나드 허먼은 여전히 그의 오페라같은 음악을 선사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그의) 평균수준일 뿐입니다. 더 가벼운 분위기의 영화였던 [유령과 뮤어 부인]에 사용된 음악이 훨씬 강한 로맨티시즘을 표출하고 있었지요.

[제인 에어]에게 어떤 대단한 영화적 가치를 읽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성기의 헐리웃이 고전물의 각색에 얼마나 능했으며 그 매너리즘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완성되었는가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줍니다. 걸작은 아니지만 잘 만든 영화이며 튀지는 않지만 분명 무시할 만한 영화도 아닙니다. (97/11/30)

DJUNA

기타등등

제피렐리의 [제인 에어]는 다음에 다루기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