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돈 채피 Don Chaffey

주연
토드 암스트롱....이아손
Todd Armstrong....Jason
낸시 코박....메데아
Nancy Kovack....Medea
게리 레이몬드....아카스투스
Gary Raymond....Acastus
로렌스 나이스미스....아르고스
Laurence Naismith....Argos
나이얼 맥기니스....제우스
Niall MacGinnis....Zeus
마이클 귄....헤르메스
Michael Gwynn....Hermes
더글러스 윌머....펠리아스
Douglas Wilmer....Pelias
잭 귈림....아에테스 왕
Jack Gwyllim....King Aeetes
오너 블랙맨....헤라
Honor Blackman....Hera
존 카이니....힐라스
John Cairney....Hylas
패트릭 트루톤....피네아스
Patrick Troughton....Phineas
앤드류 폴드....팔레루스
Andrew Faulds....Phalerus
나이젤 그린....헤라클레스
Nigel Green....Hercules

1.

[쥬라기 공원]이 계획단계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한참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보나마나 스필버그는 스톱 모션 인형들로 공룡들을 살려내려 할 것이고 그 공룡들은 로봇처럼 턱턱 움직이며 리얼리티를 망쳐놓겠지요.

하지만 나온 영화는 컴퓨터가 만들어낸 생생한 디지탈 공룡들로 부글거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생생한 리얼리즘에 압도 당했어요. 이 리얼리즘 앞에서 구식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은 사망 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 뒤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디지탈 괴물들은 일상적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남발하고 있다는 느낌이죠.

이쯤해서 보니, 그 옛날의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합니다. [제국의 역습]이 재개봉되었을 때 그 영화의 초반을 장식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 주는 그 딱딱한 느낌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던지요. [돌아온 오즈]에서 꿈틀거리는 놈 왕의 모습은 얼마나 흥미진진했던가요. 슬슬 산문적이고 따분해지기 시작하는 디지탈 괴물들에 비해, 이들은 여전히 어떤 마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

레이 해리하우젠의 최고 걸작을 뽑으라면 가장 많은 지지표를 얻는 작품은 [제이슨 앤 아거노츠]일 겁니다. 그건 이 영화가 해리하우젠이 참여한 영화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는 뜻도 아니고 가장 재미있는 영화라는 뜻도 아닙니다. 해리하우젠의 특수 효과가 가장 빛을 발한 영화라는 뜻이죠.

사실 레이 해리하우젠의 영화에서 영화 자체의 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해리하우젠이니까요. 관객들은 배우들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해리하우젠이 만들어낸 괴물들을 보러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정말 근사한 괴물들로 가득합니다. 아르고 호를 한 손으로 들어올려 집어 던지는 청동 거인 탈로스, 황금 양털을 지키는 히드라, 맹인 예언자의 손에서 빵을 빼앗는 하피들...

물론 그 절정은 마지막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해골 병사들과 아르고 선원들의 결전입니다. 이 장면은 지금 보아도 근사하죠. 실사 배우들과 스톱 모션 해골 인형들은 태평스럽게 한 화면 아래서 칼싸움을 벌입니다. 실사 배우가 해골 인형의 머리를 자르면 해골 인형은 실사 배우의 다리를 찌르고, 실사 배우가 해골 배우의 갈비뼈 사이에 칼을 밀어 넣으면 해골 배우가 실사 배우를 바다로 밀어넣습니다.

해리하우젠이 오스카 공로상을 받던 날, 톰 행크스가 말했지요. "[제이슨 앤 아거노츠]는 우리 세대의 [쥬라기 공원]이었습니다." 맞는 말이었어요.

3.

해리하우젠의 영화들을 보면 종종 굉장히 위선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그 사람의 후기 '신화물'들을 볼 때 그래요. 관객들은 괴물들을 보러왔고 그 쪽의 의도도 괴물들을 풀어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면서도 스토리와 주인공이 있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거든요.

해리하우젠의 영화가 스필버그의 영화에 비해 떨어지는 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겠지요. 스필버그의 영화는 특수 효과가 없는 부분도 영화적으로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해리하우젠의 영화에서 특수 효과가 없는 부분은 특수 효과가 나오는 부분의 동기를 마련해주기 위한 막간일 뿐입니다. 상대적으로 심심해요.

특히 신화에 별다른 애착을 못느끼는 저 같은 사람에게 이 영화의 스토리는 그렇게 어필하지 않습니다. 캐릭터도 마찬가지지요. 아무리 그럴싸하게 꾸미려고 해도 저한테 이아손은 다른 그리스 신화 '영웅들'처럼 그저 못돼먹은 깡패일 뿐입니다. 후일담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겐 이아손과 메데아의 러브 스토리도 꽤 구질구질하게 느껴질 겁니다.

배우들도 마찬가지에요. 어제 본 영화인데도 그 사람들 얼굴도 제대로 기억 안나는군요. 기억나는 얼굴은 헤라 역을 한 오너 블랙맨 뿐인데, 사실 그 사람도 그리스 복장과 황금 가발보다는 착 달라붙는 [어벤저] 가죽 옷이 더 어울립니다.

그래도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괴물들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이를 꽤 짧고 빠르게 연결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4.

이 영화의 해골 장면이 후대에 끼친 영향에 대해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요. 하지만 후반 장면을 거의 베끼다시피한 [이블 데드 3] 이야기를 안하고 넘어갈 수는 없죠. 나중에 한 번 [이블 데드 3]을 빌려다 해골 장면을 비교해보세요. 구프로라 돈도 별로 안 들테니까요. (99/10/03)

D&P

기타등등

요새 와서 보면 몇몇 시대에 뒤떨어진 특수 효과의 한계들이 눈에 뜨이는데, 그것도 영화에 묘한 재미를 줍니다. 예를 들어 아르고 호가 돌들이 떨어지는 해협을 지나는 장면을 보세요. 물이 너무 깨끗하고 물방울이 너무 커서 미니어처 티가 또렷하게 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