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누도 잇신 Isshin Inudou

주연
이케와키 치즈루....조제
Chizuru Ikewaki....Josee
츠마부키 사토시....츠네오
Satoshi Tsumabuki....Tsuneo
우에노 주리....카나에
Juri Ueno....Kanae
아라이 히로후미....코지
Hirofumi Arai....Koji
신야 에이코....조제의 할머니
Eiko Shinya....Josee's grand mother

츠네오와 조제

마작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츠네오의 동네에서는 수상쩍은 할머니가 새벽마다 유모차를 끌고 마을을 돕니다. 어느 날 츠네오는 모두가 궁금해하는 그 유모차의 정체를 알게 되는데, 그건 바로 반신불수에 걸린 할머니의 손녀인 쿠미코였죠. 처음엔 호기심반, 동정심반으로 쿠미코의 집을 방문하던 츠네오는 프랑스와즈 사강의 소설 주인공 이름을 따서 자신을 조제라고 부르는 이 장애인 여성에 빠지게 됩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기본 설정은 19세기 구닥다리 로맨스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멀끔한 외모에 그럭저럭 능력이 되는 대학생 청년과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숨어사는 극빈자 장애인 여성의 로맨스이니 말이에요. 이런 경우 이야기는 대충 두가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신분과 장애를 넘어선 불멸의 사랑을 보여주거나, 처음부터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둘 사이의 간격이 결국 벌어져 여자주인공에게 치명적인 비극적 결말을 안겨주거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가장 큰 중요한 특징은 영화가 의식적으로 두 가지 모두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불멸의 사랑에 대한 판타지 대신 냉정하게 사랑의 유한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두 사람이 맺어지지 않는 결말도 감상적인 비극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쿨'하려 합니다. 구질구질한 감상에 자신을 묻는 대신 유한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과 환경 속에서 최선의 쾌락과 가치를 찾으려 하지요. 이건 현명한 현실주의일 수도 있고, 그런 유한성을 재료로 삼아 또다른 종류의 감상주의를 제공하는 술수일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에 모델을 제공해주었던 프랑스와즈 사강의 소설들이 그런 것처럼요.

영화의 주인공 조제 역시 '쿨'한 캐릭터입니다. 조제는 로맨스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애 여성의 매력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청순가련 이미지'로 상대방이나 관객들을 협박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죠. 남들이 버린 책들로 독학해서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지식을 쌓아올린 조제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무척 신선하고 재미있습니다. 평범하고 지루한 삶을 사는 츠네오가 조제에게 푹 빠져 버렸던 것도 그 때문이겠죠. 조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유원지처럼 현실에서 벗어난 쾌락을 제공해줍니다. 바로 그 때문에 둘의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예쁜 가을 영화입니다. 특별히 감정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관객들에게 여운을 남길 줄 알죠. 아무리 인공적으로 설정되었다고 해도 조제는 흥미로운 캐릭터이고 이 캐릭터의 조용한 성장은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너무 깔끔하기 때문에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인공적인 '쿨'함의 외피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군요.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04/10/18)

DJUNA

기타등등

아시겠지만 얼마 전에 프랑스와즈 사강이 죽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 건 일종의 간접적인 애도 행위가 될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