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Kiyoshi Kurosawa

주연
아소 쿠미코....쿠도 미치
Kumiko Aso....Michi Kudo
카토 하루히코....가와시마 료수케
Haruhiko Katô....Ryosuke Kawashima
코유키....가라사와 하루에
Koyuki....Harue Karasawa
쿠루메 아리사카....준코 사사노
Kurume Arisaka....Junko Sasano
마츠오 마사토시....야베 토시오
Masatoshi Matsuo....Toshio Yabe
타게다 신지....요시자키
Shinji Takeda....Yoshizaki
후부키 준....미치의 어머니
Jun Fubuki....Michi's mother
야쿠쇼 코지....선장
Kôji Yakusho....Ship Captain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치와 료수케

구로사와 기요시의 [회로]는 전형적인 가도가와 호러물처럼 시작합니다. 귀신 들린 비디오 테이프 대신 귀신 들린 웹사이트가 등장해 불길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인터넷을 통해 거기에 접속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한 명씩 실종되지요. 물론 얼굴이 보이지 않는 긴 머리 유령들이 흐느적거리면서 등장하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이 영화의 전형성을 안심하고 즐길 수는 없습니다. 중반 이후 영화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거든요. 두 남녀 주인공들이 등장해 (이들은 후반부에나 간신히 만납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의 비밀을 풀려고 하지만 그들은 결코 정답을 얻지는 못합니다. 그들보다 머리가 좋은 주변 사람들이 몇몇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그것도 가설에 불과하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완벽하게 설명하지도 못합니다. 단지 불길한 암시일 뿐이죠. 사태가 이렇게 흐릿하니 원혼을 위로하거나 내쫓는 해결책 역시 제시되지 못합니다.

결정적으로 이 이야기의 스케일은 굉장히 큽니다. 화원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과 컴맹인 경제학과 학생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일단 인터넷을 통해 문이 열리자, 그 신비스러운 사건들은 도쿄를 벗어나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장됩니다. 흔한 유령 이야기인 줄 알았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묵시록적 비전으로 둔갑한 것이죠.

이 거창한 이야기 전개는 논리적입니다. 비디오 테이프는 개인적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감염의 공포는 후자 쪽이 당연히 큽니다. 뭔가가 잘못되면 그게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테크놀로지에 대한 공포증으로 흘러갑니다. 구체적인 비판은 아니에요. 공포증이죠. 광섬유와 전화선으로 우리를 알 수 없는 바깥 세계로 연결해주는 동시에 우리를 물리적인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는 이 신비스러운 현대의 마법이 그냥 무섭단 말이죠.

이런 두려움은 보다 익숙한 공포증과 연결됩니다. 죽음과 고립과 타인에 대한 공포지요. 이 영화가 암시하는 내세는 오로지 존재의 지속만이 가능한 영원한 고독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몰라도 오히려 유령들에겐 잘된 일일 수도 있을 거예요. 이 공포증이 은근히 일본적이라는 사실도 지적할 수 있겠군요. 적어도 일본 문화의 스테레오타입과 썩 그럴싸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회로]의 진짜 재미는 흐릿한 메시지나 공포효과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에 담겨 있습니다. 물론 메시지도 그럴싸하고 검은 유령들로 만들어낸 불쾌한 공포효과도 좋아요. 하지만 영화는 분명한 무언가를 만드는 대신 죽음과 종말에 대한 우울하고 막연한 시적인 비전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입자가 굵고 어두운 갈색조 화면이 그려낸 이 영화의 묵시록은 불쾌하고 무서운 동시에 무척 아름답습니다.

인터넷이라는 첨단 기술문화를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지만, [회로]의 이야기는 보편적입니다. 사람들은 늘 죽음과 죽음 뒤의 세계를 두려워하면서도 그에 매료되어왔으며 그에 대한 수많은 꿈들을 꾸어왔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인터넷을 이용해 그 꿈의 영역을 확장시킨 것뿐이죠. (06/03/24)

DJUNA

기타등등

몇 년 안 된 영화인데, 그 동안 세상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요새 애들은 플로피 디스크가 뭔지 알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