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도미닉 세나 Dominic Sena

주연
브래드 피트....얼리 그레이스
Brad Pitt....Early Grayce
줄리엣 루이스....아델 코너즈
Juliette Lewis....Adele Corners
데이빗 듀코브니....브라이언 케슬러
David Duchovny....Brian Kessler
미셸 포브스....캐리 로플린
Michelle Forbes....Carrie Laughlin
캐서린 라슨....십대 소녀
Catherine Larson....Teenage Girl
데이빗 밀포드....운전사
David Milford....Driver
존 자켄....피터
John Zarchen....Peter
데이빗 로즈....에릭
David Rose....Eric

1. 칼리포니아와 캘리포니아

C를 K로 바꾼다고 캘리포니아가 칼리포니아로 발음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걸 강조하고 싶다면 [칼리포니아]로 제목을 단다고 해도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읽기는 좀 쑥쓰럽지만요.

C를 K로 바꾼 캘리포니아의 표기는 영화 시작할 때 등장합니다. 브라이언이 대학에서 여행동반자들을 구한다는 광고쪽지를 쓸 때, 그는 일부러 그런 표기를 쓰죠. 처음에는 단지 살인 현장 답사 여행을 가리키는 조크였을 테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당연히 보다 끔찍하고 직접적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칼리포니아]는 약간 뒤틀려져 있지만 거의 원형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 주인공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캘리포니아는 하나의 이상향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리고 그 이상향으로 가는 길은 피로 범벅이가 되어 있죠. 우리는 이런 구조를 가진 영화나 소설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아마도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 우리가 깔려 살아가야 하는 이 세계를 더 추악하게 보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2. 칼리포니아

[칼리포니아]의 주인공들은 4명입니다. 연속 살인 사건에 대한 커피 테이블 북을 쓰고 있는 작가인 브라이언과 그의 애인인 사진작가 캐리, 그리고 연속살인범인 얼리와 다소 지능이 모자라는 그의 애인 아델. 4가 원래부터가 꽉 짜여진 숫자이지만,이들이 이루고 있는 구조는 거의 갑갑할 정도로 균형잡혀 있고 잘 계산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실제 살인범인 얼리와 살인에 대한 책을 쓰는 브라이언의 관계를 보죠. 이런 관계는 나약한 지식인에 대한 냉소섞인 야유, 또는 무산계급에 대한 공포감을 표출하는 데에 자주 사용되죠. 이런 내용의 영화에서는 늘 그렇듯이 여기에도 지위의 역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브라이언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굽신거리던 얼리는 서서히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일행을 지배합니다.

여기엔 브라이언의 탁상 지식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얼리가 보안관을 살해하려고 할 때, 브라이언은 "그 사람의 얼굴은 네 아버지의 얼굴이 아니야!"라고 외칩니다. 나름대로 좋은 시도였지만 얼리는 그의 엉터리 정신분석을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웃으면서 보안관을 쏴버립니다.

하지만 얼리가 브라이언을 지배할 수 있었던 도구는 살인만이 아닙니다. 브라이언은 그의 에이모럴한 성격 자체에 매료되어서 그에게 동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얼리처럼 될 가능성이 있고 심지어 갈망하기도 합니다. 바로 그런 점이 이 영화를 공포영화로 만들고 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동전을 떨어뜨리는 것. 머리 속의 무언가가 탁 끊기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우리들은 얼리와 같은 복많은 (?) 종자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부러워합니다. 브라이언은 살인을 못하는 대신 살인에 대한 책을 쓰고 살인현장에서 살인 당시 피해자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들으며 어설프게나마 그 흉내를 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짜 살인 못지 않게 폭력적인 것입니다.

[칼리포니아]의 폭력 구조는 계급적인 방향 뿐만이 아니라 성적인 방향으로도 뻗어 있습니다. 아델과 얼리의 관계는 사도매저키즘적이며, 정상적이고 평등해보이는 브라이언과 캐리에게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특히 살인현장에서 브라이언이 하는 행동들은 캐리에게 직접적인 폭력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각본가가 여기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단지 폭력-가해자-남성, 비폭력-피해자-여성이라는 상식적인 구분을 극적 전개와 긴장 조성을 위해 이용했을 뿐입니다. 그런 구분은 핵폭발 실험장의 마지막 장면에서 캐리가 얼리를 후려칠 때 조금 희극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녀가 그 때 사용한 무기는 바로 커다란 딜도였습니다!...^^

3. 그리고...

[칼리포니아]는 겉보기엔 꽤 새로워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헐리우드 폭력 영화의 전형적인 모럴과 플롯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브라이언과 얼리의 결투 장면에서 특히 그런 점이 드러나죠. '폭력에는 폭력으로', 그리고 주인공의 여자를 건드리면 큰일난다는 제1법칙...^^

하여간 브라이언과 캐리는 얄밉게도 얼리와 아델을 떨구고 간신히 캘리포니아로 도망갑니다. 죽은 뒤에도 얼리와 아델의 목소리는 계속 그들을 쫓아다니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공포영화의 일상적인 규약이고요. 그러나 이런 생각도 해봐요. 어차피 결말은 내야 할 것이고 이렇게라도 해놓지 않았다면 극장 문을 나선 뒤에도 터무니없이 기분 나빴을 거라고. 이렇게 처리해도 이 영화가 악몽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이 영화가 '잘 만든' 영화인 점도 인정을 해야겠지요. 능숙한 스탭들과 적절하게 캐스팅된 좋은 배우들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거죠. 특히 아델 역을 연기하는 줄리엣 루이스는 압권입니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얼리도 생동감 있고 생생합니다. [가을의 전설]을 보고 '이 친구가 앞으로 진짜 배우 노릇을 할 수나 있을까?'하고 의심하신 분들이라면 한 번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이야기 성격상 다소 가려지는 배역을 연기한 데이비드 듀코브니와 미셸 포브스도 좋았습니다. 도미닉 세나의 연출이 너무 감각적으로 흐른 것이 아니냐고 불평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 정도면 꽤 잘 만들었다고 하겠어요. 적어도 [칼리포니아]는 긴장감이 넘치는 '좋은' 스릴러 입니다.

그러나 '더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하는 불만은 타당합니다. 깊이 있게 다룰 수도 있는 주제들을 가지고 그냥 스릴러를 만들고 말았으니까요. (95/06/30)

DJUNA

기타등등

브라이언 역을 한 두코브니와 가끔 장소를 알려주기 위해 나오는 자막 때문에 [X 파일]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