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준익

주연
감우성....장생
정진영....연산군
이준기....공길
강성연....장녹수
장항선....처선
유해진....육갑
정석용....칠득
이승훈....팔복

장생과 공길

[왕의 남자]는 장생과 공길이라는 두 광대가 한양으로 오면서 시작됩니다. 연산군과 장녹수를 광대놀음의 소재로 썼다가 체포된 그들은, 장생의 허세와 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내시 처선 덕택에 왕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됩니다. 이들이 맘에 든 연산군은 그들을 전속 궁중광대로 삼고, 이들은 엉겁결에 겹겹으로 싸인 궁중 음모에 말려듭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김태웅의 희곡 [이(爾)]입니다. 연극은 아직 안 봤어요. 영화를 보고 나니 보고 싶어집니다. 벌써 영화의 문제점 하나를 지적한 셈이죠. [왕의 남자]는 그 자체로 오리지널처럼 보이지는 않는 영화입니다.

[왕의 남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절충주의입니다. 영화는 연극에서 기본 설정 몇 개만 가져와 거의 이야기 전체를 새로 쓰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렇게 독립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접하지 못한 원작의 '통풍 버전'처럼 보여요. 영화의 구성은 흐릿하고 종종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웃기는 건 그런 통풍을 고려하고 보지 않은 원작을 재구성한다면 김태웅의 희곡과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올 거라는 것입니다.

이 통풍 버전은 분명한 스타일도 없습니다. 각 시퀀스마다 필요한 것들을 다른 데에서 빌려온 것처럼 보여요. 몇몇 부분은 좀 심합니다. 대표적인 부분이 이 영화의 [곤자고의 시역]인 경극 장면인데, 조선 광대들이 며칠 안에 경극을 책만으로 마스터한다는 설정 자체가 설득력이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졸속일 수밖에 없고 제대로 된 스펙터클도 끌어오지 못하는 흉내는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나았어요.

지금까지 불평만 늘어놨는데, 사실 [왕의 남자]는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영화입니다. 보조적인 인물인 장생의 비중이 커지고 공길의 설정이 바뀌는 동안 주제와 이야기가 흐릿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기본 설정의 힘은 여전히 강합니다. 절충적이라고 했지만 공길의 인형놀이처럼 충분히 영화적이고 매력적인 장면들도 많고요. 변형된 캐릭터들 역시 원작과 독립적인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새로 쓰여진 영화의 결말 부분도 관객들의 누선을 자극하는 힘이 있습니다. 배우들 모두 근사하게 캐스팅되었고요. 제가 꽤 걱정했던 이준기도 예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의 장점이 대부분 원작의 설정에 기초하고 있거나 그의 기초적인 변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와 스타일을 통제하는 감독의 힘은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그 때문에 영화는 종종 텔레비전으로 보는 팬앤스캔 버전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 말고도 프레임 밖에 뭔가 더 있을 것 같단 말이에요. (05/12/13)

DJUNA

기타등등

원작 [이]는 지금 공연 중입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