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린 스톱케비치 Lynne Stopkewich

주연
몰리 파커....산드라 라슨
Molly Parker....Sandra Larson
피터 아우터브리지....매트
Peter Outerbridge....Matt
제이 브라조....월리스 씨
Jay Brazeau....Mr. Wallis
나타샤 몰리....어린 산드라
Natasha Morley....Young Sandra
제시 윈터 머디....캐롤
Jessie Winter Mudie....Carol
제임스 티몬즈....얀
James Timmons....Jan

1.

네크로필리아는 그렇게 유쾌한 판타지가 아닙니다. 대부분 페티시 이전에 살인이 개입되기 때문이죠. 저한테 이 페티시는 스너프 영화 만큼이나 불쾌합니다.

네크로필리아는 또 지극히 남성적인 도락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긴 사방에 널려 있는 네크로파일들의 페이지를 구경하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키스드]는 네크로필리아를 다루면서도 이 두 길을 모두 피해갑니다. [키스드]는 폭력이 배재된 영화일 뿐만 아니라 철저히 여성 중심인 에로티카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산드라에게 네크로필리아는 단순한 시간 이상입니다. 산드라가 시체와의 성관계에 집착하는 이유는 인터넷의 남성 네크로파일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산드라가 매달리는 것은 시체 자체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느끼는 추상적인 쾌락입니다.

산드라는 이 쾌락에 도달하기 위해 살인도 할 필요 없습니다. 장의사에서 일하니까요. 산드라와 시체들과의 관계는 정복이나 강간과는 먼 공상적인 대화이므로 폭력과는 맞지 않기도 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참 풍요로운 성생활을 누리는 셈이죠. 젊은 남자 시체들은 언제나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

2.

[키스드]에 대한 평가는 대충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이 영화가 자극적인 소재를 이용해 한탕 하려는 풋내기 감독의 얄팍한 쇼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혐오스러운 소재를 다루었지만 시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거죠.

저는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두 의견 모두 일리 있습니다. 사이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첨가하면 대충 제 의견이 됩니다.

노골적인 (그리고 어느 정도 작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재 선택에 의심의 시선을 보내는 건 당연합니다. 정말 이 영화의 감독 린 스톱케비치는 자극적인 홍보로 영화가 뜨길 바랬을 겁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이기도 합니다. 혐오스러울지도 모르는 소재를 다루었지만 화면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은 타당한 시적 정신에 의해 정당화됩니다. 센세이셔널한 소재를 다루었으면서도 결코 작위적인 센세이셔널리즘에 끌려가지 않는 연출력도 인정해주어야 하고요.

배우들도 좋습니다. 특히 성인 산드라를 연기한 몰리 파커는 훌륭해요. 일단 파커의 창백한 웨이프 이미지부터가 로맨틱한 네크로파일이라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맞습니다. 산드라는 괴상한 캐릭터지만 파커가 매끈하게 연기를 해낸 덕에 거의 공감이 갈 지경입니다. 종종 삽입되는 블랙 유머도 근사하게 표현되었고요. 파커는 이 영화로 제니 여우 주연상을 탔습니다.

3.

문제는 각본입니다. 이 영화의 각본은 캐나다 작가 바바라 구디의 단편을 각색한 것인데, 아무래도 장편용으로는 문제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소재의 독특함에 비해 스토리 전개가 너무 뻔하다는 거지요. 영화는 산드라가 장의사에 취직할 때까지 무리 없이 흘러갑니다. 하지만 산드라가 의대생 남자 친구 매트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진부해져요. 매트의 정신 나간 얼굴을 슬쩍 보면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다 알 수 있고, 영화는 정말 한치의 어긋남 없이 그 예상을 따라 갑니다.

단편 소설에서는 별 문제 없습니다. 이 정도 길이라면 뻔한 스토리라고 하더라도 소설의 다른 요소들에 의해 커버가 되죠. 그러나 장편 영화에서 스토리와 캐릭터는 단편 소설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이야기에 끌려가기엔 상영 시간이 너무 길지요.

산드라와 산드라의 페티시에 대한 매트의 집착 대신 네크로필리아의 보다 다양한 측면을 파고들었다면 더 나았을 걸 그랬어요. 몇몇 쓸만한 대립 요소들이 날아갔겠지만 그 정도 가치는 있었을 겁니다. (99/07/21)

DJUNA

기타등등

1. 복사골 문화 센터의 상영 당시 사운드가 나가는 사고가 두 차례나 있었습니다. 처음 것은 얼마나 처리가 늦던지, 산드라의 틴에이저 시절 3분의 1이 무성영화로 나갔답니다.

2. 매트 역의 피터 아우터브리지는 어쩜 그렇게 피터 오툴을 닮았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