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찰스 허먼-웜필드 Charles Herman-Wurmfeld

주연
제니퍼 웨스트펠트....제시카 스타인
Jennifer Westfeldt....Jessica Stein
헤더 저겐슨....헬렌 쿠퍼
Heather Juergensen....Helen Cooper
토바 펠드슈....주디 스타인
Tovah Feldshuh....Judy Stein
스코트 코헨....조시 마이어스
Scott Cohen....Josh Myers
재키 호프먼....조운
Jackie Hoffman....Joan
데이빗 애런 베이커....댄 스타인
David Aaron Baker....Dan Stein

헬렌과 제시카

여기 배우들의 오래된 숙제가 하나 있습니다. 자긴 정말 괜찮은 배우인데, 눈먼 할리우드 사람들이 역을 주지 않는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는 배우들이 있을 겁니다. "직접 내가 할 역을 만들지, 뭐."

글솜씨 없는 배우들에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충고지만 가끔 이런 식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먼저 글재주가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에요. 맷 데이먼, 벤 애플렉, 빌리 밥 손튼, 체즈 팔민테리 같은 사람들이 자기가 직접 각본을 써서 성공한 배우들이죠.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제니퍼 웨스트펠트와 헤더 저겐슨도 이런 부류에 속합니다. 이 사람들은 작가 워크숍에서 만나 의기투합한 뒤로 [Lipschtick]이라는 제목으로 묶인 일련의 소품들을 써왔는데,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는 원래 그 소품들 중 하나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들은 각본을 영화사에 팔았지만, 프로젝트가 중간에서 붕 떠버리자, 자기네들이 다시 각본을 사서 직접 출연하고 제작까지 맡아 이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결과는? 고생한 보람이 있었죠. 올해 나온 가장 성공적인 인디 영화 중 하나니까요.

그들이 영화로 각색한 이야기는 두 스트레이트 여성이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뭐, 가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왜 동성간에서는 딱하는 소리가 울릴 정도로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이성간에는 왜 그런 만남이 그렇게 힘든 걸까. 아마 이들은 그 아이디어를 조금 더 발전시켜 어떻게 되나 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제시카 스타인은 남자 복이 지겹게도 없는 뉴요커입니다. 그녀는 어느 날, 헬렌 쿠퍼라는 여자가 낸 데이트 광고를 보고 맘에 들어 전화를 걸죠. 둘 다 여자들과 사귀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 처음엔 잔뜩 긴장하지만 곧 서로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는 '우디 앨런 영화'입니다. 지적이지만 예민하고 살짝 괴팍한 뉴요커들이 끊임없이 수다를 떨어대며 위태로운 연애를 하는 이야기를 맨하탄의 예쁜 풍경과, 앨런이 좋아할 것 같지만 슬쩍 편곡의 느낌이 다른 옛 노래들을 깔고 전개하는 코미디 말입니다. 불평할 필요 없습니다. 할리우드의 가장 인기있는 로맨스 영화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도 전형적인 '우디 앨런 영화'였으니까요. 몇 십 년이 흐르는 동안 앨런의 개성은 하나의 장르로 굳어진 것입니다.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도 좋은 '우디 앨런 영화'입니다. 거의 의도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몇몇 유사점을 지워내면 그들만의 개성과 스타일도 발견되고요. 영화는 앨런보다 자상하고 냉소가 덜하며 온화합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위트가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다른 식으로 먹히는 거죠. 무얼 예로 들면 좋을까요... 흠. 헬렌이 친구들 앞에서 제시카를 '유태인 산드라 디'라고 놀려대다가 제시카의 전화를 받자 갑자기 따뜻하게 태도가 변하는 부분은 어때요. 앨런이 이런 장면을 다루었다면 이성과 대립되는 모순된 감정에 빠진 캐릭터를 사정없이 놀려댔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을 이용해 헬렌의 냉정한 분석이 비이성적인 로맨틱한 감정에 의해 조용히 묻혀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는 모범적인 게이 로맨스 영화로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애당초부터 제시카는 어쩔 수 없는 스트레이트이고 바로 그게 이 영화의 기본 갈등 구조인 걸요. 영화에서 중요한 건 성적 취향이 아니라 주인공의 캐릭터입니다.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는 제시카 스타인이라는 예민한 완벽주의자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신과 세상에 대해 조금 여유로워진 예술가로 변신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헬렌과의 로맨스는 일종의 촉매인 것이죠.

괜찮은 이야기지만... 글쎄요. 조금 더 나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는 더 다듬을 수도 있었어요. 마지막 십 여 분 동안 이들은 지금까지 조심스럽게 공들여 쌓아올렸던 이야기를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모두에게 잘해주려는 자상함 때문에 힘이 떨어지고 초점이 흐려지는 것도 문제고요.

그러나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는 여전히 장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기본적으로 [프렌즈] 풍의 가벼운 유머를 고수하면서도 종종 폐부를 찌르는 드라마를 섞는 각본은 여전히 좋습니다. 배우들의 덕도 커요. 일단 웨스트펠트와 저겐슨은 자기네들이 쓴 각본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제시카의 엄마로 나오는 토바 펠드슈만큼 유태인 아줌마를 아름답게 연기해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전 여전히 결말이 불만이고, 그걸 미리 알고 갔기 때문에 영화 재미 일부를 놓쳤지만... 뭐, 모든 걸 다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02/07/18)

DJUNA

기타등등

이 작품도 911 사태 이후 WTC 장면을 허겁지겁 잘라낸 영화들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