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장 르느와르 Jean Renoir

주연
장-루이 바로....코르들리에 박사/오팔
Jean-Louis Barrault....Dr. Cordelier/Opale
테디 빌리스...졸리 변호사
Teddy Bilis....M. Joly
미셸 비톨드....세브랭 박사
Michel Vitold....Dr Séverin
장 토파르....데지레
Jean Topart....Désiré

[파멸의 늪]은 장 르느와르의 텔레비전 영화입니다. 59년도 작품이니 르느와르와 같은 거장이 네트워크 텔레비전 용 영화를 만드는 건 꽤 희귀한 일이었을 겁니다. 하긴 지금도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지요.

르느와르 자신도 이런 희귀한 도전에 대해 꽤 깊이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영화의 도입부는 이런 이벤트의 중요함을 의식적으로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르느와르 자신이 직접 방송국에서 사건 소개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니까요.

그렇다면 내용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죠. 이 영화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20세기 현대(그러니까 50년대말) 프랑스로 옮겨 각색한 것입니다. 지킬 박사는 코르들리에 박사로 바뀌었고 하이드는 오팔이 되었지요. 각색은 아주 충실합니다. 기존 할리우드 버전들보다 더 충실해요. 스티븐슨이 원작에서 사용했던 미스테리 구조를 그대로 써오고 있고 디테일도 조금밖에 바뀌지 않았습니다. 1세기나 시대배경을 업데이트시킨 작품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너무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까지 들죠.

바뀐 부분도 경제적인 이유로 잘라낸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저 그렇습니다. 원작에서는 '방탕함'으로 모호하게 표현되었던 지킬 박사의 과거 행적은 영화 속에서 꽤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는데, 과연 그게 당시 프랑스에서 그렇게 대단한 '악행'이었을지? 그의 죄라는 건 그저 여자한테 약하다는 것이었잖아요. 후반부에서 졸리가 오팔에게 직접 고백을 듣는 부분도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우선 오팔의 성격과도 잘 맞지 않아요. 정작 핵심이어야 할 부분인데도 아주 건성으로 다루어졌고요. 르느와르의 거창한 소개도 필수적인 것은 아닙니다.

르느와르가 이 작품을 심각하게 생각했을까요?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군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라는 원작을 선택한 것도 그저 다루기가 쉬워서였을 것 같아요. 도입부의 거창함을 생각하면 영화는 그저 온화한 편입니다. 시각적 인상도 수수한 편이고요.

그렇다면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는 어디 있을까요? 아마 장-루이 바로의 연기 때문이겠지요. 그의 오팔은 흥미진진한 하이드입니다. 물론 요새 관객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오버 액션으로 보이긴 해요. 그러나 바로가 거의 댄스와 같은 그로테스크한 동작으로 지팡이를 휘둘러대며 걸어가는 모습에는 유쾌한 즐거움이 묻어 있습니다. 종종 하이드 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공포 효과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가 얼마나 연약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인지, 얼마나 가식없이 자신의 자유를 즐기는 캐릭터인지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평론가들이 아무리 이 작품을 진지하게 생각해도, 제가 보기엔 이 작품은 두 거장의 즐거운 외도 이상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모두 자기가 가지고 놀고 싶었던 장난감을 가지고 마음껏 놀아보았던 것이겠지요. (00/07/30)

DJUNA

기타등등

꼭 [파멸의 늪]이라는 제목을 달았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원제 번역하기가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을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