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반 필라 Ivan Fíla

주연
렌카 블라사코바....레아
Lenka Vlasáková....Lea
크리스티안 레들....스트레흘로우
Christian Redl....Strehlow
한나 시굴라....반다
Hanna Schygulla....Wanda
우도 키에르....블록
Udo Kier.... Block
미로슬라프 도눌틸....그레고어 팔티
Miroslav Donutil....Gregor Palty
테레자 베트로프스카....어린 레아
Tereza Vetrovská....Young Lea
클라라 지르사코바....레아의 어머니
Klara Jirsakova....Mother of Lea
이반 고갈....레아의 아버지
Ivan Gogál....Father of Lea
주자나 크로네로바....베아타 팔티오바
Zuzana Kronerová....Beata Paltyova

1.

1977년 슬로바키아.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달아나던 레아의 어머니는 뒤쫓아온 남편한테 맞아 죽습니다. 죽어가면서 어머니는 딸에게 편지를 쓰라고 유언을 남기죠. 그 충격으로 레아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죽은 어머니에게 쓰는 편지는 레아의 삶의 목적이 됩니다.

1991년, 레아의 양아버지는 레아를 외인부대 출신의 가구수리공 스트레흘로우에게 아내로 팔아넘깁니다. 레아를 짐짝 취급하며 폭행을 일삼던 스트레흘로우는 우연히 레아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발견하고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2.

이 영화의 감독 이반 필라의 주장에 따르면 [레아]는 '동화'입니다. 글쎄요. 생각해보니 이 영화가 고전적인 [미녀와 야수] 스토리 라인을 따르고 있기는 합니다. 형편없이 거칠고 폭력적인 남자가 아름다운 예술가에 의해 서서히 변해간다는 것이죠.

그러나 스토리만으로 동화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필라가 무엇을 의도했건 [레아]의 스타일은 동화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건조하기 짝이 없는 그의 스타일입니다. 레아와 스트레흘로우는 모두 강렬하게 구현된 인물이지만 필라는 늘 그들로부터 반 발자국 쯤 떨어져 있습니다. 카메라가 너무 냉정해서 감독이 감정 이입 자체를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황량하기 짝이 없는 겨울 들판들로만 채워진 배경까지 생각하면 이 영화는 정말 춥습니다. 가을 개봉 예정작이라지만 이처럼 피서용에 어울리는 영화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관객들에게 그렇게 자상한 영화는 아니란 말이죠. 관객들은 캐릭터를 이해하고 그에 몰입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스타일에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지만 적어도 동화와는 거리가 멀죠.

동화가 되기엔 지나치게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특히 스트레흘로우라는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서 그런 느낌이 잡힙니다. 그는 시작부터 도대체 정이 안가는 인물입니다. 딸 또래의 여자를 잡아와 강제 결혼한 뒤 툭하면 패고 수갑에 채워 가두는 남자니까요.

물론 우리는 그의 과거를 들춰보며 그가 심각한 정서적 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그의 폭력성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요. 모든 사람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있고 스트레흘로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해와 동정은 다른 문제지요. 초반에 그가 워낙 정나미 떨어지게 굴어서 그를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습니다. 결국 감독이 도와주어야 해요. 미화한다면 문제지만, 적어도 그의 마음 깊은 곳까지 적극적으로 들어가서 공감의 기회를 넓혀주어야 하죠. 하지만 이반 필라는 그의 주변에서 빙빙 돌기만 합니다.

레아는 어떨까요? 우리는 레아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재료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너무 많이 가지고 있죠. 레아는 말은 못하지만 화가이며 시인이고 음악가이기까지 합니다. 재료는 넘쳐 흐릅니다.

그러나 레아의 캐릭터는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습니다. 그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미스테리는 매력적인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 속에서 레아는 그냥 미스테리로만 남아서는 안됩니다.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속을 열어 보여야 하는 거죠. 스트레흘로우의 극적 의무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스트레흘로우는 결코 이런 의무에 어울리는 남자는 아닙니다. 그렇게 잘해내지도 않고요. 영화 속에서 레아를 진짜로 이해하고 영혼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슬로바키아 어 번역가인 반다입니다. 이 사람을 상대역으로 했다면 오히려 나았을 걸 그랬어요. [미녀와 야수] 구조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겠지만요.

3.

레아 역의 렌카 블라사코바의 섬세한 연기는 이 이상한 캐릭터에 잘 맞고 아름답습니다. 스트레흘로우 역의 크리스토퍼 레들은 자기 캐릭터를 감독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억지로 동정을 구하는 연기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연출보다는 훨씬 캐릭터에 가깝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반다 역의 한나 시굴라가 보여주는 여유있는 연기 역시 인상 깊어요. 감독이 캐릭터를 조금만 열어두었어도 이 배우들은 훨씬 눈에 띄었을 겁니다.

건조한 각본과 스타일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 것은 소재 자체의 시적 특성입니다. 대부분은 레아에 의해 구현되지요.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건조한 각본과 스타일이 소재의 시적 특성을 충분히 구현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필라의 스타일을 생각해보면 음악은 없는 게 나았을 겁니다. 페트르 합프카의 쿵쿵거리는 음악은 짜증만 납니다.

[레아]는 건조함과 멜로드라마가 기묘하게 뒤섞여 있는 영화입니다. 저한테는 이 덜컹거림이 단점처럼 보이지만 다른 관객들에게는 어떤 매력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겁니다. (99/07/23)

DJUNA

기타등등

1. 레아의 누드 장면이 조금 나옵니다. 영화제 상영작인데도 뿌옇게 처리했더군요.

2. 한나 시굴라는 참 나이들고 살쪘더군요. 카트린느 드뇌브와 동갑이 아니었던가요? 흠... 하긴 비정상적인 건 드뇌브 쪽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