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버트 루케틱 Robert Luketic

주연
리스 위더스푼....엘 우즈
Reese Witherspoon....Elle Woods
루크 윌슨....에멧 리치몬드
Luke Wilson....Emmett Richmond
매튜 데이비스....워너 헌팅턴 삼세
Matthew Davis....Warner Huntington, III
셀마 블레어....비비안 셀마 켄징턴
Selma Blair....Vivian Thelma Kensington
빅터 가버....캘러핸 교수
Victor Garber....Professor Callahan
제니퍼 쿨리지....폴렛 보나폰테
Jennifer Coolidge....Paulette Bonafonté
알리 라터....브룩 테일러-윈덤
Ali Larter....Brooke Taylor-Windhame
제시카 코필....마고 스위니
Jessica Cauffiel....Margot Sweeney
홀랜드 테일러....마가렛 스트롬웰 교수
Holland Taylor....Professor Margaret Stromwell
알라나 어박....세레나 맥과이어
Alanna Ubach....Serena McGuire
오즈 퍼킨즈....데이빗 키드니
Oz Perkins....David Kidney
린다 카델리니....처트니 윈덤
Linda Cardellini....Chutney Windham
브루스 토머스....UPS 배달원
Bruce Thomas....UPS Mail Guy
메레디스 스콧 린....이니드 웩슬러
Meredith Scott Lynn....Enid Wexler
라켈 웰치....윈덤-반더마크
Raquel Welch....Mrs. Windham-Vandermark

엘

처음에 영어권의 '금발 농담'들을 들었을 때, 전 굉장히 모욕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정치적으로 공정한' 표현은 아닐 거예요. 그러나 한참 듣다보니 순전히 머리색이 노랗다는 이유만으로 주인공 여자들을 바보 취급하는 그 논리가 뭔지 궁금해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성차별적인 것이었지만 진짜 재미있는 것은 그 밑에 흐르는 일종의 질시였습니다. 이 농담들의 논리에 따르면 농담에 나오는 금발들은 단순히 모자라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색을 이용해 자기 가치 이상의 것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금발은 참 기묘하고 희귀한 형질입니다. 금발은 코카서스 인종만의 특징이고 그들에게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닙니다. 스칸디나비아에 가면 금발들만 부글거릴 것 같지만 그 동네에서도 금발은 4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흥미롭게도 그 색깔은 우리가 아주 가치 있게 생각하는 어떤 금속과 상당히 닮았습니다. 이 금속의 상징은 꽤 극단적이어서 금발은 아주 고결한 것이 될 수도 있고 닳아빠진 물질주의의 상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건 쉽게 질시의 대상이 되지요.

이 영화에서 금발은 후자입니다. 보다 폭을 좁히면 주로 남부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특정 그룹 여성들에 대한 상징이지요. 두뇌 활동의 대부분이 패션과 가십에 집중하고 있고 도대체 영어 같이 들리지도 않는 은어를 당연하다는 듯 쓰는 사람들 말입니다. 스테레오타입화 시키고 있다고요? 이런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 가도 있습니다. 개별 문화에 따라 모양만 조금 다를 뿐이지.

영화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전형적인 남부 캘리포니아의 골빈 금발 미녀인 우리의 주인공 엘은 남자 친구가 진지한 상대를 원한다면서 그녀를 차버리자, 남자 친구를 다시 얻기 위해 그가 들어간 하버드 법대에 입학합니다. 한동안 따돌림을 받던 엘은 서서히 자기 재능을 발견해가고 결국 그녀의 동키호테와 같은 모험은 처음 들어왔을 때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결실을 맺습니다.

이게 말이 되냐고요? :-) 그런 건 묻지 마시길. 하지만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아만다 브라운은 정말로 그런 경험이 있는 모양이더군요. 하버드가 아닌 스탠포드 출신이지만요. 하긴 말리부 바비들이라고 해서 하버드 법대생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겠어요? 한 사람의 지적 수준이 늘 사회적 환경과 연결되어 있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깊이 있는 생각을 엄격히 제한하는 얄팍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한 사람이 다른 환경 속에서 지금까지 묻혀있던 자신의 가능성을 새로 인식하는 과정에 대한 작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미묘한 계급 묘사도 있습니다. 이건 간과되기가 쉬운데, 여기서 엘은 돈많은 상류 계급의 대변자가 아닙니다. 엘은 헌팅턴이나 켄징턴과 같은 고풍스러운 이름을 가진 동부 상류 사회 사람들과 다른 세계의 사람입니다. 엘이 새로 대면한 세계에서 계급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돈의 양이 아닙니다. 집안의 사회적 영향력이나 지적 능력, 존엄성이 우선이죠. 영화가 시작될 무렵엔 엘은 그 중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엘은 중반에 등장하는 매니큐어리스트 폴렛과 같은 계급의 사람입니다. [금발이 너무해]는 호레이쇼 엘저의 소설들과 특별히 다를 것도 없는 영화입니다. 단지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얻는 재산은 돈이 아니라 지적인 성장과 다른 사람들의 인정입니다.

와, 엄청 진지한 영화 같네요.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금발이 너무해]는 바람처럼 가벼운 영화입니다. 단점도 많습니다. 스토리는 너무나 철저한 법정 코미디의 공식을 따르고 있어서 언급하기가 쑥스러울 지경입니다. 많은 의식적인 풍자도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후반부의 진지한 이슈와 가벼운 농담들이 잘 얽혀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요. 영화는 말리부 바비의 지적 발전을 다루고 있지만 정작 내용 자체는 말리부 바비가 서핑하지 않을 때 읽을 핑크색 소설책의 줄거리 같습니다.

그러나 리스 위더스푼의 존재가 이 모든 단점들을 가려줍니다. [금발이 너무해]는 한 명의 가치있는 스타가 얼마나 영화에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한 농담들도 리스 위더스푼의 간결하지만 굉장히 효과적인 코믹 연기와 결합하면 거의 광채가 날 지경입니다. 이건 위더스푼이 좋은 배우여서이기도 하지만... 역시 그 사람의 개인적 매력이 진짜 성공의 비결입니다. 스타의 탄생 과정은 결코 평등하지도 않고 '정치적으로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02/01/24)

DJUNA

기타등등

몇몇 평자들은 '정치적 공정성'을 문제삼는 모양인데, 지금 영화를 보면 핀트가 좀 빗나간 것 같군요. 남부 캘리포니아 출신 골빈 금발 캐릭터인 엘이 극단적인 캐리커처라는 걸 생각해보면 배경인 하버드 법대가 특별히 덜 희화화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 과연 문제가 될만큼 부정적으로 다루어진 그룹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모르겠군요.

호모포비아를 지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글쎄요. 앞에 나오는 레즈비언 캐릭터가 그렇게 희화화된 존재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후반에 나오는 게이 캐릭터도 편견보다는 엘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선정된 사람 같고요. 그런 부류의 남자들은 남부 캘리포니아의 금발 미녀들과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부류입니다. 캐리커처지만 존재하지 않는 타입은 절대로 아니라는 거죠. 세상 무섭죠? 하긴 엘 같은 사람들이 정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겁에 질리신 분들도 많을테니...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