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조세 다양 Josée Dayan

주연
제라르 드파르디외....장 발장
Gérard Depardieu....Jean Valjean
존 말코비치....자베르
John Malkovich....Javert
비르지니 르도양....코제트
Virginie Ledoyen....Cosette
크리스티앙 클라비에....테나르디에
Christian Clavier....Thénardier
엔리코 로 베르소....마리우스
Enrico Lo Verso....Marius
샤를로트 갱스부르....팡틴느
Charlotte Gainsbourg....Fantine
아시아 아르젠토....에포닌느
Asia Argento .... Éponine
베로니카 페레스....마담 테나르디에
Veronica Ferres....Madame Thénardier
잔느 모로....수녀원장
Jeanne Moreau....Mère Innocente
제롬 아르델리....가브로쉬
Jérôme Hardelay....Gavroche

장 발장과 코제트

이번 주까지 EBS에서 방영한 미니 시리즈 버전 [레 미제라블]은 이미 [몬테 크리스토 백작]으로 고전 하나를 용감하게 망쳐놓은 조세 다양과 디디에 드코앵 콤비의 것입니다. 시작부터 불길한 뉴스라고 하지 않을 수 없죠.

그래도 몇 가지 이유에서 전 기대를 좀 했습니다. 우선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몬테 크리스토 백작] 때와는 달리 엄청난 미스 캐스팅이 아닙니다. 하긴 웬만한 덩치의 프랑스 남자 배우들은 다 한 번씩 이 역을 하고 죽었으니 여러분도 이 배우가 언젠가는 장 발장 역을 할 거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을 거예요. 존 말코비치, 비르지니 르도양, 아시아 아르젠토와 같은 다른 배우들도 캐릭터에 썩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원작의 강렬한 사회 비판이 신입생용 의식화 역사 교과서를 지향하는 듯한 다양과 드코앵 콤비의 스타일에 어울릴 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다양과 드코앵이 바보가 아닌 이상 원작을 그렇게까지 심하게 고치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무리 각색과 연출이 시시해도 원래부터 보장된 원작의 질이 나머지를 커버해줄 거라고요.

4주 동안 참고 본 결과는? 다양과 드코앵이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졸렬한 예술가 콤비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못 만드는 것도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측의 일부는 맞았습니다. 스토리 개작은 [몬테 크리스토 백작]만큼 심하지 않습니다. 배우들은 대충 이미지가 맞고 바뀐 캐릭터들도 적고요.

그러나 저번만큼 심하지 않았다고 해서 적은 건 아닙니다. 결정적으로 변형된 부분들은 원작을 형편없이 망쳐놓고 있어요.

다양과 드코앵 콤비의 목적은 [몬테 크리스토 백작] 때와 같습니다. 어떻게든 캐릭터들을 '현실적'으로 만들고, 일어나는 사건들에 역사적 주석을 첨가하는 것이죠.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죠? 개념만 따진다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레 미제라블]에 맞지 않고, 다양과 드코앵도 깊이 있는 주석을 달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왜 [레 미제라블]에 이런 접근법이 맞지 않을까요? [레 미제라블]은 [몬테 크리스토 백작]보다 훨씬 사실적인 소설이며 역사적 의미도 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만큼이나 강렬한 판타지와 서스펜스로 가득 찬 로맨틱한 대중 소설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장 발장은 보통 사람을 훨씬 넘어서는 거대한 인물입니다. 테나르디에나 자베르와 같은 사람들도 명암이 강렬한 캐릭터고요. 장 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파리의 하수도를 헤매는 장면이나 관 속에 숨어 수녀원에 접어드는 장면과 같은 부분은 당시 유행했던 고딕 소설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합니다. 이런 작품을 그냥 '그럴싸하게만' 다룬다면 작품은 그냥 밋밋해져 버립니다.

그럼 다양과 드코앵이 무슨 짓을 했는지 한 번 보죠. 그들은 우선 장 발장을 원작보다 작은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냥 제라르 드파르디외식으로 억세고 다혈질인 중년 남자일 뿐, 원작의 장 발장이 가진 그 깊은 느낌은 없습니다. 당연히 스토리와도 맞지 않습니다. 원작의 서스펜스와 드라마는 장 발장이 속으로 깊이 앓는 과묵한 남자라는 사실 때문에 발생하니까요.

다른 캐릭터들 원래의 스케일을 잃어버렸습니다. 덕택에 드라마도 약해졌지요. 바리케이트 장면을 한 번 보세요. 넉넉한 러닝 타임을 생각해보면 마땅히 클라이맥스여야 할 이 장면은 정말 처절하게 시시합니다.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로맨스는 어때요? 과연 그들이 사랑에 빠진 것 같기는 합니까? 원작에서 열병처럼 묘사되었던 그들의 격렬한 사랑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겁니까? 원작에서는 그처럼 박진감 넘치게 묘사된 장 발장과 코제트의 탈출 장면은 왜 그렇게 간단히 끝나는 거죠? 이 사람들은 정말 인간에도, 드라마에도 관심이 없나 봅니다.

이것만으로도 위태로운데, 다양과 드코앵은 그나마 시체처럼 죽어버린 캐릭터들을 또 탈색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등장 인물 모두를 계급에 따라 재배치하고 스테레오타입화시킵니다.

그 정도로 탈색이 충분히 되지 않으면? 그 때는 변명을 시킵니다. 에포닌느가 파트롱 미네트 패거리들에게 '당신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잖아요.'라고 되묻는 장면을 보세요. 실존 인물이었던 그 악당들이 지옥에서 이 장면을 보았다면 배꼽이 떨어져라 웃어댔을 겁니다.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면? 설교가 나옵니다. 장 발장이 수녀원에 온 경찰국장에게 도형수에 대해 연설을 늘어놓는 장면을 보세요. 과연 그게 숨어 있는 도망자가 할 짓입니까? 원작에는 열정적인 이상주의자였던 ABC 클럽 녀석들은 왜 텔레비전 세계로 들어오니까 머리에 바람만 든 신입생들처럼 구는 거죠? 파리의 거친 부랑아인 가브로쉬는 왜 갑자기 당시 하층 계급의 대변자처럼 구는 겁니까?

이것으로 그들은 만족했을까요? 아뇨, 그들은 더 나갑니다. 그들은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원작의 이야기들을 훨씬 재미없는 다른 이야기로 바꿉니다. 가브로쉬를 테나르디에 집안에서 분리시키고,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연애담을 줄이고, 종드레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자베르를 노출시키는 따위 말입니다. 그 중에는 불쾌한 의도가 숨어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수녀원장의 역할이 커진 건 순전히 잔느 모로라는 스타에게 충분한 공간을 주기 위한 술수처럼 보입니다.

의도야 어찌되었건 대부분 극적 파탄으로 이어집니다. 자베르와 마리우스의 관계는 한마디로 바보스럽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아요. 생각해보세요. 과연 정상적인 지능지수를 가진 경관이 그가 폭도로 정의한 사람들 한가운데로 들어가 자기가 경관이라고 밝히면서 포기하라고 말을 하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어떤 건 옥에 티가 되기도 하죠. 등장할 때는 코제트보다 몇 살 위였던 가브로쉬는 코제트가 어른이 된 뒤에도 나이를 먹지 않았잖아요?

장점은? 배우들은 옥석이 섞여 있지만 옥이 더 많습니다. 캐릭터 해석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여전히 좋은 배우입니다. 존 말코비치는 종종 어색한 프랑스어 발음을 과장된 스타일로 커버하려는 수법이 눈에 보이지만 그래도 믿음직한 자베르입니다. 코제트, 팡틴느, 에포닌느를 연기한 비르지니 르도양, 샤를로트 갱스부르, 아시아 아르젠토는 한마디로 완벽한 캐스팅이고요. 테나르디에 부부역의 크리스티앙 클라비에와 베로니카 페레스는 기대했던 것과는 좀 다르지만 그래도 자기 역을 합니다. 불편했던 사람은 마리우스 역의 엔리코 로 베르소 쯤 될까요? 그것도 워낙 눈에 거슬렸던 그의 느끼한 외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여간 대부분 작품이 더 좋았다면 훨씬 빛이 났을 사람들입니다. 아깝다는 말밖에는 안나와요.

[레 미제라블]은 아무리 걸작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고 해도 시시한 예술가들이 키를 잡으면 대책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귀중한 예로 길이 남을 겁니다. 그 이외의 목적으로 이 작품을 감상할 사람이 있다면 말리고 싶군요. 도대체 알맹이가 없는 작품이니까요. 플뤼메 거리에는 서정시가 없고 생 드니 거리엔 서사시가 없습니다. 있는 건 역사책 종이를 찢어 물에 불려 만든 종이 인형들뿐입니다. (01/09/24)

DJUNA

기타등등

이 작품은 불어 버전과 영어 버전이 동시에 제작되었습니다. 모든 배우들의 실제 목소리를 들으려면 영어 버전 쪽을 택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