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크 로스먼 Mark Rosman

주연
타이라 뱅크스....이브
Tyra Banks....Eve
린지 로핸....케이시
Lindsay Lohan....Casey
제어 번즈....벤
Jere Burns....Ben
앤 마리 로더....드루
Anne Marie Loder....Drew
가윈 샌포드....리치
Garwin Sanford....Richie
톰 버틀러....필
Tom Butler....Phil
질리언 파기....엘렌
Jillian Fargey....Ellen
디 제이 잭슨....코치
Dee Jay Jackson....Coach

[라이프-사이즈]의 주인공은 얼마 전에 엄마를 잃은 케이시라는 빨강머리 소녀입니다. 일 때문에 바쁜 변호사 아빠는 케이시를 잘 돌봐주지 못하고, 케이시는 세상에 담을 쌓아가죠.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있는 책에 대해 알게 된 케이시는 몰래 서점에서 책을 훔쳐 엄마를 살리는 주문을 겁니다. 이게 제대로 먹혔다면 이 영화는 제목은 [좀비 맘]이 되었겠죠. 하지만 실수로 케이시는 엄마 대신 아빠의 직장 동료가 선물로 사온 패션 인형 이브를 사람으로 살려내고 맙니다.

[라이프-사이즈]는 어린이 버전으로 살짝 비튼 피그말리온 이야기입니다. 다른 피그말리온 이야기와 다른 게 있다면, 케이시가 이브를 원하지도 않았다는 것이겠죠. 케이시는 엄마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빼앗은 이브를 원망하고, 이브는 지금까지 완벽하기만 했던 세계에서 떨어져나와 당황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들이 화해하고 서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마지막엔 포옹과 눈물로 범벅이 된 감상적인 결말로 끝을 맺습니다.

이브는 과연 누구일까요? 물론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인형 바비의 영화 버전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타이라 뱅크스의 캐스팅 때문에 흑인이 되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바비랑 다를 게 없습니다. 단지 인형이 좀 못생겼다는 것을 빼고요. 하긴 바비 인형을 직접 이용할 수 없었을테니 즉석해서 다른 인형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이해합니다 (사실 마텔 사의 흑인 바비들은 이 영화의 이브보다 몇 천 배는 더 예쁘답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은 일반적인 선입견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바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인형이 원래 성인 남성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성인 장난감을 모델로 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거예요. 그런데 이게 어느 사이엔가 슬쩍 여성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장난감으로 탈바꿈한 것이지요.

사실 이게 자연스럽습니다. 여성 이미지의 주소비자들은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들이고, 마찬가지로 남성 이미지의 주소비자들 역시 여자들이 아니라 남자들이거든요. 보그지 커버에 실린 패션 모델들이나 바디 빌더 잡지의 근육질 남자들이 유혹하는 대상은 기본적으로 동성 독자들입니다.

단지 이들은 이런 이미지를 이미지로만 이용할 뿐, 현실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바로 여기서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죠. 바비 인형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은 여자 아이들이지만, 정작 연구실 기계를 이용해서 바비 인형을 완벽한 미녀로 살려내는 애들은 [위어드 사이언스]에 나오는 남자 아이들입니다. 그게 이미지 소비 방식의 차이인 것이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라이프-사이즈]의 아이디어는 흥미롭습니다. 호르몬으로 들뜬 남자 아이들 눈 앞에 바비 인형이 살아난다면 그건 소원 성취입니다. 그 때문에 아무리 고약한 일들이 생겨도 걔들은 충분히 견뎌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소비자인 여자 아이들 앞에 바비 인형이 나타난다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집니다. 진짜 갈등이 생긴단 말입니다.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바비는 이것말고도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합니다. 그만큼이나 바비는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되고, 소비되고, 분석되고, 욕구되었지요. 제대로 다루려고 한다면 굉장히 멋진 소재인 셈입니다.

하지만 [라이프-사이즈]는 그런 심오한 이야기를 할 여유가 없습니다. 이 작품은 말 그대로 [디즈니랜드]용 텔레비전 영화니까요. 영화는 바비의 성격 중 하나인 '롤 모델'을 내세웁니다. 아주 성공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바비에겐 분명 그런 성격이 있지만, 그보다 훨씬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할 부분도 많고, '롤 모델'에 치중하다보니 바비의 성격을 지나치게 탈색시킨 경향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이 '롤 모델'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흔적도 보입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교훈도 미덥지 못하고요.

하지만 제가 너무 이 주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결국 인형 이야기이니 그 수준에 맞게 가볍게 다루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캐스팅은 잘 되어 있습니다. [페어런트 트랩]의 린지 로핸은 여전히 귀엽고 연기도 안정되어 있습니다. 타이라 뱅크스는 연기를 떠나, 징그러울 정도로 바비 같고요. 쓸데없이 아빠 이야기를 끼워넣는 대신 둘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잘 묘사했다면 훨씬 흥겨운 코미디가 되었을 것 같아요. (00/10/20)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는 이브가 흑인이라는 게 아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아무래도 조금 걸리는군요. 여기서 인종 문제를 끼워넣는다면 필요 이상으로 이야기가 복잡해질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도 좀 어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