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La Vita è Bella (1997) * * * 1/2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 Roberto Benigni

주연
로베르토 베니니....귀도 오레피체
Roberto Benigni....Guido Orefice
니콜레타 브라치....도라
Nicoletta Braschi....Dora
조르지오 칸타리니....조수에
Giorgio Cantarini....Giosué
주스티노 두라노....삼촌
Giustino Durano....Uncle
세르지오 비니 부스트릭....페루치오 오레피체
Sergio Bini Bustric....Ferruccio Orefice
마리사 파레데스....도라의 어머니
Marisa Paredes....Dora's Mother
호르스트 부크홀츠....레싱 박사
Horst Buchholz....Dr. Lessing

1.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소박한 동전 마술과 같습니다. 손가락 사이에서 동전을 하나씩 늘려가는 그 작은 재주 말이에요.

트릭은 간단합니다. 하지만 그걸 해내는 건 정말 어렵지요. 점보 제트기를 없애는 마술 같은 건 트릭을 알고나면 그 감흥이 줄어들지만 이런 간단한 동전 마술은 트릭을 알고난 뒤에도 경탄스럽습니다. 오히려 아는 사람들이 더 즐길 수 있죠.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까.

[인생은 아름다워]를 특징짓는 것은 바로 그 동전 마술과 같은 대범한 기교입니다. 베니니는 너무나도 간결해서 더이상 분해할 수도 없을 것 같은 간결한 요소들을 경악스러울 정도로 대담하게 끼워 맞추는데, 속셈이 뻔히 보이는데도 개별 요소들의 정서적 영향력이 너무나도 크고 끼워 맞추는 재주 역시 기가 막혀서 도대체 뭐라 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그 농담의 한쪽 끝이 홀로코스트에 닿아있는데도 말입니다.

2.

영화는 대충 두 토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주인공 귀도가 학교 교사인 도라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으로 순수하고 열정적인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2부는 유태인 수용소로 끌려간 귀도와 그의 아들 조수에가 겪는 희비극입니다.

1부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제목은 순수하고 행복에 넘치는 외침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아이러니컬한 숨은 의미도 없습니다. 귀도는 사랑에 빠졌고 그에게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도라와의 열정적인 로맨스가 그 행복의 가장 큰 원인이지만 도라가 없었어도 그는 행복했을 겁니다. 그에겐 천성적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마술과 같은 힘이 있습니다. 그에게 행복감은 숨쉬는 것처럼 당연한 것입니다.

1부는 그의 그런 재능이 어떤 것인지 선보이는 쇼케이스와 같습니다. 한 사람에게 전 인생을 던지는 열정, 순진하지만 매력적인 유머, 능구렁이처럼 매끄러운 임기응변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늘 따라다니는 기가 막힌 운. 그는 그에게 주어진 이런 보물들을 저글러처럼 공중에 집어던지며 연달아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2부는 1부의 필사적인 연장입니다. 세상은 점점 끔찍해져 가지만 귀도는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끌어온 삶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찌의 강제 수용소에서도 말입니다!

수용소를 게임터로 개조한 귀도의 거짓말은 단순히 아들을 위로하기 위한 달콤한 속임수 이상의 것입니다. 만약 이 영화가 귀도와 조수에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는 부분에서부터 시작했다면 영화는 이 인위적인 설정 때문에 아주 위태로웠을 겁니다.

그러나 영화는 조작된 감상주의의 함정에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그건 귀도의 거짓말이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 그 끔찍한 세상에 대항하는 거대한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2부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는 장엄하고 필사적인 선언이 됩니다. 그건 1부가 앞에 놓여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3.

물론 진짜 수용소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베니니 자신도 인정하는 사실이지요. 그는 늘 이 영화가 우화라고 말합니다. 귀도가 진짜 강제 수용소에 들어갔더라면 그런 속임수는 머리를 내밀기가 무섭게 잘려 나갔을 겁니다. 이 영화 속의 수용소는 실제 수용소보다 훨씬 부드럽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대다수의 관객들은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심지어 이 영화가 예루살렘 영화제에서 선보였을 때도 이스라엘 관객들은 아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정치적 편견이 개입되었을 때 발생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베니니는 우파의 맹공격을 받았습니다. 칸느에 그가 이 영화를 내놓았을 때, 이번엔 홀로코스트를 농담거리로 삼았다고 좌파에서 떠들어댔고요.

글쎄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며 한참 웃다가 울다가 극장에서 나오면 그런 논쟁들은 무척 재미없고 굳어 보입니다. 삶은 언제나 낡은 이데올로기 위에 있고 베니니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 역시 바로 그런 것일텐데 말입니다.

4.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베니니는 희극의 재료로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채플린이 그의 대표작에서 했던 것과 같은 작업입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베니니를 그렇게 자주 채플린과 비교하는 것이겠지만요.

하지만 베니니의 영화가 진정한 채플린의 수준으로 오른 것은 [인생은 아름다워]가 처음이었습니다. [자니 스테치노]는 매력적인 작품이었지만 결코 채플린 수준은 아니었지요. [미스터 몬스터]는 그보다 더 떨어지고요. 지금까지 그의 영화들은 채플린보다는 수다스러운 라틴 코미디의 전통에 더 가까웠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상승 때문에 베니니를 평가하는 것이 아주 어려워졌습니다. 저희에겐 여전히 이 남자는 [자니 스테치노]의 순진한 스쿨버스 운전사이며 [지상의 밤]의 바람둥이 운전사입니다.

아마 계속 그렇게 보아주는 것이 그에게도 좋을 겁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베니니에게 새로운 짐을 얹어준다면 우린 잃는 게 더 많을 겁니다. (99/03/03)

D&P


기타등등

1. 레싱 박사로 나온 배우는 호르스트 부크홀츠입니다. 레슬리 캐론 주연의 [파니]를 기억하세요? 거기서 파니의 남자 친구로 나왔던 배우입니다. 많이 늙었더군요.

2. 레싱 박사가 낸 마지막 문제의 답이 뭔지 궁금하신 분들이 많으실텐데... 애당초부터 답이 없는 문제랍니다. :-)

3. 귀도의 가족은 얼마나 오래 수용소에 있었을까요? 그렇게 오래 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귀도와 도라가 만나는 1부는 1938년에 시작하니까 2부의 시대 배경은 유럽에서 거의 전쟁이 끝나가던 44년 쯤입니다.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가 독일 점령지보다 비교적 탄압이 덜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죠.

4. 저희가 본 프린트엔 한글 자막 말고도 영어 자막이 함께 달려있더군요. 어쩌다 이런 판을 들여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어 자막 쪽이 번역이 더 상세해서 (한국어 자막은 영어 자막을 또 간략하게 만든 것일테니 말이에요) 대사 이해가 더 쉽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