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토브 후퍼 Tobe Hooper

주연
스티븐 라일스백....톰 칼슨 대령
Steve Railsback....Colonel Tom Carlsen
피터 퍼스....콜린 케인 대령
Peter Firth....Colonel Colin Caine
프랭크 핀리....한스 팔라다 교수
Frank Finlay....Prof. Hans Fallada
마틸다 메이....외계인 여인
Mathilda May....Space Girl
패트릭 스튜어트....암스트롱 박사
Patrick Stewart....Doctor Armstrong
마이클 고다드....부코프스키 박사
Michael Gothard....Dr. Bukovsky
니콜라스 볼....더러브리지
Nicholas Ball....Derebridge
오브리 모리스....퍼시 헤이즐타인 경
Aubrey Morris....Sir Percy Hazeltine
낸시 폴....엘렌 도널드슨
Nancy Paul....Ellen Donaldson
존 핼럼....로슨
John Hallam....Lawson

(스포일러가 약간 있습니다.)

듀나 와, 이 영화도 벌써 15년 전 작품이 되었군요. 그러고보면 15년 동안 세상이 참 많이 바뀌긴 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본 건 당시엔 아주 흔했던 비짜 비디오를 통해서였으니까요. 아마 요새 캠코더 버전과 비슷한 종류가 아니었나 싶어요. 극장에서 찍은 것이 분명한 화질에다 옆에는 일본어 세로 자막이 붙어 있었으니까요. 당시만 해도 비디오 가게에서 유통되는 테이프들은 대부분 이런 종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비디오 가게는 유흥업소처럼 '학생이 가서는 안될 곳'이었죠.

파프리카 하지만 이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된 작품이죠? 제 기억에는 국내 출시 제목이 [벰파이어]였습니다. [뱀파이어]도 아니고 [벰파이어]였어요. 그리고 나중에 정식 출시판도 나왔었지요. 출시판을 오래 전에 본 적 있는데, 글쎄요. 얼마나 많이 잘린 버전인지는 모르겠네요.

듀나 극장판은 많이 잘리지 않았을까요? 미국에서도 15분 정도 분량이 잘린 채 개봉된 것으로 압니다.

파프리카 영화 이야기로 넘어가죠.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유명한 콜린 윌슨의 SF 소설 [스페이스 뱀파이어]를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윌슨은 이것 이외에도 몇 편의 SF 소설을 썼는데, 그 중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은 하나도 없습니다. 소설가 재능은 없는 사람인가봐요. 그래도 소설은 작가의 명성 덕택에 꽤 팔렸던 모양입니다.

이 작품을 토브 후퍼가 영화화한 작품이 [라이프포스]입니다. 당시만 해도 핼리 혜성이 다가오기 직전이었던 터라, 영화는 원작의 미래 배경을 86년의 근미래로 설정하는 변형을 가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핼리 혜성 탐사선인 윈스턴 처칠 호가 핼리 혜성의 꼬리에 감추어진 150 마일 길이의 외계 우주선을 발견합니다. 그 안에는 박쥐 모양의 외계인 시체와 지구인과 똑같이 생긴 여자 하나와 남자 둘이 든 유리관이 담겨 있었습니다. 처칠호는 이들을 데리고 지구로 귀환하지만 도중에 연락이 두절됩니다. 구조선은 화재로 불탄 승무원 시체와 멀쩡하게 남아있는 외계인들을 지구로 데려옵니다. 당연히 외계인 여자는 살아나 남자들의 생명력을 쪽쪽 빨아먹은 뒤 연구소를 탈출하고 처칠 호의 유일한 생존자인 칼슨 대령과 SAS 요원 케인 대령은 그녀를 쫓습니다. 그러는 동안 외계인에게 생명력을 빼앗겨 좀비가 된 시민들 덕택에 런던은 난리가 나고 어쩌고 저쩌고...

듀나 한마디로 요약하면 망측하죠. :-) 영화는 대충 세 종류의 장르를 뒤섞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주를 무대로 한 SF로 시작했다가 중간에는 흡혈귀 호러 영화로 빠지고 끝에 가서는 재난 영화가 됩니다.

장르 섞는 것 자체만 가지고 망측하다고 할 수는 없죠. [에일리언]처럼 호러 장르와 SF를 근사하게 섞은 작품은 많으니까요. [나는 전설이다]나 [공포의 제국]과 같은 소설들처럼 흡혈귀를 과학적 존재로 다룬 작품들도 많습니다. 모두 웃음 나오지 않게 세련되게 처리되었지요.

하지만 [라이프포스]에서는 그 모든 게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장르를 엮는 방식도 작위적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박쥐처럼 생긴 흡혈귀 묘사입니다. 흡혈귀 역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박쥐가 흡혈귀 전설에 도입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박쥐 모양으로 전설상의 흡혈귀를 설명하는 것은 아주 서툰 짓이지요. [라이프포스]의 끼워맞추기는 지나치게 표면적인 지식에 집착하고 있어서 그렇게 설득력이 없습니다. 아주 얇게 보이지요.

파프리카 설득력이 없는 것은 SF적인 부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이 영화의 시대배경은 1986년입니다. 하지만 우주선에 쓰이는 과학 장비는 거의 21세기 수준이에요. 그 뒤로 15년이나 지났지만 우린 아직 핼리 혜성으로 유인 우주선을 쏘아올릴 수준은 못됩니다. 그것도 중간에 갑자기 우주선 궤도를 변경해 미지의 물체를 조사할 정도는 더더욱 아닐 거고요. 더더욱 놀라운 것은 86년인데도 이 우주선은 미지의 과학 기술로 인공중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겁니다.

듀나 인공중력은 좀 심했지요. 사실 우주선 장면 중 인공중력 장면은 몇 안됩니다. 충분히 무중력 상태로 나머지도 커버할 수 있었어요.

핼리 혜성 묘사도 사실과 다릅니다. 86년의 핼리 혜성은 별 게 아니었지요. 매 방문마다 줄어드는 혜성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가장 커졌을 때 태양 저편에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의 핼리 혜성은 거대한 노란색 횃불처럼 하늘을 덮고 있지요. 역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실수였습니다. 천문학자한테 물어보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이런 것들은 대충 용서해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혜성이 보일락 말락할 거라고 해서 영화에서도 그런다면 심심하겠지요. 86년에 혜성으로 가는 우주선을 쏘아올려야 스토리와 현실성이 동시에 만족된다면 그렇게 하면 되죠. [스트레인지 데이즈]에서 1999년에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테크놀로지가 나왔다고 우리가 투덜거리지 않았던 것과 같지 않겠어요?

파프리카 사실성이 어쨌건, [라이프포스]는 꽤 재미있고 흥겨운 작품입니다. 온갖 황당함과 노골적인 망측함이 결합된 결과 어처구니없는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꾸미려는 모든 시도가 너무 엉성해서 속에 숨겨진 기둥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듀나 이 영화에도 기둥이 있었어요? 그게 뭔데요?

파프리카 벌거벗은 마틸다 메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가끔 남자 주인공과 섹스를 하는 것이죠. [라이프포스]는 틴에이저 소년의 몽정을 50년대 펄프 매거진의 스페이스 오페라로 커버한 듯한 작품입니다. 틴에이저 소년의 침대 밑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에요.

듀나 [라이프포스]가 다루고 있는 흡혈귀는 비교적 19세기적입니다. 당시엔 이런 종류의 여자 흡혈귀들이 유행이었지요. 성적 관계를 통해 남자 상대의 기를 빨아먹는 부류말이에요. 전적으로 남성 판타지이고 또 그만큼 이성애적인 판타지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 역시 예외는 아닌데, 종종 그 때문에 우스워지기도 하죠. 예를 들어 이 영화의 남자들은 여자 흡혈귀에서 나오는 신비스러운 힘에 이끌려 억지로 끌려갔다고들 주장하는데 말이에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미인이 코 앞에서 잠들어 있는데, 싫다는 남자들을 억지로 그 여자한테로 끌고오는 정체불명의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흠...

파프리카 하지만 흡혈귀는 기본적으로 양성애적인 존재이고, 이 영화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흡혈귀가 생명력을 빨아먹는데 남녀를 가릴 이유가 없고, 또 외계 흡혈귀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몸을 바꾸기 때문이죠. 덕택에 꽤 황당한 장면이 있습니다. 칼슨 대령이 흡혈귀의 영혼이 들어간 암스트롱 박사와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그렇지요. 칼슨 대령을 연기한 배우 스티븐 라일스백은 [엑스 파일]에서 두웨인 배리를 연기한 사람이고 암스트롱 박사 역의 배우는 바로 패트릭 스튜어트이니, 이 장면은 두웨인 배리가 피카드 선장에게 키스하는 어처구니 없는 구경거리가 되죠.

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힘은 이성애적인 판타지에서 나옵니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마틸다 메이의 누드에서 나오지요. 케인 대령이 희생자의 시체를 발견하고 "이제 그 여자에겐 옷이 생겼군."이라고 말했을 때 수많은 관객들이 실망하지 않았을까요?

듀나 마틸다 메이는... 무척 예쁘죠. 그건 부인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저같으면 외계 흡혈귀로 메이를 고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메이는 귀엽고 자그맣고 현실적이고 똘망똘망하고 건강해보이는 지중해 미인이죠. 외계 흡혈귀는 보다 초현실적이고 병적이고 위협적인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전 메이한테 위협적인 느낌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보다 바바라 스틸 풍인 사람이 어울리지 않았겠어요? 침대에 누워 사람들을 조종하는 캐릭터니까요.

파프리카 그런 똘망똘망함이 역의 괴기함을 더 그럴싸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특히 그 배우의 시선처리가 그래요. 남자들 앞에서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늘 어린 아이처럼 까만 눈을 똑바로 뜨고 있죠.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비해 너무 또렷한 이미지이기 때문에 더 초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듀나 클로즈업 장면에는 소용돌이 무늬가 그려진 갈색 콘택트 렌즈를 끼고 있죠.

파프리카 어쨌거나요. 그리고 메이의 살짝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다른 영국인이나 미국인 배우들과 차별성이 느껴진다는 것 역시 고려해야겠죠.

메이에 비하면 다른 남자 배우들은 그렇게 이미지가 분명한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기능적인 인물들일 뿐, 꼭 개성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은 아니죠. 사실 진짜 액션도 별로 없잖아요. 남자들은 흡혈귀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일 뿐입니다.

듀나 특수 효과는 좋은 편입니다. 디지탈 특수 효과가 개발되지 않은 80년대 중반의 그 푸근한 광학 효과를 잔뜩 느낄 수 있죠. 중간에 나오는 좀비 인형들도 괜찮습니다. 변신 장면도 몰핑없이 말끔하게 해치웠고요. 하지만 후반 헬리콥터 장면에 사용되는 인형들은 너무 딱딱하고 가짜 같다는 느낌이 나더군요.

파프리카 저한테 진짜 재미있었던 트릭은 마틸다 메이의 누드를 커버하는 그 수법들이었답니다. 가슴을 노출하는 건 되지만 아랫도리는 어떻게든 커버해야 하는데, 그 때문에 재미있는 숨바꼭질이 이어지죠. :-) 그래도 아랫도리가 보이는 장면이 한 부분 쯤 있어요. 반대로 엉뚱하게 가슴을 커버하기 위해 끈을 사용한 부분도 있고요.

듀나 놀릴 구석이 또 없나? 이 영화를 좀 더 놀리지 않는다면 아주 허전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파프리카 아마 그게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요? 놀려대고 싶을만큼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영화라는 것 말이에요. 어떻게 봐도 제2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아니니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죠. (00/08/28)

D&P

기타등등

150마일이나 되는 우주선이라면 망원경으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물체가 아닐까요? 혜성 자체는 작은 천체고 태양에 접근하기 전까지는 꼬리도 만들지 않으니 상당히 잘 보였을 겁니다. 꼬리가 있다고 해서 또 발견 못할 것은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