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리오 바바 Mario Bava

주연
엘케 좀머...리사
Elke Sommer....Lisa
텔리 사발라스....레안드로
Telly Savalas....Leandro
알레시오 오라노....막스
Alessio Orano....Max
알리다 발리....백작부인
Alida Valli.... Countess
실바 코스치나....소피아 레하르
Sylva Koscina....Sophia Lehar
에두아르도 파자르도....프란시스 레하르
Eduardo Fajardo....Francis Lehar
가브리엘 틴티....운전사 조지
Gabriele Tinti....George the chauffeur
에스파르타코 산토니....카를로
Espartaco Santoni....Carlo
캐시 레오네....리사의 친구
Kathy Leone....Lisa's Friend
로버트 알다....마이클 신부 ([엑소시즘의 집])
Robert Alda....Father Michael ("House of Exorcism")
카르멘 실바....안나 ([엑소시즘의 집])
Carmen Silva....Anna ("House of Exorcism")

1.

1971년 제작자 알프레도 레오네는 그가 제작한 마리오 바바 영화 [바론 블러드]의 흥행 성공으로 한참 의기양양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오 바바가 그에게 찾아와 지금까지 자기는 단 한 번도 전권 이임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을 꺼냈답니다. 맘이 풀어진 레오네는 바바에게, 만약 전권 이임을 받고 멋대로 맘에 드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겠냐고 물었습니다. 바바는 [리사와 악마]라는 이야기를 레오네에게 들려주었고, 레오네는 바바에게 전권 이임장을 넘겨 주었습니다. 바바는 생애 처음으로 제작자의 간섭없이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만들었을 때는 좋았겠죠. 하지만 [리사와 악마]는 마리오 바바의 경력 중 가장 끔찍한 장을 차지하는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바와 레오네는 영화에 만족했습니다. 73년 칸느에서 시사회를 했을 때 반응도 좋았고요.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이 영화를 사려 하지 않았던 거예요!

자기 돈을 다 털어넣어 영화를 만들었던 레오네는 난처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마 바바도 미안했을 거예요. 제작자가 믿어준 결과가 이 꼴이었으니까요.

어떻게든 투자한 돈을 회수해야 했던 레오네는 이 영화를 재편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기회주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당시는 [엑소시스트]가 한창 히트치던 때였습니다. [리사와 악마]에도 악마가 하나 나오긴 하니까 [엑소시스트]의 아류 영화로 다시 찍으면 어떨까?

아직 로마에서는 [엑소시스트]가 상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바는 영국에서 그 영화를 보고 다시 돌아와, 엘케 좀머가 린다 블레어 흉내를 내고 로버트 알다가 신부로 나오는 부분을 새로 찍었습니다. 레오네와의 입장 차이 때문에 결코 편한 작업은 아니어서, 새 필름의 상당 부분은 레오네가 감독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결국 이 영화는 바바의 이름을 지우고 미키 리온이라는 가명을 단 채 [엑소시즘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습니다. 당시 나왔던 [엑소시스트] 아류 영화 중에는 꽤 성공한 모양이에요.

다행히도 [리사와 악마]는 마리오 바바 사후, 서서히 다시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리사와 악마]는 [엑소시즘의 집]의 끔찍한 허물을 벗고 바바의 마지막 걸작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2.

관광객인 리사는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죽은 사람을 끌고가는 악마의 그림을 보고 이상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 때 흘러나온 뮤직 박스의 노래를 따라간 리사는 마네킹 공방쯤 되는 가게 안에서 그림 속의 악마와 똑같이 생긴 대머리 남자 레안드로를 만나죠. 겁에 질린 리사는 가게를 뛰쳐나가고 그만 길을 잃고 맙니다. 리사는 우연히 프란시스와 소피아 레하르라는 부부의 차를 얻어타지만 그 차 역시 고장나는군요. 하필이면 도움을 청하러 간 저택에서 그들을 맞이한 사람은 레안드로였고요. 저택에 들어간 그들은 근친상간과 간통과 시체애호증과 살인과 강간으로 범벅이 된 끔찍한 밤을 지내게 됩니다.

전형적인 호러 영화의 도입부지요? 거의 [로키 호러 픽쳐쇼]를 연상시킬 정도로 뻔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리사와 악마]는 결코 보기만큼 전형적인 영화도 아니고 진부하지도 않습니다.

우린 기초적인 스토리 라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저택의 주인인 막스와 그의 어머니 백작부인은 리사가 그들의 죽은 아내/며느리인 엘레나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죽은 아내의 시체를 집에 보관하고 있는 막스는 리사를 통해 다시 사랑을 시작하려 하지요. 프란시스 레하르는 운전사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젊은 아내 소피아를 증오하고 있습니다. 악마임이 분명한 집사 레안드로는 저택에 머문 사람들의 감정과 욕망을 인형처럼 조종해 그들을 하나씩 죽여갑니다.

하지만 바바의 이야기는 설명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엔 설명이 너무 부족하죠. 우선 레안드로가 가지고 노는 마네킹은 무엇일까요? 저택 안의 사람들은 종종 마네킹으로 전환됩니다. 엘레나의 애인이었던 카를로는 맨 처음에 마네킹으로 등장했다가 다시 사람으로 나타나고 나중에 살해된 다음에는 다시 부서진 마네킹으로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모두 사람이 아닌 마네킹들일까요? 리사는 어떨까요? 우린 리사가 괴상한 이국에 떨어진 관광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아주 쉽게 믿어버립니다. 하지만 과연 리사는 누구일까요? 과연 리사가 리사로서 존재하기는 했던 걸까요? 아니면 그녀는 단순히 엘레나의 또다른 모습일까요?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은 과연 언제 일어났을까요? 과연 실제로 일어나기는 했을까요? 일어났다면 누구에게 일어난 것일까요?

물론 꼭 이런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있어야만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바로 이런 정체불명의 요소들이 영화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 걸요. [리사와 악마]는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라기보다는 악몽과 같습니다. 이 영화의 혼란스러운 줄거리는 의식적인 미로입니다. 결말로 인도하는 대신 길을 잃게 해서 불안해하고 음침한 분위기로 관객들의 기를 죽게 하려는 것이지요. 언젠가 스콜세지가 바바의 영화에 대해 '별다른 스토리도 없이 안개가 자욱이 낀 가운데 여인들이 복도를 걸어가는 등 분위기만으로 사람을 무섭게 하는 영화'라고 말한 적 있는데, 바바 영화 중 그런 말에 가장 충실한 영화가 [리사와 악마]가 아닐까 해요.

총체적인 분석이 불가능할지는 몰라도 부분부분 조각들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우선 [리사와 악마]가 네크로필리아에 대한 영화라는 건 거의 분명합니다. 막스는 네크로파일입니다. 아마 그가 엘레나와 제대로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죠. 막스가 기절한 리사를 겁탈하는, 또는 겁탈하려고 하는 장면은 영화적으로 완곡화시킨 시간(屍姦)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미 죽었음이 분명한 사람들이 마네킹 사이를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니는 영화의 전체 장면에서 그런 분위기를 읽는 건 역시 어렵지 않죠. 막스와 백작부인의 비틀린 관계에서 근친상간적인 면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하고([사이코]의 영향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리사를 통해 아이덴티티 게임을 벌이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사람들을 인형처럼 놀리다 끝에 가서는 모두 지옥으로 끌고 가는 악마 레안드로의 모습에서 영화에 숨어 있는 중세적 관점을 발견하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레안드로는 거의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악마니까요. 꽤 호감가는 친구입니다. :-)

영화 내에서 익숙한 바바적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도 바바 팬들에겐 재미있는 게임이겠죠. 네크로필리아는 바바의 다른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소재입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영화 [사탄의 가면]부터가 그렇잖아요. 크루바얀 박사가 아사에게 키스하는 장면이나 막스가 리사를 겁탈하려는 장면이나 기본적으로는 같은 장면입니다. 물론 유명한 줌이나 흐린 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이방인의 모습과 같은 그 사람 특유의 이미지도 충분히 발견됩니다. 기본적으로는 19세기적이고 문학적인 바바의 이미지가 70년대 대중영화의 천박함 속에서 뒤얽히는 것을 보는 것 역시 재미있습니다.

[리사와 악마]의 상업적 실패는 예상된 것이었습니다. 바바처럼 개성 강한 거장이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멋대로 만들었으니 결과가 어떨지는 뻔하지 않아요? 안토니오니와 같은 '예술 영화 거장'이라면 '예술이니까 봐라!'하며 우기면서 아트 하우스를 누빌 수 있었었지만 바바에게는 그럴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예술적으로 완벽하게 성공했느냐하는 점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술가들에게 완벽한 전권을 주는 것이 늘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종종 모양을 잡아줄 외압이 필요한 법이죠. [리사의 악마]는 분명히 흥미로운 영화지만 자기 생각에 도취된 늙은 거장이 멋대로 영화를 만들어낸 느낌이 강하게 묻어나는 중심없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긴 바바 팬들에게는 바로 그런 면이 더 재미있고 매력적으로 느껴지겠지요. [리사와 악마]가 [사탄의 가면]처럼 유명해질 리는 없겠지만, 언젠가 만들어져야 했던 영화이기는 했습니다.

3.

[엑소시즘의 집]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야겠군요. 우선 줄거리부터 소개하죠. 리사가 마네킹 공방에 들어갔다가 달아나는 부분까지는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골목으로 빠져나가고 그 뒤부터 갑자기 린다 블레어처럼 발작을 일으킵니다. 우연히 옆을 지나가던 마이클 신부라는 사람이 그녀를 병원까지 따라가고 그 뒤부터 그는 리사에게서 악령을 쫓아내려고 노력합니다. 마이클 신부가 리사의 몸에 깃든 악령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리사와 악마]의 이야기가 군데군데 삽입됩니다. [리사와 악마] 장면들은 대부분 난도질 되었지만 막스와 리사의 섹스신처럼 노출이 더 심해진 부분도 있답니다.

[리사와 악마]를 보다 알기 쉽게 설명한 것이 [엑소시즘의 집]이라지만, 결과는 더 혼란스럽습니다. 마이클 신부의 이야기가 [리사와 악마]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척 봐도 알 수 있거든요. 영화 속에서는 엘레나의 악령이 리사에 깃든 것으로 나와 있지만, [엑소시즘의 집]에 나오는 [엑소시스트]식 악마 이야기와 [리사와 악마]에 나오는 메피스토식 중세 악마 이야기가 제대로 맞을 리가 없잖아요.

결과는 참담하고... 무척 처절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라도 영화를 팔아야 했다니 다들 참 불쌍하군요. 이 영화에도 별을 주어야 한다면 하나 반이 맞을 듯 해요. (01/01/08)

DJUNA

기타등등

롤리팝을 빨고 있는 텔리 사발라스의 모습에서 [코작]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롤리팝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사실 이 영화가 먼저입니다. 이 영화에서 롤리팝이 맘에 들었던 사발라스가 [코작]에서도 그 이미지를 계속 사용했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