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용주

주연
남상미....희진
류승룡....태환
김보연....엄마
심은경....소진
문희경....경자
장영남....수경
이창직....귀갑
오지은....정미

(추리물이니까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희진

[불신지옥]은 올해 나온 한국영화들 중 가장 센세이셔널한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그 제목 때문에 걱정도 많이 하고 기대도 많이 했지요. 그러다 오늘 이 영화를 봤는데, 영화의 내용은 그 센세이셔널함과 거리가 멉니다. 그렇다고 제목이 나쁘다고도 말 못 하겠어요. 적어도 이전 제목 [비명]보다 훨씬 정확하니까요.

영화가 시작되면서 희진이라는 캐릭터가 소개됩니다. 이 사람은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두 탕 뛰면서 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으로, 앞으로 일어날 장르적 사건보다 그 사람의 일상이 더 걱정되는 그런 부류입니다. 과연 시험은 잘 봤나. 약은 챙겨먹었나. 집에 갈 때 아르바이트 직장에 말은 제대로 하고 갔나. 일상이 너무 무거워 거기에 다른 무언가를 얹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죠.

이 사람은 광신적인 기독교 신자인 엄마의 전화를 받고 동생 소진이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생은 교통사고에서 간신히 살아난 뒤 정신적으로 조금 이상한 상태였고 엄마가 종교에 빠진 것도 그 이후였죠. 하여간 희진은 동생을 찾기 위해 집으로 내려가 경찰에 신고를 하는데, 엄마는 이상할 정도로 수사에 무관심하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의 행동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다 그 사람들이 수상쩍은 상황에서 한 명씩 죽어나가요.

영화는 이 이야기를 공포물보다는 추리물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오컬트 소재가 나오기는 하지만 공포영화의 도구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요. 고의로 깜짝 놀래키는 장면도 없고 잔인한 신체손상 장면도 없습니다. 좋게 말하면 장르적 강박관념이 없는 것이죠. 대신 영화의 추리물 얼개는 분명한 편입니다. 이야기 대부분이 수사 과정을 통해 진행되고 대화나 장면들 역시 질문과 대답 그 대답에 추가되는 플래시백으로 구성됩니다. 이 구성은 나쁘지 않지만 강한 형식성 때문에 조금 갑갑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영화의 주제는 종교적 믿음에 대한 것입니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이래요. 동생 소진에게는 초자연현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어떤 신비스러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이를 모두 각자의 종교적 관점에서 받아들이죠. 여기에는 두 축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인 소진의 엄마와 아파트에 사는 동네 무당인 경자. 그리고 이와 관련된 아파트 이웃들은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지요.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영화가 가장 도발적일 수 있는 부분은 기독교라는 주류 종교를 무속신앙과 동격으로 놓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입니다. 이 부분은 조금 더 나가도 되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에요. 후반에 가면 제도권 교회는 알리바이를 대고 쏙 빠져나가니까요. 감독 역시 인터뷰나 기자간담회에서 이단이나 사이비와 같은 단어들을 쓰면서 자기 방어를 하고 있는데, 솔직히 많이 심심했습니다.

하긴 감독이 제 소소한 취향과 의견에 자기 영화를 맞출 필요는 없는 것이겠죠. 그 알리바이가 이치에 안 맞는 것도 아니고 내용의 일관성이 망가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영화는 지적이고 명쾌한 태도로 진지한 주제를 정공법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트집잡힐 이유가 없어요.

연기는 전체적으로 좋은 편입니다. 감독의 연기지도보다는 실력있는 배우들의 기본 실력에 많이 의존하고 있지요. 감독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통제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배우들에게 연기할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같아요. 양질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종종 밋밋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건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이 다소 평면적이고 각본에 충분한 디테일이 살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 다 추리물 구성과 연관이 있다고 봐요.

이는 영화 전체의 성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불신지옥]은 성실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주제 좋고 이야기 좋고 연기 좋고 그림 좋아요. 중간중간에 나오는 서스펜스 장면들도 잘 짜여져 있고요. 하지만 추리물의 장르가 지나치게 견고해서 답답하고 감독이 필요 이상의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게 보이죠. 심지어 자신이 제공하는 시청각 정보에 대해서도 충분한 확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군데군데 나오는 불필요한 설명 대사들이 그 증거죠. 조금만 더 자신감을 갖고 막 나갔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09/08/04)

DJUNA

기타등등

고 정승혜 대표가 참여한 마지막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