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하우메 발라게로 Jaume Balagueró

주연
엠마 빌라라사우....클라우디아
Emma Vilarasau....Claudia
카라 엘레얄데....마세라
Karra Elejalde....Massera
트리스탄 울로아....퀴로가
Tristán Ulloa....Quiroga
제시카 델 포조....앙헬라
Jessica Del Pozo....Angela
토니 세빌라....프랑코
Toni Sevilla....Franco

클라우디아의 딸 앙헬라는 5년 전 납치 살해당했습니다. 적어도 그게 클라우디아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사실이었죠. 어느 날 딸 아이가 전화를 걸어오기 전까지는요. "엄마, 나야... 나 좀 데려가 줘..."

참 근사한 도입부가 아닌가요? 특별히 초자연적이지는 않아도 섬뜩하기 이를 데 없고, 무언가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 같은 딸의 입장은 관객들이 감정 이입한 주인공 어머니의 가슴을 찢어놓지요. 이 도입부만 잘 살린다면 영화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호러 영화의 바탕이 다져지는 것이죠.

그런데 도대체 이 사건의 뒤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요? 클라우디아와 앙헬라 사건을 이전에 담당했던 전직 형사 마세라는 클라우디아가 발견한 단서들을 바탕으로 진상에 접근해 갑니다. 그들이 알아낸 건 이 모든 사건의 뒤에는 '네임리스'라는 비밀 조직이 있다는 것입니다. 홀로코스트 당시 나찌의 인체 실험에 뿌리를 둔 이 비밀 조직은 극단적인 고통에서 초월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영화가 끝날 무렵이면 이들은 '네임리스' 패거리와... 네, 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앙헬라를 극도로 불쾌한 상황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램지 캠벨의 소설 [네임리스]입니다. 캠벨이 쓴 유령 나오는 집에 대한 소설을 하나 읽은 기억이 나는데 제목이 기억이 안 나는군요. 하여간 원작 소설을 읽은 적이 없으니 영화가 소설을 어떻게 영화화했는지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원작 소설은 영화보다 나았을 거라고요. 대충 이유가 있습니다. 적어도 대중적인 장편 소설은 영화보다 넓은 캔버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풀어내고 엮어낼 공간이 영화보다 훨씬 많지요.

영화 [네임리스]의 각본은 분명히 더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줄인 듯한 티가 팍팍 나는 작품입니다. 근사한 도입부 이후 우리의 두 주인공들이 하는 일은 이류 퍼즐 미스터리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끝도 없이 전문가들과 증인들을 만나 질문과 대답을 나누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쫓는 진상은 그렇게 풀기 어려운 미스터리도 아니랍니다.

영화의 가장 끔찍한 실수는 수다쟁이 악당을 등장시켜 이미 관객들이 거의 다 알고 있는 사건의 진상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설명하게 한 것입니다. 그나마 영화가 끌어가던 분위기를 완전히 망가뜨린 장면이었죠. 마지막의 결정타를 담당한 앙헬라도 제가 보기엔 말이 너무 많습니다.

장편 소설에서는 이런 건 별 문제가 없습니다. 충분히 이야기가 될 정도로 설명을 늘어놓으면서도 분위기를 깔고 캐릭터를 살릴 여유가 있거든요. 하지만 영화는 다르지요.

그 결과 [네임리스]는 끝도 없이 설명만 있는 호러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큰 문제죠. 공포란 설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많이 알수록 공포는 줄어듭니다. 공포는 강의로 알려서는 안됩니다. 암시하고 속삭이며 뒤로 빠져야죠.

아쉬워요. [네임리스]는 가능성이 충분한 영화였으니까요. 하우메 발라게로는 훌륭하게 '암시하고 속삭일 줄' 아는 감독입니다. 그는 특별히 자극적이지 않은 이미지와 소리만으로도 관객들을 불쾌하게 하고 자극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지루한 대화들을 지워내고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면, [네임리스]에 상당히 훌륭한 장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발라게로의 테크닉은 이보다 훨씬 덜 설명적이고 더 창의적인 각색에 더 잘 맞는다는 것이죠.

남은 부분만 해도 [네임리스]는 기억할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작품으로 만족하는 대신 발라게로의 차기작을 기다리겠습니다. (01/01/09)

DJUNA

기타등등

자막 읽기가 참 힘든 영화였습니다. 하얀 배경이 유달리 많이 나오는 영화였는데도 자막색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클라이맥스 장면에 나오는 몇몇 대사는 읽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부천 영화제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