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빌리 와일더 Billy Wilder

주연
오드리 헵번....아리안느 샤바스
Audrey Hepburn....Ariane Chavasse
게리 쿠퍼....프랭크 플래너건
Gary Cooper....Frank Flannagan
모리스 슈발리에....클로드 샤바스
Maurice Chevalier....Claude Chavasse
반 도드....미셸
Van Doude....Michel
존 맥가이버....무슈 X
John McGiver....Monsieur X
리즈 부르댕....마담 X
Lise Bourdin....Madame X

아리안느와 플래너건

빌리 와일더의 [하오의 연정]은 클로드 아네의 소설 [아리안느]를 원작으로 삼고 있는 모양이지만 스토리나 분위기는 그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에른스트 루비치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원작이 있는 스토리가 다른 감독의 영향을 받을 수 있냐고요? 흠, 대충 이렇게 됩니다. 에른스트 루비치는 찰튼 앤드루스의 희곡을 각색한 [푸른 수염의 여덟번째 아내 Bluebeard's Eighth Wife (1938)]라는 코미디를 만든 적 있습니다. 백만장자 바람둥이의 순진한 여덟번째 아내가 남편을 놀려먹는다는 내용이었지요. 이 영화에서 와일더는 공동 각본가로 참여했으므로, 이와 비슷한 스토리의 원작을 골라 영화화한다는 건 루비치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는 주연 배우 게리 쿠퍼도 다시 불러와 쓰고 있는 걸요.

아까도 말했지만 [하오의 연정]의 기본 설정은 [푸른 수염의 여덟번째 아내]와 같습니다. 파리의 사립탐정인 클로드 샤바스의 딸인 아리안느는 아버지의 의뢰인이 미국인 바람둥이 프랭크 플래너건을 쏴죽이려 한다는 걸 알고 그를 위기에서 구해줍니다. 플래너건이 슬슬 그녀에게 수작을 걸기 시작하자, 아리안느는 그에 못지 않은 바람둥이로 행세하며 플래너건을 자극하고요.

[하오의 연정]은 빌리 와일더의 최고 걸작은 아니지만 그의 그 우아하며 살짝 드라이한 유머 감각은 여전히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무대는 50년대 파리지만 전체적인 스토리의 분위기는 타락한 세기말의 비엔나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다들 루비치의 오마주로 만들어진 와일더의 영화한테서 기대할만한 거죠.

보기 근사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파리 현장 로케이션은 맵시있게 잘 쓰여졌고, 전성기의 오드리 헵번을 생각없이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지니까요.

가장 큰 문제는 캐스팅에서 발견됩니다. 오드리 헵번과 모리스 슈발리에는 아무 문제 없어요. 둘다 캐릭터에 자기 개성을 담뿍 담아 유쾌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게리 쿠퍼의 미스 캐스팅은 심각합니다. 일단 그런 바람둥이 역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고 그 사람의 성실해보이는 이미지도 캐릭터와 잘 맞지 않거든요. 케리 그랜트라면 능글맞게 잘 뽑았겠지만 쿠퍼가 하니까 영 뻣뻣해 보입니다.

와일더가 그런 이미지를 오히려 역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와일더처럼 캐스팅 감각이 날카로운 사람이 이 노골적인 차이를 눈치채지 못했을리는 없으니까요. 아무리 스승 영화의 오마주를 시도했다고 해도 말이에요. 아마 플래너건의 느끼함을 어떻게든 커버해서 그를 호감가는 인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일지도 몰라요.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불편했던 것도 플래너건의 캐릭터였으니까요. 솔직히 다들 로맨틱하다는 마지막 장면도 제 눈엔 플래너건이 난생 처음으로 괜찮은 남자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망쳐버린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답니다. (02/01/29)

DJUNA

기타등등

플래너건이 미스터 빅의 아빠였다고 해도 전 믿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