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앨리스 왕 Alice Wang

주연
앨리스 왕....소삼
Alice Wang....Shao-San
에어리얼 린....소영
Ariel Lin....Shao-Yin
던컨 초우....아빈
Duncan Chow....Ai-Bin

소영과 소삼

[양축]의 이야기를 이성애 연애담으로 읽는 건 저에게 무척 힘든 일입니다. 이 이야기를 동성애 로맨스로 보고 감상하는 사람은 저뿐만이 아닐 걸요. 그걸 어느 쪽의 동성애에 맞추느냐는 보는 사람의 취향 문제겠지만요.

이 영화의 감독 앨리스 왕도 [양축]을 레즈비언 로맨스로 받아들였음이 분명합니다. 하긴 이한상의 [양산백과 축영대]를 보며 이 불운한 연인들의 이미지를 쌓아올린 세대에게 이런 건 인식의 전환 따위도 아니겠죠.

[사랑한다면 잡아봐]는 [양축]의 현대판 각색물은 아닙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이 전생에 축영대였다고 믿는 한 소녀의 이야기지요. 현대 대만 북부의 해안 마을을 무대로 한 이 우울하고 사실적인 러브 스토리는 수백 년 묵은 고전적 로맨스에 의해 다시 재단되어 대책없는 로맨티시즘을 부여받습니다.

[사랑한다면 잡아봐]는 기본적으로 바이섹슈얼 삼각관계 이야기입니다. 동네 식당에서 일하는 소삼과 아빈은 오랜 커플입니다. 어느 날, 소삼의 먼 친척인 소영이 돈을 벌기 위해 본토에서 소삼의 집을 찾아옵니다. 소삼이 모르고 있었던 건 소영이 소삼을 어렸을 때부터 짝사랑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둘이 양산백과 축영대의 환생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것이죠.

이 영화에는 두 가지의 사랑이 공존합니다. 소삼과 아빈의 이성애 관계는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조금 따분합니다. 하지만 소영이 소삼에게 품고 있는 동성애적 감정은 로맨틱하고 격정적이며 상당히 위험하기까지 하지요. 영화는 소영에게 [양추]의 메타포를 안겨주며 그 위험한 비현실성을 정당화합니다. 그러는 동안 소삼과 아빈의 관계는 그 비틀린 주관적 관점 속에서 의미를 잃고 사라져버리죠.

[사랑한다면 잡아봐]는 스테레오타입화된 로맨스와 현실의 경계선 주변을 아슬아슬하게 오가고 있습니다. 소영은 스테레오타입화된 '순정만화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스테레오타입화된 '순정만화 독자'이기도 합니다. 소영의 사랑은 진실이지만 관객들은 그 비현실성과 위험을 무시하지는 못하죠. 하지만 그런 이중적인 솔직함 때문에 소영의 이야기가 예상외로 잘 먹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수줍게 유명한 황매극의 아리아를 불러주고, 떠나가는 시람의 등을 바라보며 "양산백!"을 외쳐대는 이 아이를 어떻게 놀려댈 수 있겠어요? 적어도 전 못하겠답니다. 여전히 정신나간 아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요.

[사랑한다면 잡아봐]는 불안한 영화입니다. 아무리 쓸만한 변명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해도 영화의 로맨티시즘은 종종 대책없는 황당함으로 흘러갑니다. 영화의 내용에 운명적이고 비극적인 로맨스가 필수적이라고 해도 폭력적인 결말은 조금 더 다듬을 수 있었을 거고요. 그러나 냉정한 현실 속에 갇힌 찬란한 로맨티시즘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이 영화의 태도는 여전히 흥미롭고 소영역의 에어리얼 린(이 영화로 금마장 후보에 올랐습니다)도 이 위태로운 캐릭터를 섬세하고 설득력있게 연기해냈습니다. 그 정도면 할 일은 한 것 같아요. (04/07/07)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의 감독인 앨리스 왕은 소삼 역을 연기하고 있기도 한데요... 동네 남녀들의 관심의 대상인 이 역할을 하면서 괜히 즐겼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