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루벤 마물리안 Rouben Mamoulian

주연
모리스 슈발리에....모리스
Maurice Chevalier....Maurice
지넷 맥도널드....지넷
Jeanette MacDonald....Jeanette
찰스 러글스....질베르 드 바레즈 자작
Charles Ruggles....Vicomte Gilbert de Vareze
찰스 버터워스....사비냑 백작
Charles Butterworth....Count de Savignac
머나 로이....발렌틴 백작부인
Myrna Loy....Countess Valentine
C. 오브리 스미스....다르텔린 공작
C. Aubrey Smith....Duke d'Artelines
엘리자베스 패터슨....첫번째 고모
Elizabeth Patterson....First Aunt
에셀 그리파이스....두번째 고모
Ethel Griffies....Second Aunt
블랜치 프리데리치....세번째 고모
Blanche Friderici....Third Aunt

공주와 재봉사

에른스트 루비치의 열성팬이라면 모리스 슈발리에와 지넷 맥도널드 콤비의 최고 걸작이 루벤 마물리안의 [러브 미 투나잇]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루비치 팬이라고 해도 [러브 미 투나잇]이 이들 콤비를 다룬 영화들 중 최고 걸작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아요.

얼핏 보기에 [러브 미 투나잇]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처럼 보입니다. 루벤 마물리안은 이 때까지 뮤지컬 연출 경험이 없는 감독이었고 원래 내정되어 있었던 조지 큐커 대신 불려온 대타였습니다. 그가 연출한 영화는 에른스트 루비치가 20년대 말부터 꾸준히 만들어오던 유럽식 오페레타였고요. 캐스팅과 소재, 배경만 본다면 그냥 루비치 영화라고 믿어도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마물리안은 이 모든 미심쩍은 면들을 장점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결과 나온 건 할리우드 영화사상 가장 인기있는 뮤지컬 중 하나였지요.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파리의 양복점 주인인 모리스는 옷값을 지불하지 않는 드 바레즈 자작에게서 돈을 받아내기 위해 그가 머물고 있는 시골의 성으로 갑니다. 돈줄을 쥐고있는 삼촌에게 빚이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는 자작은 사람들에게 모리스를 친구 귀족이라고 거짓 소개합니다. 엉겁결에 성에 머물게 된 모리스는 결혼하자마자 늙은 남편을 잃은 지넷 공주를 사랑하게 되고요.

반쯤은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반쯤은 [신데렐라]를 흉내낸 줄거리죠. 모리스가 머무는 숲은 19세기의 가치관과 도덕률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잠자는 공주의 성입니다. 툭하면 기절하는 증세가 있는 지넷 공주는 잠자는 공주고요. 끝에 가서 공주와 맺어지는 평민 남자인 모리스는 성전환한 신데렐라 쯤 되겠지요. 그런데 20세기 프랑스에 웬 공주(또는 왕자비)냐고요? 그냥 넘어갑시다. 이 영화가 다루는 세계는 실제 프랑스가 아니라 호사스러운 귀족들이 사치를 뽐내는 가상의 유럽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

마물리안이 이 단순한 이야기에 부여한 건 용감무쌍한 시청각적 스펙터클이었습니다. 루비치가 비교적 안전한 이미지 속에 은밀하고 조용한 즐거움을 담아내는 동안 마물리안은 유성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그는 카메라와 드라마를 방음실 밖으로 끌어내고 흔들고 밀어내고 질주시켰습니다. 그 최종 결과물은 거의 30년대 버전 [물랑 루즈]와 같은 어떤 영화였습니다. 유성영화시대 초기의 영화들이 마이크로폰과 방음시설에 갇힌 지루한 연극 녹화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관객들은 이 영화의 자유분방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대표적인 예가 파리의 아침을 묘사한 도입부지요. 마물리언은 먼저 막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의 파리를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에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 일을 시작한 노동자들과 상인들, 주부들이 가세하며 자기만의 소음을 부여하는 것이죠. 이 소음들은 절묘한 화음과 리듬을 구성해가고 마지막엔 요란한 파리의 교향곡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주인공 모리스가 친구 앞에서 부른 노래 "Isn't It Romantic"이 조금씩 사람들에게 전염되어 나중에 전혀 만난 적도 없는 지넷 공주에게 도달하는 유명한 장면은 어떤가요? 마치 날개가 달린 새처럼 거대한 (미니어처) 성 이곳 저곳을 날아다니며 성 안 사람들의 심정과 삶을 잡아내는 카메라는요?

루비치는 이렇게 뻔뻔스럽고 대담한 스펙터클을 보여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장르에 신참이었던 마물리안은 그럴 배짱이 있었지요. [러브 미 투나잇]은 창조적인 모방이었습니다. 한 대담한 예술가가 전혀 다른 개성의 예술가의 작품을 모방하는 동안 양쪽의 개성이 충돌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 것이죠.

슈발리에와 맥도널드 역시 새로운 환경 속에 주저 앉지만은 않았습니다. 마물리안의 기용과는 상관없이 그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쌓아올린 파트너쉽의 절정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엔 그들의 음악적 재능에 불을 당길만한 로저스와 하트의 멋진 노래들이 잔뜩 깔려 있었지요. 마물리안 역시 이들의 화학반응을 기계적으로 다루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영화는 뻔하고 진부한 스토리를 넘어서는 로맨틱한 울림과 위트로 가득 합니다.

마물리안은 그 뒤로 유능한 할리우드 고용 감독으로 뛰었지만 [러브 미 투나잇]의 발랄한 모험을 능가하는 영화를 만든 적은 없습니다. 그 뒤에 나온 대표작들도 대부분 마물리안의 개성보다는 그레타 가르보나 타이론 파워와 같은 스타들의 명성에 의지하고 있죠. [러브 미 투나잇]은 아직 도전정신이 풍부한 젊은 감독이 막 태어난 장르의 가능성을 탐구하던 그 짧고 아슬아슬한 시기의 덕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04/12/13)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의 원래 러닝타임은 104분입니다. 하지만 자체 검열이 엄격하던 헤이즈 규약 시절에 96분으로 편집되었지요. DVD는 그보다 더 짧은 89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