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강지은

주연
강혜정....아리
조승우....조강
변주연....어린 아리
박건태....어린 조강
이재용....서정 스님
강신일....조강 아버지
정진영....닥터 추
정성화....준철
박신혜....변자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나봐요.)

조강과 아리

대한민국은 세상에서 가장 감상적인 UFO 영화를 만드는 나라입니다. 제가 예로 들 수 있는 건 [안녕, UFO]와 [도마뱀]밖엔 없지만 그 정도만으로 충분해요. 순전히 연인들을 맺어주고 사랑을 완성시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UFO를 동원하는 나라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네, [도마뱀]은 감상적인 영화입니다. 감상적이고 초현실적이죠.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 아리는 자신이 외계인 공주이고 누군가 자길 만지면 저주가 떨어질 거라고 늘 떠드는 아이입니다. 아리에게 홀딱 반한 조강은 20년이 넘게 아리 혼자만을 사랑하지만, 아리는 늘 꼬리를 끊고 달아나는 도마뱀처럼 잠시 나타났다가 잽싸게 사라지고 말아요.

아리에겐 말 못할 사정이 있습니다. 영화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그게 무엇인지 밝혀지지요. 사실을 알게 된 조강은 그에 대처하기 위해 몇 가지 일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외계인들을 부르기 위해 풀밭에 미스터리 서클을 만드는 것입니다.

조강의 서클은 그렇게 잘 만들어진 작품은 아닙니다. 일단 재료가 문제겠죠. 밀밭이 아닌 보통 풀밭에 만들었으니 고른 느낌이 없죠. 게다가 조강은 서클을 완성한 뒤 전구로 장식을 해버렸어요. 잘 만들어진 서클은 그 자체로 좋은 예술 작품입니다. 전구 따위로 크리스마스 트리 분위기를 낼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조강은 엉성한 서클을 만들고 그걸 전구 장식으로 완전히 망쳐버리는 쪽을 택합니다.

[도마뱀]의 전체적인 인상도 비슷합니다. 스토리는 흥미로운 미스터리를 품고 있습니다. 코미디와 멜로드라마의 잠재성도 풍부하고요. 하지만 최종 결과는 거칠고 투박하며 불필요한 장식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미스터리의 해답은 지나치게 간결하고 지나치게 무겁게 다루어진 멜로드라마가 잘 깔아놓은 코미디를 망쳐버리며 대사들은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충분히 날아오를 수도 있었던 소재들이 진부함의 무게에 눌려 질질 끌려다니는 거죠.

그래도 강혜정과 조승우는 무척 호감가는 연기를 보여주고 둘의 화학반응도 아주 좋은 편입니다. 종종 이들의 연기는 재료인 각본과 설정을 넘어서요. 그 때문에 종종 영화가 실제 이상으로 좋아보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농담 따먹기를 하는 티저 트레일러 기억나세요? 내용만 보면 그 농담의 질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닙니다. 순전히 배우들이 주고받는 느낌 때문에 장면이 살았던 거죠. 그게 영화 전체로 확장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06/04/18)

DJUNA

기타등등

[도마뱀]이 강혜정 1번의 유작이라는 말은 안 하기로 하겠습니다. 아, 그 동글동글한 턱과 강아지처럼 볼록한 입이 앞으로도 그리울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