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바바라 해머 Barbara Hammer

주연
캐슬린 샬팡
Kathleen Chalfant
마티 포텐저
Marty Pottenger
알라나 샤잔
Alana Chazan
이브 뮈사르
Yves Musard

자화상

2003년, 바바라 해머는 [Resisting Paradise]라는 제목의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 있는데, [연인, 타인]은 그 속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클로드 카운과 마르셀 무어의 자료는 그 영화를 찍는 동안 수집되었는데, 사정상 그 영화에 수록되지 못하고 독립적인 작품으로 묶여 나온 거죠. 2006년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입니다. 아직 IMDb엔 등록되어 있지도 않더군요.

클로드 카운의 본명은 루시 수웝, 마르셀 무어의 본명은 수잔 말레르브. 둘은 이복자매이고 연인이었죠. 이 사람들은 20세기 초반의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예술가로 신나게 살다가 37년에 도버 해협의 저지 섬에 안주했어요. 그러다 나찌가 섬을 정복하자 저항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는데,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가 종전 직전에 석방되었다고 해요.

영화는 지금까지 제가 본 해머의 영화들 중 가장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중심은 카운과 무어의 이야기이고 감독은 될 수 있는 한 여기에 대단한 간섭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순수한 다큐멘터리인 것도 아니고요. 해머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약간의 비디오 장난질도 등장하고 배우들이 등장해서 두 사람의 편지나 원고들을 읽어주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질산염 키스]와 같은 해머의 대표작들과 비교하면 그 일탈은 비교적 얌전한 수위에서 조절되고 있습니다.

해머가 이렇게 절제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카운과 무어가 자기 스타일이 분명한 예술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목소리와 스타일이 존재하는데, 제3자의 스타일을 또 첨가할 필요는 없는 거죠. 이들의 작품들과 인생은 적당히 편집해 나열만 해도 근사한 구경거리가 됩니다. 감독이 비평가로서 이들의 창작품들을 설명하고 분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의무인 건 아니죠. 삶 자체가 가면무도회이고 역할극이고 포르노였던 이 미친 아줌마들의 인생과 작품을 정리해 열거하는 것만으로 55분의 러닝타임은 꽉 찹니다.

이들은 꽤 재미있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클로드 카운은요. 영화 속에서도 조금은 언급되지만, 90년대 이후 이 사람의 작품들이 젠더 아이덴티티에 대한 관심과 함께 꽤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이 이름을 알고 계시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할 생각은 없고, 하여간 이들은 평생을 놀이꾼으로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집에 돈이 많아서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일 없이 자기네들이 살고 싶어하는 곳에서 자기네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다 죽었지요. 사실 이 영화에 언급되는 그들의 '저항운동'도 그들이 늘 하던 놀이로서의 예술을 연장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두 사람의 예술가가 증오하는 대상을 온갖 창의적인 방식으로 공격한 것이죠. 정신이 멀쩡하고 상식이 있는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철없는 괴짜 할망구들쯤으로 봤을 텐데, 아마 그건 맞을 겁니다. :-)

[연인, 타인]의 또 다른 재미는... 이게 러브 스토리라는 거죠. 그것도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함께 보낸 나이 든 사람들의 러브 스토리요. 둘의 젊은 시절을 다루었다면 근친상간과 동성애라는 거창한 터부 때문에 굉장히 요란한 멜로드라마가 나왔을 테니 그것도 재미있었겠죠. 하지만 이 영화가 그리는 평생을 끈 그 잔잔한 감정의 긴 흐름은 그보다 더 매력적입니다. (06/04/12)

DJUNA

기타등등

네이버 필름스엔 등록되어 있지만 IMDb엔 없는 외국영화군요. 이런 것도 참 오래간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