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케네스 브래나 Kenneth Branagh

주연
케네스 브래나....버론
Kenneth Branagh....Berowne
알렉산드로 니볼라....왕
Alessandro Nivola....The King
알리시아 실버스톤....공주
Alicia Silverstone....The Princess
나타샤 맥켈혼.....로잘라인
Natascha McElhone....Rosaline
매튜 릴라드....롱거빌
Matthew Lillard....Longaville
에이드리언 레스터....듀메인
Adrian Lester....Dumaine
티모시 스팔....돈 아르마도
Timothy Spall....Don Armado
네이선 레인....코스타드
Nathan Lane....Costard
스테파니아 로카....자퀴네타
Stefania Rocca....Jacquanetta
리처드 클리포드....보이예
Richard Clifford....Boyet
에밀리 모티머....캐서린
Emily Mortimer....Katherine
카르멘 요고....머라이아
Carmen Ejogo....Maria
토니 오도넬....모스
Tony O'Donnell....Moth
제랄딘 맥규안....홀로퍼니아
Geraldine McEwan....Holofernia
리처드 브라이어즈....나다니엘 경
Richard Briers....Sir Nathaniel

버론과 로잘라인

나바르 왕립 도서관의 한가운데에 케네스 브래나가 친구들에게 등을 돌리고 말없이 서 있습니다. 갑자기 그는 타닥타닥 탭댄스의 스텝을 밟기 시작하더니 돌아서서 전형적인 약강오보격의 셰익스피어 대사를 탭댄스에 맞추어 낭송하기 시작합니다. "Have at you, then, affection's men-at-arms. Consider what you first did swear unto..." 약강, 약강, 약강, 약강, 약강... 여러분도 한 번 발을 구르면서 소리내어 낭송해보세요.

탭댄스는 분명 약강오보격을 가르치는 유용한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타닥타닥 셰익스피어의 리듬에 몸을 의지하다보면 다른 생각도 납니다. 왜 이걸로 정말 탭댄스를 추어서는 안되지?

절대로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케네스 브래나가 '셰익스피어 뮤지컬'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도 여기서가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못할 것도 없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기본적으로 운문이며 독립된 노래들이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가 쓴 코미디 상당수는 3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이라고 우겨도 될만큼 어처구니 없고 흥겹습니다. 둘을 결합한다고 해서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서 그가 고른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초기작인 [사랑의 헛수고]입니다. 내용은 아시나요? 이런 이야기입니다. 나바르 공국의 젊은 왕은 세 친구들과 함께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3년 동안 여자들을 왕궁에서 출입금지시킵니다. 하지만 마침 병중인 아버지를 대신해서 프랑스 공주가 시녀들을 이끌고 나바르 공국에 들어오고 네 남자들은 모두 공주와 시녀들에게 말려들고 말죠.

아주 유명한 작품은 아닙니다. 비평가들의 평가도 그렇게 좋지 않고 잘 공연되지도 않습니다. 물론 영화화된 적은 한 번도 없고요.

원작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꽤 흥겨운 작품이지만 요새 관객들이 즐기기엔 지나치게 말장난(pun) 위주입니다. 스토리도, 캐릭터도, 모럴도 없이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말장난으로만 일관하는 작품이지요. 셰익스피어 시대 관객들에게는 재미있었을지는 몰라도, 현대 관객들에게 그 뉘앙스는 그렇게 잘 먹히지 않고 외국 관객들에게는 더더욱 통하지 않습니다. 외국어로 번역해서 공연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일반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시시하지는 않습니다. 전 해석 관점을 조금 바꾼다면 괜찮은 공연이 나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헛수고]는 줄거리 있는 드라마나 코미디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엄격하게 형식을 지키는 순수 음악에 더 가까운 작품이죠.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여덟 남녀들은 개성있는 캐릭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음부를 담당한 악기처럼 존재합니다. 이 작품을 제대로 살려내려면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치듯 가볍게 리듬과 선율을 따라야합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브래나는 여기서 조금 더 나갔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운문에 곡을 붙여 뮤지컬로 만드는 대신, 그의 노래 대부분을 잘라내고 콜 포터나 조지 거시윈이 작곡한 3,40년대 뮤지컬 넘버들을 대신 채울 생각을 했던 것이죠. 아마 [사랑의 헛수고]가 충분히 난도질될 수 있는 희곡이라는 것도 이 작품을 고른 이유가 될 겁니다. 아까 형식미가 어쨌느니 했지만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에 나오는 말장난들 대부분을 도려낼 수밖에 없거든요. 각색자가 개입할 여지가 꽤 많이 생기는 셈이지요.

그는 어떻게 원작을 바꾸었을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대부분의 말장난들이 도려내졌습니다. 말장난 말고도 상당히 많은 에피소드들이 사라졌어요. 노래가 10곡이나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영화는 93분으로 꽤 짧습니다. 원작의 반 이상이 날아간 셈이지요. 몇몇 삭제는 좀 심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변장한 왕과 친구들이 공주와 시녀들을 찾아가는 장면들을 댄스 신 하나로 커버하는 건 너무 간단한 해결책이었어요.

각색 과정 중 캐릭터 한 명이 성전환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왕의 가정교사로 나오는 홀로퍼니아 여사는 원작에서는 시골 학교 교장인 홀로퍼니스 선생입니다. 그 때문에 홀로퍼니아와 나다니엘 경은 나이든 연인처럼 보이지요. 순진한 시골 총각이었던 코스타드는 전세계를 누비는 국제적인 코미디언이 되었고요.

시대는 1939년으로 옮겨졌습니다. 패션 디자인만 그런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30년대에서 40년대에 이르는 시대적 배경도 어느 정도 빌려오고 있지요. 이들은 모두 30년대 말의 격동적인 유럽의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고, 셰익스피어가 맺은 결말이 끝나면 제2차 세계대전의 험난한 전쟁터로 뛰어듭니다. 30년대라는 배경은 프레드 아스테어와 같은 뮤지컬 거장들의 전성기이기도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쩍 흐려놓은 듯한 셰익스피어의 원래 결말에 꽤 잘 맞기도 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뮤지컬입니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30년대의 복고풍을 충실하게 살린 뮤지컬이죠. 너무 구식이라 당황스럽기까지한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30년대 뮤지컬 전성기에서 빌려온 음악까지, 모두 이 복고풍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단지 2.35:1의 칼라 와이드 스크린만이 이 분위기를 위반하는 듯 한데, 흑백으로 영화를 만들 수는 없었을 거고, 어정쩡한 1.85:1보다야 2.35:1이 뮤지컬에 더 잘 어울리는 화면 비율이니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듯 합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훌륭한 뮤지컬일까요?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 중 뮤지컬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네이선 레인이 예외라면 예외일까요.) 그들의 춤과 노래 실력은 잘하는 아마추어 수준입니다. 알리시아 실버스톤이나 매튜 릴라드같은 친구들은 기초적인 셰익스피어 대사에도 힘겨워 하는 듯 하고요. 케네스 브래나의 뮤지컬 연출도 대부분 유명한 다른 뮤지컬의 모방에 그칠 뿐입니다. 진짜 30년대 분위기를 완벽하게 살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전혀 새로운 뮤지컬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지요. 또 그렇다고 뮤지컬 파트와 셰익스피어가 100 퍼센트 완벽한 조화를 꾸려낸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헛수고]는 묘하게 사람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습니다.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놀려댔지만 그 아마추어들을 여전히 좋은 예술가들이고 매력적인 사람들입니다. 알리시아 실버스톤의 발음을 놀려댔지만, 이 친구가 탭댄스를 하듯 혀로 입천장을 톡톡 치면서 셰익스피어의 혀꼬는 대사를 읊는 걸 듣는 것도 꽤 재미있는 경험입니다. 뮤지컬은 해본 적 없으면서도 에스터 윌리엄즈에서 버스비 버클리까지, 알고 있는 모든 거장들을 모방하는 브래나의 만용도 흥미로운 재난을 만들어내고요.

서툴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몇몇 장면들은 상당히 능숙해요. 특히 셰익스피어의 대사와 30년대 뮤지컬 노래가 절묘하게 결합되는 몇몇 장면들은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버론이 원래 대사에서 "Cheek to Cheek"으로 넘어가는 부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습니다. 뮤지컬에는 아마추어일지는 몰라도 다들 괜찮은 배우들이라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도 해요.

영화를 보면서 마치 조르주 상드와 친구들이 공연한 야외극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덜컹거리는 가벼운 서커스에 불과한 영화이긴 했지만 그래도 무척 재미있는 작품이었어요. 무엇보다 만드는 사람들 모두 영화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았답니다. (01/01/23)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의 DVD는 몇몇 삭제된 신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 중 일부는 원래 영화에 수록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변장한 왕과 일행들이 공주 일행과 만나는 장면이 없으니까 균형이 너무 이상해졌어요. 남자들이 자기 여자가 더 이쁘다고 투닥거리는 장면들이나, 여자들이 남자들의 편지와 선물을 가지고 놀려대는 장면들도 그냥 있는 편이 나았을 거예요. 그게 있다고 해서 속도가 특별히 처지지도 않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