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만 폴란스키 Roman Polanski

주연
존 핀치....맥베스
Jon Finch....Macbeth
프란체스카 아니스....레이디 맥베스
Francesca Annis....Lady Macbeth
마틴 쇼....뱅쿠오
Martin Shaw....Banquo
테렌스 베일러....맥더프
Terence Bayler....Macduff
존 스트라이드....로스
John Stride....Ross
니콜라스 셀비....덩컨
Nicholas Selby....Duncan
스티븐 체이스....말콤
Stephen Chase....Malcolm
폴 셸비....도널베인
Paul Shelley....Donalbain
메이시 맥파퀴어....첫번째 마녀
Maisie MacFarquhar....First Witch
엘시 테일러....두번째 마녀
Elsie Taylor....Second Witch
노엘 리밍턴....세번째 마녀
Noelle Rimmington....Third Witch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

로만 폴란스키의 [맥베스]는 개봉 당시 X 등급을 받은 유일한 셰익스피어 영화입니다. 플레이보이 사에서 공동 제작을 했고 휴 헤프너가 제작 총지휘를 맡았고요. 아, 그렇다고 폴란스키가 이 영화를 특별히 야하게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길. [맥베스] 이야기엔 그런 장면을 넣을 구석도 없잖아요. 레이디 맥베스를 연기한 프란체스카 아니스가 몽유병 장면에서 누드로 나오긴 하지만 그건 플레이보이사에서 제작 지원을 하기 전부터 각본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악명이 특별히 덜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폴란스키의 [맥베스]는 지금까지 나온 가장 불쾌한 셰익스피어 영화니까요. 아마 줄리 테이모어의 [타이터스] 정도가 이 영화에 견줄만할텐데... 아뇨, 역시 [맥베스]가 훨씬 더 불쾌합니다. 묘사되는 폭력의 강도는 덜할지 몰라요. 하지만 폴란스키의 [맥베스]에는 [타이터스]의 '예술적 터치'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영화는 잔인무도하고 기분나쁜 폭력 장면을 별다른 장식없이 생으로 보여줍니다. 마치 피에 절은 날고기를 썰어 내미는 요리사를 만난 기분이에요.

폴란스키 버전 [맥베스]는 도피적인 사극과 거리가 멉니다. 폴란스키가 묘사하는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구질구질한 누더기를 걸치고 아무데나 침을 탁탁 뱉어대는 지저분한 남자들입니다. 성에는 제대로 된 화장실도 없고 손님들은 창고 짚단에 몸을 묻고 자야 합니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황량한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전쟁은 야만적이고 잔인하며 야비합니다. 영화는 이런 더러운 피사체를 거의 다큐멘터리와 같은 거칠거칠한 화면에 그대로 담아냅니다. 영화가 X 등급을 받은 것도 대부분 그 때문이죠. 특히 10여분이 넘는 지저분한 결투 끝에 목이 잘려나가는 맥베스의 최후를 한 번 보세요. 여기서부터는 정말 호러 영화입니다.

이런 느낌은 캐릭터 묘사에도 그대로 연결됩니다. 오슨 웰즈의 맥베스는 그래도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그릇된 야망을 품었고 살인도 저질렀지만 그의 이야기는 장엄한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폴란스키 버전에서는 그런 위엄 따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지저분한 피투성이 난투극에서 맥베스는 비극적 영웅의 근처에도 가지 못합니다. 사방에 벌어지는 폭력과 살육이 원작에서는 그래도 존재를 주장하려고 시도라도 하던 존엄성의 뿌리까지 뽑아버렸습니다. 남은 건 정말 백치가 지껄이는 '헛소리와 분노 sound and fury'뿐입니다.

이 컴컴한 비전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이 영화가 1971년도 작품이며 그 끔찍한 샤론 테이트 살인사건이 1969년에 일어났다는 걸 생각해보세요. 이런 사건을 겪은 사람이 구체적인 폭력의 힘을 강조하는 건 오히려 당연하지 않겠어요? 맥더프의 성이 맥베스의 부하들에 의해 피투성이 난장판이 되는 장면은 정말 그 때의 재현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원작에는 없지만 영화에는 삽입된 덩컨왕의 살인 장면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소동 속에서 브래나나 올리비에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명배우의 에고 따위가 발견되지 않는 건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배우 질은 좋은 편이지만 감독 폴란스키의 존재감을 넘어서는 사람들은 없거든요. 이들은 모두 심하게 성격이 비틀린 키작은 폴란드 남자의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하긴 그게 [맥베스]의 주제이기도 하지만요.

이 작품이 아주 '영화'처럼 보이는 것도 폴란스키의 통제력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는 배우들 앞에 서서 그들이 자기만의 독백을 낭송할 시간 여유 따위는 주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싯구에 그렇게 존경심을 품은 것 같지도 않고요. 폴란스키의 영화는 빠르고 매정하며 70년대 식으로 살짝 미쳤습니다. 맥베스가 마녀들을 찾아가 두번째 예언을 받는 장면들을 한 번 확인해보세요. 끝없이 이어지는 거울 속에 맥베스와 뱅쿠오가 번갈아 나오는 장면과 같은 것들은 거의 사이키델릭조입니다.

[맥베스]가 개봉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영미 문학의 고전을 난도질하며 개인적인 분노를 표출하려는 불쾌한 시도로 이해했습니다. 아마 맞는 말일 겁니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뒤에도 이 영화가 원래의 힘을 잃지 않고 있다는 건, 이 영화의 불쾌함이 당시 관객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원작의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 (02/07/02)

DJUNA

기타등등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어요. 이 영화의 DVD 커버와 위의 사진을 비교해보세요. 커버에 실린 사람은 맥베스 역의 존 핀치가 아니라 뱅쿠오 역의 마틴 쇼가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