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송일곤

주연
정웅인....재성
장현성....명수
강경헌....하영
이승비....자은
김학선....스님

자은과 재성

[마법사들]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건 내용이 아닙니다. 그 내용을 끌어가는 형식이지요. 형식만 지킨다면 내용은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을 판입니다.

[마법사들]은 96분짜리 '원 테이크 원 컷' 영화입니다. 최초는 아니지만 굉장히 희귀한 부류죠. 가장 유명한 히치콕의 [로프]는 보이는 부분만 해도 몇 컷으로 나뉘어져 있고 중간중간에 속임수도 쓴 영화입니다. 앤디 워홀의 [엠파이어]나 마이클 스노우의 [이행]은 드라마를 걱정할 필요 없는 실험 영화였고요. 그렇다면 [마법사들]에 대적할만한 작품은 알렉산드르 사쿠로프의 [러시아 방주]나 마이클 피기스의 [타임 코드] 정도예요.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연극적인 테크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적인 시공간을 유지하는 실내극인 [로프]와는 달라요. 이 영화의 시간과 공간은 몇몇 익숙한 무대 트릭에 의해 파괴되고 재조립됩니다. 외딴 카페와 주변의 숲에서 벌어지는 한시간 반 정도의 이야기지만 5년의 시간과 더 넓은 무대 공간을 담고 있지요.

덕택에 영화를 찍는 행위 자체가 서커스와 같은 곡예가 됩니다. 배우들은 관객들이 보고 있는 동안 옷을 갈아입고 문밖으로 걸어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몇 년 전의 과거로 뛰어듭니다. 현재의 시공간에 들어온 유령은 중간에 자연스럽게 과거의 살아있는 자신으로 전환하고요. 이러는 동안 카메라는 배우들을 따라가고 스텝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트를 수선하고 배우들은 분장을 다듬고 옷을 수선하고... 그냥 연극으로 해도 쉽지 않을 구성인데, 확장된 무대와 카메라의 시점까지 추가되었으니 그 전체 작업이 얼마나 복잡했을지 상상해 보세요. 겨우 여섯 테이크만에 완성되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내용은?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기타리스트 자은의 자살 이후 해체된 마법사라는 그룹의 멤버들이 삼 년만에 산장에 모여 자은의 제사를 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의 절망감을 이겨내려 발버둥치는 동안 죽은 자은의 유령과 전직 스노우보드 선수였다는 스님이 그들 사이에 끼어듭니다.

죄의식과 과거에 대한 향수, 미래에 대한 위태로운 불안이 섞여 있는 이 드라마의 개념은 꽤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기교와 스타일을 위해 봉사한다는 느낌이 더 강해요. 하나의 테이크 안에서 시공을 넘나드는 스타일이 먼저이고 그 스타일을 위해 과거와 유령이 제공되는 것이죠.

딱딱한 형식주의로 흐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영화엔 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배우들과 감독이 이 복잡한 게임을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눈에 보이거든요. 이 영화의 경쾌한 유희정신과 프로페셔널리즘은 형식주의와 불필요한 '예술영화' 자의식을 몽땅 덮고도 조금 남을 정도입니다. 전체적으로 유머도 풍부해졌고요.

송일곤의 다른 디지털 영화들처럼 [마법사들]의 화면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러시아 방주]처럼 깔끔하지는 않아요. 해상도는 심하게 떨어지고 종종 초점도 맞지 않으며 몇몇 장면에선 흔들리는 화면 때문에 멀미가 날 지경이지요. 하지만 반쯤 채도를 잃은 흐릿한 디지털 화면이 뿜어내는 시적인 느낌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06/03/15)

DJUNA

기타등등

영화 보는 동안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었으니... 명수가 아르헨티나를 자꾸 '더운 나라'라고 부른다는 거죠. 그 길쭉한 나라는 단순히 '더운 나라'라고 불릴만큼 기후가 일률적이지 않잖아요. 누나네 농장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한국 여름에 익숙한 사람들이 못 견딜 곳은 아닐 거라고요.

전에 전주영화제에서 발표된 단편과 어떻게 다르냐고요? 단편은 영화의 중간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장편 버전엔 분명한 도입부와 결말이 있고 내용도 비교적 이해하기 쉽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