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주제페 토르나토레 Giuseppe Tornatore

주연
모니카 벨루치....말레나 스코르디아
Monica Bellucci....Malèna Scordia
주제페 술파로....레나토 아모로소
Giuseppe Sulfaro....Renato Amoroso
루치아노 페데리코....레나토의 아버지
Luciano Federico....Renato's Father
마틸데 피아나....레나토의 어머니
Matilde Piana....Renato's Mother
피에트로 노타리아니....본시뇨레 선생
Pietro Notarianni....Professor Bonsignore
가에타노 아로니카....니노 스코르디아
Gaetano Aronica....Nino Scordia

1.

주제페 토르나토레가 몇 년 생인지 아세요? 1956년 생이랍니다. 토르나토레가 80년대에 데뷔한 중견 감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늘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가 훨씬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대표작들인 [시네마 천국]이나 [스타 메이커] 같은 영화들은 모두 1940년대 전후의 남부 이탈리아를 무대로 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당연히 그가 [시네마 천국]의 토토처럼 그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믿게 됩니다.

그가 40년대 남부 이탈리아로 계속 돌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장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의 이탈리아에 대해 고정된 이미지들 맘 속에 간직하고 있고, 40년대의 가난한 남부 이탈리아는 그런 이미지 중 가장 인기있는 것입니다. 마이클 레드포드나 스탠리 크레이머 같은 외국인 감독들이 그들만의 '이탈리아 영화([일 포스티노], [산타 비토리아의 비밀])'를 만들 때 이 시기를 택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우린 주제페 토르나토레라는 남자의 예술가적 진실성에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혹시 가난한 남부 이탈리아라는 이미지를 착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리 그가 시칠리아 출신이라고 해도 40년대의 시칠리아와 그가 성장하고 살아온 시대의 시칠리아는 아주 같을 수는 없을테니까요.

2.

[말레나]는 대충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어른이 된 레나토라는 남자가 말레나라는 동네 여인에게 푹 빠져 있던 틴에이저 시절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말레나라는 사람이 순전히 동네에서 가장 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편협한 동네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이용당하고 고통받고 모욕당하고 추행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는 모두 완벽한 자기 합리화가 되어 있습니다. 호르몬이 부글거리는 틴에이저 소년이 동네 미인에게 반해서 매일 스프링이 삐걱거릴 정도로 자위행위를 해댄다고요? 결코 동네방네 소문낼 일은 아니지만 당연하기 짝이 없는 일이고 또 그만큼이나 강렬하고 진실된 경험입니다. 그리고 모든 진실된 경험은 예술 작품으로 옮겨질 가치가 있죠. 영화 속에서 말레나가 겪는 고난 역시 이야기할 가치가 있습니다. 훌륭한 교훈이 담겨있죠. 편협한 집단이 얼마나 잔인무도하게 한 개인을 파멸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니까요.

그러나 토르나토레가 이 둘을 결합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미심쩍습니다. 특히 2번 이야기를 1번의 화자로 전개하는 방식은요. 이런 이야기는 아무래도 주인공이 전면에 나서고 그녀의 고통을 관객들이 공유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말레나는 실제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틴에이저의 성적 환상입니다. 우리가 영화 속에서 보는 것은 말레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말레나의 얼굴과 가슴, 엉덩이 곡선입니다.

이러다보니 1번 이야기도 휘청거리기 시작합니다. 1번 이야기는 솔직할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2번 이야기가 끼어들자 영화는 지극히 위선적이 됩니다. 틴에이저 소년이 동네 미인의 집 안을 엿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중년의 남자가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회상한다면서 동네 미인의 반나 모습을 슬쩍 보여주고 그걸 또 변명하기 위해 집단과 개인의 잔인한 충돌 이야기를 덧붙인다면 이건 거짓말입니다.

3.

[말레나]는 때깔이 고운 영화입니다. 라요스 콜타이의 카메라가 잡아낸 시칠리아의 풍광이나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영화의 부정직한 태도를 비난한다고 해도 1시간 반 동안 아름다운 모니카 벨루치를 바라보는 경험이 결코 나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말레나]는 관능적인 회상으로 즐기기엔 지나치게 매정하고, 그 매정함이 우리에게 와닿는 교훈이 되기엔 지나치게 이야기와 설정이 과장되어 있으며 (시칠리아 사람들이 모두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과 같다면 그 곳은 사람 살 곳이 아닙니다!), 그 과장됨이 변호될 수 있을만큼 솔직하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지금부터 모니카 벨루치의 몸매를 1시간 반 동안 보여주겠다'라고 선언이라도 했다면 정직한 영화라도 되었을텐데 말입니다. (01/02/23)

DJUNA

기타등등

언젠가 모니카 벨루치의 '프랑스 망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탈리아 연예계의 성적 착취는 짜증날 정도로 노골적입니다. 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한 뒤 늘 관능적인 몸매만 보여주는 역만 맡다가 숨이 막힌 벨루치는 이탈리아를 버리고 프랑스 영화계로 넘어 간 뒤 해방감까지 느꼈었답니다.

아마 벨루치는 토르나토레의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서 금의환향을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보다 '예술적으로' 치장된 것만 뺀다면, [말레나]가 벨루치의 옛 이탈리아 영화들과 다른 게 과연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