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패트리샤 로제마 Patricia Rozema

주연
프랜시스 오코너....파니 프라이스
Frances O'Connor....Fanny Price
엠베스 데이비츠....메리 크로포드
Embeth Davidtz....Mary Crawford
조니 리 밀러....에드먼드 버트럼
Jonny Lee Miller....Edmund Bertram
알렉산드로 니볼라....헨리 크로포드
Alessandro Nivola....Henry Crawford
해롤드 핀터....토머스 버트럼 경
Harold Pinter....Sir Thomas Bertram
린지 던컨....레이디 버트럼/프라이스 부인
Lindsay Duncan....Lady Bertram/Mrs. Price
쉴라 기쉬....노리스 부인
Sheila Gish....Aunt Norris
빅토리아 해밀턴....머라이어 버트럼
Victoria Hamilton....Maria Bertram
저스틴 워델....줄리아 버트럼
Justine Waddell....Julia Bertram
제임스 퓨어포이....톰 버트럼
James Purefoy....Tom Bertram
휴 보너빌....러시워스 씨
Hugh Bonneville....Mr. Rushworth
찰스 에드워즈....예이츠
Charles Edwards....Yates
한나 테일러-고든....어린 파니
Hannah Taylor-Gordon....Young Fanny
소피아 마일즈....수잔
Sophia Myles....Susan
힐튼 맥리....프라이스 씨
Hilton McRae....Mr. Price

듀나 90년대 말에 분 제인 오스틴 열풍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창조적인 각색물들을 내놓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같은 작가의 작품들이 이처럼 다양한 모양으로 등장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리얼리스틱한 접근을 시도한 [설득]에서부터 현대의 LA로 무대를 옮긴 현대판 [엠마]인 [클루리스]까지, 모두 독특한 접근 방법을 시도하고 있었고 또 그게 다 먹혔었지요.

패트리샤 로제마의 [맨스필드 파크]는 이들 중 가장 도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클루리스]에서 에이미 헤커링이 시도했던 접근법도 예사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로제마의 시도처럼 과격하지는 않았습니다.

로제마는 [맨스필드 파크]라는 소설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소설을 난도질한 뒤 조각들을 자기 멋대로 조립했습니다.

영화 오프닝 타이틀을 읽다보면 로제마의 음흉한 음모가 드러납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맨스필드 파크]가 아닙니다. '[맨스필드 파크]와 제인 오스틴의 일기와 편지들'이지요.

로제마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간단히 요약 정리해드리지요. 로제마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파니 프라이스를 등장도 하기 전에 '죽여버렸습니다.' 대신 제인 오스틴의 일기와 편지, 초기 습작을 통해 복원해낸 실제 제인 오스틴을 파니로 변장시켜 맨스필드 파크에 투입시켰지요. 이 영화의 파니는 소설 속의 파니와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훨씬 똑똑하고 미인이고 지적이며 매력이 철철 넘쳐 흐릅니다.

성격 뿐만 아니라 제인 오스틴의 삶 역시 직접적으로 빌려 왔습니다. 영화 속의 파니는 제인 오스틴처럼 재능있는 작가입니다(제인 오스틴이 어린 시절 썼던 많은 작품들이 이 영화에서는 파니의 작품들로 소개됩니다.) 젊은 시절의 제인이 해리스 비그 위저한테 그랬던 것처럼 영화 속의 파니는 헨리 크로포드의 구애를 받아들였다가 다음날 거절합니다. 영화는 소설 속의 윌리엄과 수잔을 합쳐서 보다 큰 비중의 수잔을 만들었는데, 그 결과 영화 속의 수잔은 제인의 언니 카산드라와 아주 비슷한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 모자라서 로제마는 다른 등장인물에게도 새로운 측면을 부여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맨스필드 파크의 가장인 토머스 경이죠. 그는 안티과에 있는 농장의 흑인 노예들을 학대하고 강간한 새디스트입니다. 그의 아들 톰과의 갈등도 톰이 단순한 놈팽이여서가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쌓아올린 부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예민한 청년입니다!

그게 전부일까요? 천만에요. [밤이 기울면]의 감독이 만든 영화가 아니랄까봐, 로제마는 노골적인 레즈비언 서브텍스트를 작품에 첨가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메리 크로포드는 에드먼드보다는 파니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적극적인 성적 구애처럼 보이는 행동도 서슴지 않죠.

더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레이디 버트럼은 마약 중독자입니다! 헨리 크로포드와 머라이어는 정말로 화면 위에서 찐한 섹스를 벌이고요! (원래는 섹스 신이 더 길었다지만, 등급을 위해 잘라야 했답니다.)

자, 질문이 제시됩니다. 로제마는 왜 이렇게 무시무시한 짓을 저질렀을까요?

파프리카 원작을 그대로 영화화했다면 재미가 없었을테니까요! [맨스필드 파크]는 결코 제인 오스틴의 최대 걸작이 아닙니다. 스토리는 늘어지고 일어나는 일은 별로 없으며 결정적으로 주인공이 영 꽝이지요. 파니 프라이스는 제인 오스틴이 만든 캐릭터 중 가장 재미없는 인물일 겁니다. 파니는 엠마 우드하우스처럼 귀엽지도 않고 엘리자베스 베넷처럼 활달하지도 않으며 앤 엘리엇의 조용한 깊이도 없습니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지독하게 겁에 질려 있고 수줍기 짝이 없죠. 하는 일이라고는 예쁘게 앉아서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찰하는 것밖에 없고요. 이런 캐릭터와 사건들로 어떻게 흥미진진한 영화를 만들겠어요? 주인공이 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게다가 로제마의 개작도 아주 이유가 없지는 않습니다. [맨스필드 파크]는 상당히 자서전적인 작품입니다. 제인 오스틴 역시 어린 시절의 파니처럼 부모한테서 떨어져 먼 친적 집에 맡겨진 적 있죠. 파니의 어린 시절은 오스틴의 어린 시절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왜 제인의 어린 시절을 보다 적극적으로 대입시켜서는 안되는 거죠?

노예 제도에 대한 이야기 역시 삽입 이유가 충분합니다. 토머스 경이 안티과에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가 노예를 부렸음이 거의 확실합니다. 맨스필드 파크의 재정적 몰락이 서인도 제도의 노예 제도 몰락과 연결되어 있다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많죠. 로제마는 이미 소설 속에 녹아 있고 이미 수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다루어졌던 소재를 보다 과감하게 끄집어낸 것 뿐입니다.

물론 오스틴은 이렇게 적극적인 사회 비평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원작이 그러지 않았다고 영화까지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 영화 [맨스필드 파크]가 오스틴 소설의 단순한 각색이 아닌, 오스틴과 오스틴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분석의 야망을 품고 있는 작품이라는 걸 고려해보면 이 모든 것들은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게다가 노예 제도는 오스틴 시대를 살던 여성들의 상황에 대한 효과적인 은유 역할도 해줍니다.

레즈비언 서브텍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인 오스틴의 레즈비언 설이 어디 어제 오늘 일인가요? 그리고 원작에서도 메리 크로포드는 파니에게 정말로 호감을 품고 있었단 말입니다. 영화 속의 파니가 소설 속의 파니보다 훨씬 매력적인 사람이란 걸 고려해보면 메리 크로포드의 적극성은 아주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걸요!

듀나 [맨스필드 파크]가 시시한 작품이라는 데엔 동의할 수 없군요. 물론 이 소설은 [오만과 편견]이나 [엠마]처럼 재미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그러나 결코 지루한 작품도 아니고 소설이 담고 있는 모럴이나 테크닉도 앞에 언급한 작품보다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좀 어둡기는 하지만 그건 작품의 개별적인 성격일 뿐이지 단점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네, 파니 프라이스는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주 쓸모없는 인물 역시 아닙니다. 왜 엠마처럼 한없이 매력적인 캐릭터만 주인공이 되어야 하나요? 파니처럼 평범한 사람도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사실 소설의 많은 부분은 파니의 평범함의 힘을 빌리고 있습니다. 파니가 특별한 매력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서스펜스는 더욱 강렬해지고, 파니라는 캐릭터의 발전과 도덕적 장점 역시 사실적으로 부각되니까요. 로제마가 시도한 레즈비언 서브텍스트도 파니가 평범하고 병약한 여자일 때 더 잘 맞습니다. 메리 크로포드에게 파니는 에드먼드를 손에 넣기 위한 위한 일종의 수단이었으니까요. 물론 로제마 머리 속에 다른 게 숨어 있었다면 할 말 없습니다만.

로제마는 실제 제인의 캐릭터를 대입시키면서 소설의 많은 민감한 부분들을 지워버렸습니다. 소설 속에서 파니에게 닥친 모든 일들은 아주 중대합니다. 몸도 약하고 사교성도 없으며 의존할 데가 전혀 없는 사람이니까요. 자칫 선택을 잘못하면 인생 전체를 망치고 맙니다.

그러나 로제마 버전 파니는 그럴 걱정이 없어 보여요. 로제마의 파니는 장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건강하고 영리하며 사교성도 좋은데다가 무엇보다도 훌륭한 작가지요. 그렇다면 파니처럼 이 영화 속에서 전개되는 사건에 필사적으로 자신을 집중할 필요가 없어지는 겁니다. 연애에 실패한다고 해도 제인 오스틴처럼 매력적인 노처녀로 늙어가며 영문학사상 가장 중요한 걸작들을 만들어내면 되니까요! 당연히 전체적인 사건의 중요성도 줄어들고 맙니다.

제인 오스틴의 실제 삶과 파니 프라이스의 이야기가 종종 충돌하기도 합니다. 네, 제인 오스틴은 파니처럼 친척 집에 맡겨진 적 있습니다. 하지만 파니처럼 어른이 될 때까지 머물지는 않았어요. 파니처럼 복잡한 삼각 관계에 빠진 적도 없었고요. 물론 제인 오스틴과 파니 프라이스를 결합하는 것은 흥미로운 아이디어였고 그 때문에 얻은 것도 많습니다만 100 퍼센트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둘은 자주 충돌하고 작품의 매끄러운 구성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작위성도 남고요.

파프리카 저 역시 이 영화가 완벽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얻은 게 훨씬 많아요. 무엇보다도 로제마는 [맨스필드 파크]를 그대로 옮겼을 때 얻을 수 있었던 작품보다도 훨씬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논쟁도 수없이 쏟아졌지만 그 역시 이 영화의 재미 중 하나였고요. 아무리 제인 오스틴 순수주의자라고 해도 이 영화가 불을 당긴 논쟁이 따분한 것이었다고는 말 못할 걸요!

듀나 네, [맨스필드 파크]는 정말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성공한 부분도 재미있지만 성공하지 못한 부분도 재미있지요.

파프리카 그리고 패트리샤 로제마의 개성이 담뿍 묻어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맨스필드 파크]는 90년대에 나온 어떤 제인 오스틴 영화들보다도 감독의 개성이 가장 강한 작품입니다. 갈색조가 도는 정갈하고 쓸쓸한 비주얼에서부터 로제마 식 캐릭터 묘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요.

로제마의 전작과 이 작품을 연결하는 것도 쉽습니다. [나는 인어의 노래를 들었다]처럼 이 영화도 풋내기 예술가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인어의...]의 폴리처럼 [맨스필드 파크]의 파니도 관객들을 직접 바라보면서 그들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전 후반부에서 에드먼드와 키스를 하면서 파니가 관객들을 바라보는 장면이 특히 맘에 들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관객들과 그렇게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주인공들이 그렇게 흔한가요?

메리 크로포드를 [나는 인어의...]의 가브리엘 생 프레와, 헨리 크로포드를 [밤이 기울면]의 마틴과 연결시키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특히 로제마가 헨리를 다루는 방식은 그렇습니다. 영화 속의 헨리는 소설 속의 헨리보다 훨씬 동정이 가는 인물입니다. 관객들은 헨리가 진정으로 파니를 사랑했다고 믿습니다. 헨리와 머라이어의 불륜 역시 소설보다는 영화 속에서 더 인상깊게 다루어집니다.

듀나 레즈비언 터치 역시 로제마의 개성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아무리 로제마가 원작에도 재료가 있었다고 주장해도, 그런 장면들에는 [밤이 기울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쾌락주의적인 면이 더 강합니다. 예쁜 여자 배우 둘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은근하게 에로틱한 분위기로 몰고가면서 "한 사람의 아름다운 여성보다 더 보기 즐거운 것이 있다면 그건 두 사람의 아름다운 여성이다"라는 자기 주장을 잊었을 리가 있겠어요?

파프리카 분명 메리 크로포드와 파니 사이의 성적 긴장감은 파니와 에드먼드 사이의 관계에서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듀나 조니 리 밀러가 에드먼드 역을 너무 덤덤하게 연기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파프리카 아뇨, 전 오히려 그런 은근함과 주저가 둘 사이의 근친상간적 감정이 주는 서스펜스를 더 강렬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걸요? 그리고 둘 사이의 감정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어요. 이 영화에서 진짜 액션은 에드먼드의 구애를 파니가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헨리 크로포드의 구애를 파니가 거절하는 것인걸요.

듀나 알렉산드로 니볼라가 연기한 헨리 크로포드는 어때요? 그에게는 원작의 헨리가 가졌던 모호한 분위기가 부족합니다.

파프리카 전혀 다른 인물이니까요. 그는 원작에 나오는 경박한 난봉꾼이 아닙니다. 전 니볼라가 로제마 식 헨리 크로포드를 잘 연기했다고 생각해요.

듀나 가장 좋은 남자 배우는 조니 리 밀러나 알렉산드로 니볼라가 아니라 토머스 경을 연기한 헤롤드 핀터입니다. 그는 전문 배우들처럼 화려한 테크닉을 과시하지는 않지만, 무게있고 강렬하고 신중하며 가끔 터져 나오는 강렬한 감정을 완벽하게 제어할 줄 알지요. 이렇게 여러 재능을 한꺼번에 부여받은 사람들을 보면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어요.

파프리카 여자 배우들은 완벽하게 캐스팅되지 않았나요? 로제마 버전 파니 프라이스를 연기한 프랜시스 오코너는 정말 매력적이어서 연기에 대해 생각이 미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실제 제인 오스틴도 오코너가 연기한 것과 비슷한 인물이 아니었을까요? 오코너는 제인 오스틴 고유의 위트와 냉철함을 훌륭하게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삼각관계의 갈림길에 선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도 공감가게 해치웠습니다.

엠베스 데이비츠 역시 멋지게 캐스팅 된 배우입니다. 보통 이 배우는 착하기만 한 천사표 캐릭터에 동원되는 경향이 강한데, 로제마는 데이비츠가 그 이상의 배우라는 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데이비츠의 메리 크로포드는 섹시하고 냉정한 매력으로 가득 찬 복잡하고 유혹적인 인물입니다.

그리고 여기엔 우리 둘 중 한 명이 아주 귀여워 하는 누군가가 잠시 나오지요. 어린 파니를 연기한 한나 테일러 고든 말입니다. :-) 걔도 참 많이 컸어요!

듀나 레이디 버트럼과 프라이스 부인의 일인 이역을 한 린지 던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들의 일인 이역은 단순히 재치있는 캐스팅 이상입니다. 아주 제인 오스틴적이기도 하니까요.

파프리카 어딘지 [슬라이딩 도어즈]가 떠오르지 않아요? 영화는 각각 다른 선택을 한 동일한 여성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고 있었던 것 같아요. 둘 다 그렇게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지만요. 돈과 사랑 중 어느 한쪽만을 택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오스틴 여사의 교훈이 아니겠어요?

듀나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죠. 로제마는 기존 오스틴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오스틴 시대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보통 오스틴 영화들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엽을 사는 영국 중상층 가족의 아기자기한 호사스러움에 묻혀 있는 것과는 달리, 로제마는 이런 사치를 대부분 지워버립니다. 맨스필드 파크의 내부는 무너진 벽과 가구의 부재로 인해 은근히 비어있고 추워 보입니다. 별로 오스틴 영화다워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아주 이치에 안 맞는 것은 아니지요. 몰락해가는 맨스필드 파크의 분위기와 잘 맞으니까요.

로제마는 프라이스 가문의 빈궁함을 아주 냉정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이 역시 효율적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맨스필드 파크에서 파니의 위치가 소설보다 훨씬 낮게 떨어지기도 했어요. 결과는 대체로 좋군요. 새로 변신한 파니의 캐릭터 때문에 약화되었던 극적 긴장을 보완하기도 하니까요.

이 모든 것들은 로저 미첼이 [설득]에서 시도한 리얼리스틱한 접근과 관계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로제마는 보다 개인적인 이유에서 이런 접근법을 시도한 듯 합니다. 네, [밤이 기울면]이 가끔 떠오르더군요.

파프리카 전 레슬리 바버의 음악이 아주 좋았답니다. 바버의 음악은 19세기 초엽의 정갈한 고전주의적 분위기를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으면서도 효율적인 영화음악의 기능도 함께 해내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수줍고 조용해서 잘 눈에 뜨이지 않지만, 지금까지 나온 오스틴 영화 음악 중 가장 훌륭합니다.

슬슬 요약을 해보기로 하죠. 이 영화는 로제마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인데, 여러 단점들을 고려해 봐도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완벽하게 통제가 되어 있고 감독의 개성 역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면에서 [나는 인어의 노래를 들었다]나 [밤이 기울면]과 같은 전작들에서 발전했습니다.

듀나 어딘지 모르게 [나는 인어의 노래를 들었다]의 속편을 [밤이 기울면]의 캔버스에 옮긴 듯한 작품입니다. 전 적어도 그렇게 느꼈어요.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이 영화의 조용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유머 감각입니다. 이 영화는 오스틴 언어의 섬세한 위트를 잃었을지 몰라도 로제마식 영화적 유머로 그 빈 자리를 충분히 커버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가진 유머와 자기 성찰의 절반만 넣었어도 [밤이 기울면]은 걸작이 되었을 거예요. (00/07/22)

D&P

기타등등

슬슬 다시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금성사의 옛 번역본은 별로 맘에 드는 책이 아닙니다. 하긴 맘에 드는 오스틴 번역을 본 적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