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윤종석

주연
김강우....천수
박시연....유리
조재현....강사장
이원종....김반장
오광록....박사

천수와 유리

[마린 보이]는 그렇게 당기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웃통 벗은 김강우의 사진으로 관객들을 끌려는 홍보전략도 맘에 안 들었고, 조폭들 보기도 싫었고, 마약 밀매라는 소재도 그랬고. 사실 지나치게 기교 위주인 초반부도 별로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보다보니 영화는 예상 외로 재미있던 걸요.

제목의 마린 보이는 마약을 몸 안에 숨겨 바다 속을 헤엄쳐 운반하는 마약 밀매책을 가리킵니다. 정말 이런 건 없대요. 그냥 감독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겁니다. 하여간 도박빚에 시달리는 전직 수영선수 천수는 마약상 강사장에 의해 발탁되어 마린 보이가 됩니다. 강사장은 유리라는 젊은 여자의 스폰서 인데 하필이면 천수는 유리와 사랑에 빠지고요...

뻔한 이야기가 아니냐고요? 네, 뻔합니다. 그런데 그냥 뻔한 게 아니라 작정하고 뻔한 거예요. 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 설정, 동기, 스토리는 몽땅 기성품입니다. 다 40년대 미국 필름 느와르에서 가져와 부산에서 재조립한 것이지요.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억세게 운이 없어 범죄조직에 말려든 청년,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섹시한 팜므 파탈,
늘 위트 있는 인용구를 읊고 다니는 범죄조직의 보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당을 잡으려는 부패한 형사,
보스의 여자와 사랑에 빠진 부하,
덩치 크고 말 없는 보스의 보디가드,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 없는 배배 꼬인 인간 관계,
자연스럽게 거기에 따라붙는 이중, 삼중의 배반,
그만큼이나 배배 꼬인 플롯,
조지 거시윈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재즈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몇 개 골랐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많이 나와요. 재료도 그렇지만 이야기를 끌어가고 캐릭터를 구축하는 방식도 전형적인 느와르입니다. 단지 분위기는 많이 다르죠. 영화는 40년대 컴컴한 필름 느와르의 분위기와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밝고 덜 축축합니다. 40년대 오리지널 영화들보다는 로렌스 캐스던 이후에 만들어진 소위 네오 느와르 쪽에 가깝죠.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것을 가져온 영화이니 당연히 이야기 전개나 캐릭터는 인공적입니다. 하지만 그 인공성은 영화를 보다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영화가 적절한 속도로 유려하게 흐르고 반전이나 액션의 위치가 적절하며 타이밍이 딱 맞기 때문에 관객들의 관심이 일탈하는 경우도 적고요. 물론 막판에 가면 지금까지 끌어온 이야기를 정리하지 못해 애를 먹는 구석이 있긴 합니다. 결말은 지나치게 긴 편이고요. 그러나 이 정도면 아주 잘 했다고 할 수 있지요.

캐릭터와 연기는 중간 이상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재현이 연기한 강사장은 좋은 악역입니다. 개성이 뚜렷하고 무지막지한 범죄자라는 부정적인 면과 유리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처럼 긍정적인 면이 흥미로운 콘트라스트를 만들어내고 있지요. 하지만 김강우와 박시연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그들이 연기하는 천수와 유리에게는 강사장만큼의 공은 들어가 있지 않아요. 배우들의 연기만 따로 떼고 봐도 조재현이 더 위고. 그러나 전체적인 연기 조화는 괜찮은 편이죠.

윤종석 감독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장르의 고정관념 없이 자유롭게 즐기길 바라던 모양이던데, 그건 좀 어렵겠습니다. 그러기엔 기성품 냄새가 너무 강한 걸요.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것도 없으니, 이 정도 수준의 기성품을 만드는 것도 멋진 일이니까요. (09/01/20)

DJUNA

기타등등

박시연이 끝에 가서 노래를 부릅니다. 그 노래가 엔드 크레딧에도 나오는군요. 아주 잘 불렀다고는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