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주지홍

주연
성유리....메이
장혁....은설

은설과 메이

메이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만 나오는 특별한 부류의 사람입니다. 3살 때 미국에 입양되어 갔다가 20여년 만에 부모를 찾으러 돌아온 사람이면서 오로지 한국어만 유창하지요. 메이는 입양인이 한국어에 서툴 거라고 생각하는 건 편견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건 그냥 말이 안 되지요. 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여기에 무관심한지 전 정말 모르겠단 말입니다. 캐릭터 묘사에서 사용하는 언어만큼 기본적인 게 또 있나요?

하여간 메이의 부모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고 찾아간 집에는 친척 아줌마만 남아있습니다. 부모가 자길 버린 게 아니라는 건 알아서 좋긴 한데, 미스터리 하나가 풀리지 않았어요. 메이의 등에는 울퉁불퉁한 상처가 하나 있고 메이는 그것을 '리저드'라고 부르는데 그게 뭔지 정말 모르겠단 말입니다.

그러는 동안 메이는 은설이라는 택시운전사를 만납니다. 이 사람은 민히제스틴 증후군이라는 심장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3초 동안 심장이 갑자기 멎는 불치병이라고 하는군요.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봤는데 [토끼와 리저드] 관련 자료만 잔뜩 나옵니다. 너무 희귀해서 구글링해도 안 나오는 병인가요, 아니면 표기가 이상한 것인가요. 하여간 감독이 기자간담회 때 '이 병에 대해서는 다들 아시겠지만...'이라고 말했을 때는 왠지 모르게 따돌림당하는 기분이었답니다. 그런데 이런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계속 택시운전사를 해도 되나요? 손님을 태우고 올림픽 대로를 달리던 택시에서 갑자기 운전사의 심장이 멎어버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참, 은설에게도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토끼에 집착하고 있어요. 택시에도 빨간 토끼를 하나 매달아 놓고 있고, 오래간만에 만난 교통경찰 친구에게도 빨간 토끼를 찾아달라고 애걸복걸합니다. 그러면서 정작 그 빨간 토끼가 뭔지는 자기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둘은 공항에서 처음 만나 그 뒤로 계속 얽히는데, 이걸 보면 혹시 메이가 한국 드라마만 죽어라 다운받아보며 한국어를 공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는 사람이 꼭 한국연속극 주인공처럼 말하고 행동하지요. 몇 살 많아보이지도 않는 은설을 '아저씨'라고 부르며 끝까지 존대를 올려붙이는 것부터 그렇죠. 물론 그런 메이에게 끝까지 반말을 고수하며 시건방을 떠는 은설도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 남자주인공이죠. 둘다 꼴보기 싫어 죽겠습니다.

왜 영화는 둘을 죽어라 붙여놓는 걸까요? 입양인 여자주인공과 희귀병 남자주인공이라는 설정부터 어색하기 짝이 없는데. 알고 봤더니 두 사람에게는 공통된 과거가 있습니다. 스포일러라서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려운데, 어느 순간 은설이 갑자기 영감이라도 얻은 것처럼 두 사람의 과거를 기억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거기엔 메이의 상처가 왜 생겼는지, 은설의 빨간 토끼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나옵니다. 물론 둘이 왜 그렇게 연속극 주인공처럼 행동하는지에 대한 설명까지 나오지는 않습니다. 비극적이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고요. 그냥 한없이 연속극스러울 뿐입니다. 불필요한 상징을 극도로 과장한 신파이기도 하고요.

기술적인 면에서 영화는 날씬한 편입니다. 성유리의 연기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지만 이 영화에선 특별히 걸리는 구석이 없어요. 장혁도 괜찮고요. 단지 이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이 제대로 된 존재의미를 갖추고 있지 않고 영화적 장치들을 순전히 그림 만들기 위해 과장하는 부분이 많아서 와닿지 않을 뿐입니다. (09/10/13)

DJUNA

기타등등

주지홍은 크리스틴 스코트-토머스와 로라 스메트 주연의 [치통]이라는 영화를 프랑스에서 만들었죠. 전 나름 크리스틴 스코트-토머스의 팬이라 이 사람 경력을 꽤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는데, 지금까지 [치통]과 관련된 사진 한 장 본 적 없습니다. IMDb에 제목이 올라와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요.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