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윤인호

주연
김혜자....엄마
최진실....아정

1.

일단 원작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걸 밝혀두어야 할 것 같군요. 그러니 저희가 자주 하는, 원작이 어쨌는데 영화는 어쨌고 하는 투정은 여긴 없습니다. 뭐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니 그 사람 의도가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치고 그냥 넘어가죠.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게 꼭 영화의 질과 직접적으로 상관 있으라는 법도 없고요.

2.

일단 참 작은 작품입니다. 극적 비중이 기준치를 넘는 캐릭터가 겨우 두 명이고 무대는 아파트 안으로 제한됩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그 두 캐릭터가 얽히면서 떠들어대는 대화가 차지하지요.

당연히 이 영화에서 감독의 비중은 줄어들고 배우의 비중은 늘어납니다. 윤인호 감독은 특별히 튀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또 그렇게 영화적으로 만들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안이했다고 하지는 않겠어요. 모든 영화가 꼭 영화적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아주 위대한 영화들 중에서도 영화적이 아닌 작품들도 많습니다. 찰리 채플린이나 막스 형제의 영화들을 보세요. 카메라를 그냥 세워두고 그 앞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한 것에 불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걸작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잖아요. 카메라로 찍은 연극이라고 해도 그 연극이 아주 재미있고 배우가 훌륭하다면 사실 별 상관 없습니다. 관객들이 영화 어휘를 늘리려는 감독 지망생이 아닌 바에는요.

3.

그렇다면 '이 영화가 그럴 만한 비영화적 재미를 주느냐'가 문제가 되는데, 전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저랑 같이 간 아무개 씨는 '원작은 더 낫더라'를 후렴처럼 붙이고 다니더군요. 이럴 때는 원작을 안 읽고 보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르죠.) 적어도 스크린 앞을 오가는 두 캐릭터들은 꽤 생생하게 구현되어 있고, 국내 장르 영화들이 종종 함정에 빠지는 상투적인 대사들로부터도 벗어나 있습니다. 후반부 클라이맥스가 좀 노골적인 것만 빼면 대사들은 좋습니다. '세련된' 딸과 '아줌마' 엄마의 대립이 주는 불변의 재미 역시 꽤 쏠쏠합니다.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라면 이 영화가 의식적으로 끌고가는 모성 신화의 파괴에 관심이 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딸인 아정이 어머니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은 저에겐 좀 지나치게 순진하게 느껴지더군요. 서른을 훌쩍 넘긴, 그것도 꽤 교육을 받은 여자가 그런 모성 판타지를 품고 있다는 게 저에겐 참 어색하게 느껴져요. 문학 소녀의 모녀관은 저희 같은 막가파 자식들과는 기초부터 다른건지? 흠... 원작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원작 이야기는 안 한다고 앞에 미리 말해놓고서도 자꾸 변명을 붙이게 되네요.)

4.

이 영화를 돌리는 에너지는 김혜자의 능청스러운 아줌마 연기에서 나옵니다. 잘 연기된 한국식 아줌마를 보는 것은 늘 재미있습니다. 온갖 내숭을 초월한 이 캐릭터들은 자기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지는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뱃속의 모든 것들을 와르르 쏟아내니까요. 여기서 우리가 얻는 재미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거대 악당들을 볼 때 느끼는 재미와 꽤 비슷합니다. 속이 후련해지지요.

김혜자의 아줌마 연기는 좋습니다. 약간 오버하는 경향이 있기는 한데, 원래 아줌마들은 오버하기 마련입니다. 야무지게 구사하는 부산 사투리 같은 연기의 디테일도 많아서 관객의 시선도 끌고요. 적어도 이 영화는 김혜자의 영화 복귀작으로는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김혜자가 약간 오버했다면, 최진실의 연기는 다소 전형성에 빠져있고 단순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건 꼭 그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연기로도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 낸 배우들도 많지요. 이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존 웨인 같은 사람들을 보세요. 최진실은 어휘가 그렇게 많은 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배우는 그 적은 어휘만으로도 지금까지의 경력을 알차게 꾸려왔고 지금도 예외는 아닙니다. 게다가 요새 30대 중반이라면 사람 자체가 원래 좀 진부해질 나이이니 오히려 더 적절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최진실을 김혜자와 나란히 세워놓으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요네즈]가 김혜자의 영화복귀작일 뿐이라면 최진실은 완벽하게 자기 역할을 한 것입니다. 김혜자의 아줌마 연기를 위한 훌륭한 배경 및 보좌 역할을 해주니까요.

그러나 이런 영화는 한 배우만 보여서는 안됩니다. 엄마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영화니까요. 딸 역시 엄마와 같은 비중으로 뛰어야 균형이 서죠. 그렇지 않다면 영화는 연기 자랑 대회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진짜로 어려운 것은 딸 역인 셈입니다. 엄마 역은 다양한 아줌마 주책과 사투리와 같은 연기 재료가 있지만 딸 역은 그런 무기도 없이 그 막강한 엄마와 대등해져야 하니까요. 좀 더 막강한 경력과 이미지를 가진 약간 나이 든 배우가 이 역을 했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어요. (99/02/16)

DJUNA

기타등등

사운드는 문제가 있더군요. 관객들이 김혜자의 대사를 종종 놓쳤던 것도 김혜자의 사투리 구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녹음과 같은 기술 문제가 더 컸죠. 대사가 팔할을 차지하는 이런 영화에서 녹음 미비는 상당히 큰 결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