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조르조 페로니 Giorgio Ferroni

주연
피에르 브리스....한스 판 아르님
Pierre Brice....Hans van Arneem
로베르트 보엠....그레고리우스 발 교수
Robert Boehme....Prof. Gregorius Wahl
스킬라 가벨....엘피 발
Scilla Gabel....Elfi Wahl
볼프강 프라이스....로렌 볼렘 박사
Wolfgang Preiss....Dr. Loren Bolem
다니 카렐....리셀로트 카르닌
Dany Carrel....Liselotte Carnin
마르코 줄렐미....라브
Marco Guglielmi....Raab
리안나 오르페이....안넬로르
Liana Orfei....Annelore

발 교수와 엘피

조르조 페로니의 호러영화 [석상 여인들의 풍차]는 프랑스/이탈리아 합작영화이지만 무대는 네덜란드입니다. 제목에 나와있는 '석상 여인들의 풍차'는 마녀나 여자 범죄자들을 석상으로 만들어 전시한 풍차고요. 주인공 한스 판 아르님은 그 석상을 연구하러 왔다가 풍차의 주인인 그레고리우스 발 교수의 병약한 딸인 엘피를 만나게 됩니다. 엘피는 한스에게 사랑을 호소하지만 한스가 거절하자 충격을 받아 죽고 말죠.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던 한스는 발 교수에게 진실을 털어놓지만...

줄거리만 따진다면 페로니의 영화는 칭찬할 구석이 많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얼굴없는 눈]과 [밀랍인형의 집]을 성의없이 연결한 것 같아요. 치명적인 장애/질병에 시달리는 딸을 위해 여자들을 납치해 살해하는 미친 아버지의 이야기와 여자들을 살해한 뒤 그 시체를 예술품으로 만들어진 진열하는 미친 예술가의 이야기가 하나로 묶인 거죠. 살인이 일어나면 시체를 치우는 게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후자는 지나치게 과장되어 마땅히 진짜 드라마여야 할 첫번째 이야기에서 시선을 빼앗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평범한 이야기가 그렇게 흥미롭게 각색된 것도 아닙니다. 영화는 일단 굉장히 느려요. 특히 도입부의 절반은요. 엘피가 한스의 눈 앞에서 쓰러진 뒤로는 이야기가 좀 재미있어지긴 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느립니다. 이미 뻔해진 비밀을 지나치게 오래 물고 늘어진다는 느낌도 강하고요.

그러나 [석상 여인들의 풍차]는 여전히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테크닉컬러의 호사스러운 장려함이 호러영화 장르와 훌륭하게 결합된 작품이지요. [밀랍인형의 집]과 같은 5,60년대 호러 영화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거의 신경질적일 정도로 화려한 당시 테크닉컬러 영화들의 색감이 불러일으키는 위태로운 감정이 얼마나 이 장르와 근사하게 어울리는지 아실 겁니다. 잔인한 장면이 거의 없는 영화지만 낡은 풍차와 박제된 시체들로 구성된 영화의 요란한 이미지는 공식적인 줄거리의 힘을 넘어섭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은 줄거리를 따라가는 장면들이 아니라 줄거리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시청각적인 요소들을 휘둘러대는 장면입니다. 엘피의 죽음 이후 한스가 겪는 일련의 초현실적인 경험들은 거의 영화적 약물중독 상태에 가깝지요. 그 장면이 끝나면 따분한 스토리를 의무적으로 열거하는 정상적인 진행부분이 지겨워질 정도입니다.

[석상 여인들의 풍차]는 [사탄의 가면]처럼 이탈리아 호러 영화의 신기원을 연 작품은 아닙니다. 페로니는 훌륭한 장인이었지만 마리오 바바처럼 도전정신과 영감으로 가득 찬 예술가는 되지 못했죠. 그러나 노련한 장인이 자신이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도구들을 이용해 만든 이 영화는 여전히 아름다운 공예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05/03/01)

DJUNA

기타등등

몬도 마카브로의 DVD는 다니 카렐의 악명높은 토플리스 장면을 복원해놓았는데... 정말 대단한 장면을 기대하지는 마시길. 심지어 유두도 보이지 않을 정도라 왜 토플리스라고 불렸는지도 모를 정도거든요. 오히려 검열관들이 그렇게 유난을 떠니까 아무 것도 아닌 장면이 더 야해 보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