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콘 사토시 Satoshi Kon

주연
쇼지 미요코....후지와라 치요코 (70대)
Miyoko Shôji....Chiyoko Fujiwara (70's)
코야마 마미....후지와라 치요코 (20-40대)
Mami Koyama.... Chiyoko Fujiwara (20-40's)
오리카사 후미코....후지와라 치요코 (10-20대)
Fumiko Orikasa.... Chiyoko Fujiwara (10-20's)
이이즈카 쇼조....타치바나 겐야
Shôzô Îzuka....Genya Tachibana
츠다 쇼코....시마오 에이코
Shouko Tsuda....Eiko Shimao
스즈오키 히로타카....오오타키 준이치
Hirotaka Suzuoki....Junichi Ootaki
쿄다 히사코....어머니
Hisako Kyôda....Mother

치요코

전작 [퍼펙트 블루]가 그랬던 것처럼, 콘 사토시의 두 번째 극장용 장편 [천년여우]의 내용도 애니메이션의 세계보다는 실사영화의 세계에 속해있습니다. 일본 영화의 황금기를 거쳤던 명배우의 회상을 통해 일본 역사와 영화사의 현장을 다시 방문한다는 이야기니까요.

영화는 타치바나 겐야라는 인터뷰어가 카메라맨을 끌고 왕년의 명배우 후지와라 치요코의 집을 찾아가면서 시작됩니다. 치요코는 인터뷰를 통해 어렸을 때 숨겨주었던 지하운동가인 화가에 대한 자신의 짝사랑과 그 뒤에 거의 즉흥적으로 시작되었던 영화 경력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들려주죠.

치요코의 이야기 자체는 그렇게까지 굉장하지는 않습니다. 어렸을 때 마주친 운명적인 사랑에 평생동안 매달린 한 노인네의 감상적인 회고에 불과하지요. 솔직히 조금 지나치다는 느낌도 듭니다. 운명적인 첫사랑의 기억이 아름다울 수는 있어도, 치요코의 경우는 실체가 없어도 너무 없거든요. 하긴 그런 허망한 아름다움이 빛과 그림자로만 구성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사랑을 투영하는 이상적인 은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요.

주인공이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로맨스에 대한 기억에 빠져 있기 때문에, 100년의 일본 영화사를 통해 천년의 일본 역사를 바라본다는 아이디어도 약해졌습니다. 이 두 역사는 치요코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다채로운 배경에 불과하거든요. 역사적 무게 뿐만 아니라 고유의 스타일과 의미까지 날아가버린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예요.

그러나 영화의 스타일은 주목할 만합니다. 평범할 수도 있는 실사영화의 이야기를 불꽃같은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폭발시키는 콘 사토시의 재능은 여기서도 빛을 발합니다.

우선 치요코의 회상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들을 나열하는 식으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배우로서 경력을 시작하면서부터 치요코의 개인적인 경험은 모두 그 사람이 출연한 영화 속에 투영되지요. 전국시대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 400년 뒤의 미래까지 훑고 지나가는 이 '명배우'의 영화들은 모두 후지와라 치요코라는 자연인의 연애담을 로맨틱하고 장려하게 꾸미기 위한 보조도구입니다. 덕택에 치요코의 실제 삶과 영화 속의 장면들은 분명한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촘촘하게 뒤섞이게 되지요.

영화는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타치바나 겐야와 카메라맨을 치요코의 회상에 동참시킵니다. 회상이 진행되면 이들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처럼 카메라를 들고 치요코의 과거에 뛰어듭니다. 심지어 타치바나 겐야는 장군이나 사무라이, 트럭 운전수와 같은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로 변신해 영화 속에 직접 출연하기도 해요. 치요코의 헌신적인 팬인 그의 이런 간섭은 종종 가볍디 가벼운 치요코의 연애담보다 더 감명깊은 소망성취 판타지이기도 합니다.

콘 사토시는 이 복잡한 구조의 이야기를 하나의 유려한 영화적 흐름 속에 대담하게 밀어넣습니다. 치요코가 출연한 수많은 영화 장면들이 모두 연인을 향해 달려가는 치요코의 실제 드라마 속에 융합되는 부분과 같은 것들은 실사 영화의 편집으로도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지만,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의 표현적인 테크닉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천년여우]의 스타일은 전적으로 애니메이션 고유의 것입니다.

[천년여우]는 걸작이 아닙니다. 걸작이 되기엔 너무 얄팍한 영화이죠. 애니메이션과 서술기법의 화려한 스타일은 인상적이지만 영화가 이를 지나치게 즐기고 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습니다. 콘 사토시의 화려한 스타일을 지탱할만한 내러티브의 기둥이 완성되는 걸 보려면 그의 다음 영화 [도쿄 갓파더즈]를 기다려야 합니다. (04/05/05)

DJUNA

기타등등

치요코가 활동했던 시기의 일본 영화계가 과연 도입부의 대자본 SF 영화를 찍을 능력이 있었을까요? 하긴 치요코의 괴수 영화에 나오는 고질라 사촌도 고무옷을 입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더군요.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