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성홍

주연
문성근....판곤
추자현....현정
전세홍....현아
오성수....김 순경

현정

[실종]은 2007년에 일어났던 보성 어부 살인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스릴러 영화입니다. 실화를 그대로 각색한 거 아니고 평범해 보이는 60대 시골 남자가 무시무시한 연쇄살인마였다는 테마만 가져왔지요.

이야기 구조는 [싸이코]와 비슷합니다. 시골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며 노모와 함께 살아가는 판곤은 연쇄강간살인범입니다. 첫 번째 파트에서 영화감독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한 배우지망생 현아를 납치 감금한 뒤 강간하고 고문합니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현아의 언니 현정이 실종된 동생을 찾아 판곤이 사는 시골마을을 방문합니다. 단지 여기엔 로버트 블록의 소설이나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 있는 미스터리는 없습니다. 노먼 베이츠와는 달리 판곤은 숨기는 게 없습니다. 그냥 사람을 죽이고 강간할 뿐이죠.

영화는 판곤을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 그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물입니다. 대부분의 연쇄살인마들이 그렇듯 그는 보통 사람들이 가진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갈등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심하지요. 끔찍한 폭력을 저지른다고 지루하고 불쾌한 인물이 덜 지루해지고 덜 불쾌해지는 건 아닙니다. 문성근은 어떻게든 이 캐릭터를 살려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이 생겨나는 건 아닙니다.

문성근만 그런 게 아니라 추자현 같은 다른 동료배우들도 영화 내내 애를 먹습니다. [실종]의 각본과 연출은 결코 배우들에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극도의 사실주의가 요구되는 영화인데도 대사의 질이 낮고 불필요한 독백이나 어색한 상황설명 대사들이 난무합니다. 연기지도도 나빠서 원래 배우가 가진 능력의 20퍼센트 정도를 미리 까먹고 들어가지요.

호러물로는 어떤가요? 할리우드의 ‘고문 포르노’ 장르의 강도를 기대하고 오신 분들은 실망하실 겁니다. 이 영화에는 자극적인 신체 손상 장면 같은 건 거의 없습니다. 저에겐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 내내 서스펜스도, 스릴도 느껴지지 않으니 이건 문제입니다. 사이코패스에게 사로잡힌 여자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치고 있는데도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나른합니다. 그냥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느릿느릿하게 가는 거죠.

기술적으로 무성의한 영화입니다. 충분히 아이디어를 짤 시간이 없었거나 그런 걸 짤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겠죠. 첫 번째 살인 장면이나 중반 이후 나오는 교통사고 장면 같은 걸 보세요. 뭔가가 심각하게 빠져 있습니다. 그냥 간신히 이야기만 되게 엮어놓은 겁니다. 영화 후반의 국면 전환이나 액션도 치밀한 설명이나 계산없이 그냥 열거만 되어 있습니다. 감독은 날렵한 장르물을 거부하고 우직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그낭 테크닉이 부족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실종]을 봐야 할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요? 젊은 여자들에게 낯선 남자 조심하라는 경고물로는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러 굳이 극장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신문을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지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오락적 가치에 대해서는 말을 못하겠습니다. 김성홍의 전작들이 대부분 그렇듯, [실종] 역시 서스펜스나 드라마가 아닌 짜증과 불쾌함에 의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전 왜 그가 이런 감정에 끈질기게 매달리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짜증은 어느 관점에서 봐도 즐거운 감정이 아니니까요. (09/03/13)

DJUNA

기타등등

다음 날 리메이크판 [13일의 금요일]을 보니 내용 일부가 겹쳐보이더군요. 차라리 그냥 정직한 장르물로 만들었다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