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크 포스터 Marc Forster

주연
빌리 밥 손튼....행크 그로토우스키
Billy Bob Thornton....Hank Grotowski
할리 베리....레티시아 머스그로브
Halle Berry....Leticia Musgrove
히스 레저....서니 그로토우스키
Heath Ledger....Sonny Grotowski
피터 보일....벅 그로토우스키
Peter Boyle....Buck Grotowski
숀 콤즈....로렌스 머스그로브
Sean Combs....Lawrence Musgrove
코론지 칼훈....타이렐 머스그로브
Coronji Calhoun....Tyrell Musgrove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레티시아와 행크

[몬스터 볼]은 한마디로 속죄 로맨스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를 이전에도 많이 봤습니다. 한 남자가 직간접적으로 어떤 남자의 죽음에 영향을 끼칩니다. 죄의식으로 고통받던 그 남자는 죽은 남자의 애인이나 아내를 만나기 시작하고 그들은 불편한 연애를 시작하는 거죠. 최근 영화로는 [크라잉 게임]이나 [바운스]가 그런 부류에 속하겠군요.

[몬스터 볼]에서는 남자(행크)가 교도소 간수이고, 여자(레티시아)는 그가 사형 집행에 참여한 사형수 로렌스의 아내입니다. 단지 이 영화에서는 행크는 의식적으로 여자를 찾아나서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레티시아의 아들 타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현장에서 우연히 만납니다. (아주 이상한 우연은 아닙니다. 그들은 비교적 작은 동네에 살고 있으니까요.) 행크는 영화 중반이 될 때까지 자기가 돕는 여자가 이전에 담당했던 사형수의 아내라는 것을 모릅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질 타입은 아닙니다. 행크는 인종차별주의자인 백인이고 레티시아는 흑인입니다. 둘 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성격도 아니고요. 둘을 엮어주는 것은 그들이 살아오면서 입은 상흔입니다. 행크의 아들 서니는 그의 눈 앞에서 자살했고 레티시아의 아들 타이는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영화 중반에 이르르면 로렌스의 죽음이 그들을 다른 식으로 연결시켜주지요.

행크와 레티시아의 연애담은 거칠고 불편하게 시작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죄의식과 분노,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합됩니다. 소문도 무성했던 이들의 첫번째 섹스 신은 에로틱하다기보다는 거북스럽고 폭력적입니다.

영화는 이처럼 불쾌하게 만난 두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조금씩 문을 열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렇게까지 사교적인 사람들이 아니라서, 이들의 관계 발전은 어설프고 뻣뻣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2.

[몬스터 볼]은 [에브리씽 풋 투게더]의 감독 마크 포스터가 만든 두번째 장편 영화입니다. [에브리씽 풋 투게더]는 제대로 배급된 영화가 아니므로, 일반 영화 관객들이 처음 접한 포스터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서서히 포스터라는 남자의 감수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소재 면에서나 스타일 면에서 몇가지 일관성이 발견되거든요. 두 작품 모두 가족의 죽음과 같은 처절한 이야기를 거의 냉정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차분하게 그려내는 영화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포스터는 배우들에게 무척 유리한 감독입니다. 조용히 뒤로 물러나 냉정하게 바라보는 스타일이지만 배우들에게는 연기의 기회를 활짝 열어주는 편이거든요. [에브리씽 풋 투게더]의 라다 미첼처럼 이 영화의 빌리 밥 손튼과 할리 베리도 배우로서 가능한 거의 모든 기회를 움켜쥡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두 배우의 조용하게 불타는 연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영화가 영화인지라, 두 배우들은 감정이 폭발할 때보다 천천히 자신의 감정을 노출시키거나 억제할 때 더 좋습니다. 특히 행크가 레티시아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여주는 장면에서 두 배우가 수줍게 표출하는 그 가냘픈 불안과 희망의 감정을 보세요.

문제가 있다면, 그건 할리 베리의 캐스팅에 있을 겁니다. 아뇨, 전 베리의 배우로서의 자질을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리는 이 영화에서 정말 좋았거든요. 문제는 이 사람의 조각같은 미모가 캐릭터에서 살짝 어긋나 있다는 것이지요. 레티시아는 조금 수수한 외모의 배우에게 더 잘 맞는 역입니다. 영화 자체가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우직한 사람들이 천천히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베리는 아무리 초라하게 분장하고 나와도 굉장히 아름답고 카메라도 그런 아름다움을 일부러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종종 영화는 주제와 어긋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아마 많은 관객들은 행크를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았을까요? "짜식, 봉잡았군!"

3.

[몬스터 볼]에 가장 호의적이었던 비평가인 로저 이버트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타인종간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 대신 주변 사람들의 끔찍한 죽음들로 붕괴된 두 절망적인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로 봐주길 바랐습니다. 물론 행크와 레티시아의 이야기는 특별하게 읽혀질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훌륭한 서사 예술의 주인공들이 그렇죠. 하지만 과연 우리가 이 영화에서 인종 문제와 정치를 무시할 수 있을까요? 행크와 레티시아가 그 자체로 특별한 존재들인 것처럼 그들을 둘러싼 환경들도 쉽게 대체될 수 없는 특별한 존재들인데 말입니다.

이버트가 뭐라고 그래도 이 영화에서 인종 문제는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인종 문제는 백인 남성 주인공인 행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요. 행크의 집을 보세요. 그로토우스키 가족은 남자 3대가 사는데, 모두 그들 세대의 단면도 비슷합니다. 할아버지인 벅은 흑인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찬 인종차별주의자입니다. 손자 서니는 그런 자신의 가족들을 증오하며 그에 소극적으로 반항합니다. 주인공 행크는 어정쩡합니다. 그는 벅처럼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증오감 따위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행동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지요. 그는 생각없이 아버지의 길을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아들의 죽음, 레티시아와의 만남은 그가 게으르게 남아 있던 그 작은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전환점입니다.

두번째로 레티시아 역을 제안 받았던 안젤라 바셋은 이 영화의 레티시아가 흑인 여성을 모욕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거절했다는데, 이해가 될 만 합니다. [몬스터 볼]은 어쩔 수 없이 리버럴한 백인 지식인 남성의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한 작품이며, 레티시아가 아무리 훌륭하게 묘사된 캐릭터라고 해도, 그 사람의 존재는 기능적이니까요. 캐릭터의 수동성은 바셋이 생각한 것만큼 부정적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이버트는 제발 그런 관점에서 벗어나고 '예술'을 보라고 말하겠지만, 그에게 관객들보고 그런 관점을 버리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지요. 전 [몬스터 볼]이 여러 면에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토론의 씨앗 자체가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결백한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02/10/23)

DJUNA

기타등등

퍼프 대디의 심각하고 깊이 있는 연기를 보고 싶으세요? 이 영화에서 로렌스 역을 누가 맡았는지 한 번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