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봉준호

주연
김혜자....혜자
원빈....도준
진구....진태
윤제문....제문
송새벽....홍조
김병순....강력계 반장
여무영....공변호사
문희라....아정
전미선....미선

엄마

[마더]의 주인공 혜자는 괴팍하면서도 보편적인 인물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사람의 괴팍한 성향은 영화가 '아들을 둔 엄마'라는 설정을 극으로 밀어붙인 결과입니다. 혜자는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어머니들처럼 극단적인 감정만 느끼고 극단적인 행동만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는걸.

혜자는 시골 마을의 약재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오래 전에 떠났거나 죽었고 스물 여덟 먹은 아들 도준과 함께 살고 있지요. 아직도 엄마랑 같은 방에서 자는 도준이라는 애가 어떤 애냐면, 원빈 얼굴을 한 동네 바보입니다. 당연히 친구 진태와 마을을 싸돌아다니는 게 일이고 툭하면 말썽을 일으켜 경찰서로 엄마를 불려오게 하죠. 혜자는 아들의 이런 말썽에 거의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을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소녀가 살해당하고 도준이 용의자로 몰리자 사정은 달라지지요. 이 단계부터 혜자는 위기에 빠진 자식을 구하려는 엄마로서만 존재합니다. 다른 어떤 잡생각도 들어서지 못해요.

봉준호가 모성에 대해 뭔가 특별하고 예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마더]의 이야기는 보편적이고 고전적입니다. 아까 위에서 제가 그리스 비극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기자간담회에서 김혜자도 그 이야기를 하더군요. [마더]의 이야기는 극단적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친숙합니다.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를 여지가 거의 없거든요. 물론 김혜자는 이전에 이렇게 막 가는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와 '국민엄마'라는 위치가 이 배우를 가두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 캐릭터가 상상의 영역 밖에 있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사실 텔레비전 세계에서도 혜자보다 막 나가는 엄마들은 쉽게 찾을 수 있죠. 우리나라 막장 연속극의 단골 악당인 사이코 시어머니들을 보세요. 그에 비하면 혜자는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더 설득력 있고요.

추리물로서도 영화는 정통적입니다. 자꾸 반전 이야기를 하는데, 제발 거기 집착하지 마세요. 이 영화의 반전은 그렇게 놀랍지 않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봉준호의 세계를 생각해보세요. 반전이 놀라우려면 캐릭터들이 속해 있는 세계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서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봉준호 세계는 처음부터 그런 확신을 허용하지 않는 곳이죠. 그를 넘어서려면 어쩔 수 없이 속임수를 써야 하는데, 그는 반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아주 익숙한 경로로 흘러갑니다.

이런 익숙함을 단점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마더]에는 한 시대와 사회를 어우르는 [살인의 추억]의 거대함 같은 건 없습니다. 한국 사회의 저열함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야유는 여전하지만 그게 진짜 목표는 아니죠. (아마 [살인의 추억]의 외국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동안 한국 사회가 조금 발전하긴 했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모든 이야기는 혜자로 대표되는 모성이라는 테마에 집중되어 있고 거기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영화는 작고 예측가능하며 소박해보입니다. 전작들처럼 새로운 어떤 영역을 탐구하는 작품도 아니고 특별히 숨은 의미를 담고 있지도 않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 정통성은 힘입니다. 자기들이 무슨 영화를 보고 있는지만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관객들은 집중할 것입니다. 주제는 드러나 있는 만큼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완성도가 높습니다. [박쥐] 때처럼 "도대체 이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든 거야!"를 외치며 머리를 쥐어 뜯을 필요가 없습니다. [마더]는 척 봐도 그냥 잘 만든 영화거든요. 평론가들은 훨씬 스트레스가 적을 겁니다. 관객들을 설득하기도, 동의를 얻기도 쉬울 테니까요. 가끔 그 '웰메이드'적 성격이 영화를 가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 갑갑함이 영화를 망친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김혜자의 연기에 대해 따로 언급을 해야 할까요. 시간낭비인 것 같습니다. 우린 이미 이 배우의 테크닉과 매너리즘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마더]에서 우린 평생동안 익숙해져왔던 김혜자 연기를 봅니다. 단지 봉준호 세계에 들어오면서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부여받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 친숙한 배우의 친숙한 연기가 '억'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와닿는 부분들이 생기는 겁니다. 주변에 훌륭한 조연배우들이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적절하기 짝이 없는 생활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연기는 더욱 효과적이 됩니다.

봉준호는 [마더]가 소품이라고 여러차례 설명했고, 그건 거짓말이나 불필요한 겸손 따위는 아닙니다. [마더]는 작은 영화입니다. 단지 그냥 작은 게 아니라 고도로 압축된 영화죠. 마찬가지로 전 이 영화가 영화광들이 '열광'할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관객들이 밍밍한 상태로 영화관을 뜰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마더]는 자신의 영역과 역할을 분명히 알고 있는 아주 효율적이고 힘센 소품입니다. (09/05/20)

DJUNA

기타등등

1. 소품이라고 하지만 봉준호 최초의 2.35:1 비율의 영화입니다. 그것도 수퍼 35밀리로 찍어 자른 게 아니라 아나모픽 렌즈로 찍은. 기본적으로 스코프 비율이 지원되는 큰 극장에서 보세요.

2. 예상보다 살해당한 소녀 문아정의 캐릭터가 좋습니다. 전 고 장자연 생각이 조금 나더군요. 그런 캐릭터라는 게 아니라 상황의 일부가 그 사건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