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강석범

주연
김주혁....홍두식
엄정화....윤혜진
김가연....미선
장동직....박사장
김준성....노도철
기주봉....혜진 부
강성필....도라이버

혜진과 홍반장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우주소년 짱가] 주제가의 가사에서 따온 길고 장황한 제목입니다. 괜찮은 홍보 도구인 셈이죠. 처음 듣고 금방 암기하기는 어려워도 출처를 확인하고 제목을 외우는 동안 영화가 머리에 꽉 박힌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제목은 영화의 줄거리와도 맞습니다. 어디선가 주인공 혜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정말로 홍반장이 나타나거든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입니다. 여자 주인공 혜진은 홧김에 사표를 쓰고 해변가의 작은 마을에 내려와 병원을 개업한 깐깐한 성격의 치과의사입니다. 남자 주인공 홍두식은 그 마을의 반장 겸 부동산 중개업자 겸 임시 철가방/비디오 가게 점원/편의점 점원/택배 배달원/인테리어 디자이너이고요. 혜진은 이 작은 마을 어디를 가도 그와 마주치게 되고 걸리는 일마다 늘 오지랖 넓고 잔재주가 많은 이 엉뚱한 남자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삼고 있는 건 홍반장의 캐릭터입니다. 영화의 농담 대부분은 홍길동처럼(성도 같네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안 나타나는 곳이 없고 [매트릭스] 액션에서부터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못하는 게 없으면서도 일당 5만원에 동네 사람의 잡일들을 도와주며 살고 있는 이 남자의 엉뚱함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툭하면 대한민국 전체 여성과 운전자와 치과의사들을 대변하려 하는 깐깐하고 모진 혜진의 성격은 이런 홍반장의 캐릭터를 보조하고 강조하기 위한 도구이고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은 전체적으로 의도적인 무덤덤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홍반장 자신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인물인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있고요. 사실 호들갑을 떨며 이런 캐릭터를 묘사하는 건 동의어 반복이나 다름없죠. 영화에서 호들갑을 떠는 쪽은, 약간 튀는 성격이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평범한 캐릭터인 상대역 혜진이기 때문에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은 정상과 비정상이 뒤집힌 듯한 느낌을 줍니다. 물론 그 결과 발생하는 멀미 역시 코미디의 도구이고요.

그러나 홍반장의 엉뚱하고 독특한 캐릭터는 영화의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홍반장은 독특한 캐릭터지만 그만큼 쓰기가 쉬운 캐릭터이기도 해서 중반 스토리 진행이 안이해지는 것이죠. 홍반장 에피소드를 만드는 건 쉽습니다. 혜진을 난처한 상황에 밀어넣고 홍반장에게 짜증나는 참견꾼이나 백마 탄 왕자 노릇을 시키면 되니까요. (네, 이 캐릭터는 정말 변장한 백마 탄 왕자예요.) 종종 이야기는 흥미로울 수도 있는 가능성을 그냥 방치해두기도 합니다. 홍반장이 졸업 후 3년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관객들이 꼭 알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 설정으로 괜찮은 이야기를 끌어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여간 이 손쉬움 때문에, 혜진과 홍반장 사이에서 서서히 피어나는 사랑을 홍반장과 관련된 일련의 황당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그려내려하는 원래의 의도도 약해져 버립니다. 로맨스의 흔적들은 홍반장과 관련된 황당한 에피소드들 속에도 녹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홍반장의 캐릭터에 집중하다보니 이 로맨스가 제대로 꽃필만큼 스토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거예요. 이런 식의 한국 로맨틱 코미디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이 영화도 후반부는 잔털없는 순수한 멜로드라마로 채워지지만 그런 방향 전환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만족스러운 고도에 오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은 괜찮은 코미디입니다. 김주혁의 남자 아줌마같은 능글맞은 연기도 좋고, 엄정화의 땍땍거리는 도시 아가씨의 역할도 좋습니다. 종종 지나치게 주인공들을 탈색시키는 듯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둘의 역학 관계도 나쁘지는 않고요. 의도했던 '웰메이드 코미디'의 세련됨에는 충분히 도달하지 못한 것 같지만 쓸데없이 억지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잔재주를 부리는 대신 적절한 감정선을 유지한 음흉한 연출도 이 정도면 괜찮습니다. 전 단지 여기서 조금 더 나갔을 수도 있었을텐데...하고 생각해보는 것뿐이죠. (04/02/25)

DJUNA

기타등등

김주혁은 [싱글즈] 이후에도 그 영화에서 공연했던 두 여자 배우들의 주변을 계속 돌고 있군요. 이 사람은 장진영 주연의 [청연]에도 나오거든요.